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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南星)문화재단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2020년도 '진주가을문예' 수상자로 황명희(대구, 사진 왼쪽) 시인과 황인선(군포) 소설가를 선정했다.
 남성(南星)문화재단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2020년도 "진주가을문예" 수상자로 황명희(대구, 사진 왼쪽) 시인과 황인선(군포) 소설가를 선정했다.
ⓒ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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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6회를 맞은 1500만 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 '연어답다'(외 4편)을 낸 황명희(56, 대구) 시인, 단편 '우주 라이크'와 '무명과 누명'을 낸 황인선(31, 군포) 소설가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심사는 소설 부문 이기호 광주대 교수와 김종광 소설가(<조선통신사> 등), 시 부문 김언희 시인(시집 <트렁크> 등)과 김병호 협성대 교수가 맡았다.

김언희·김병호 시인은 당선작 '연어답다'에 대해 "유희를 뛰어넘는 발랄한 언어감각과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치밀한 표현들, 그 이미지를 능숙한 서사의 얼개에 배치하는 형상화 능력이 돋보였다"며 "연어가게에서 펼쳐지는 시적 사유 또한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어 시적 울림이 작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기호·김종광 소설가는 당선작 '우주 라이크'에 대해, "일종의 SF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이 작품은 지구에 불시착해 70년째 살고 있는 세 명의 외계인을 다룬 서사였다"며 "셋 중 둘은 결혼을 해 부부가 됐고, 나머지 한 명은 현재 여행사를 운영 중이다. 문제는 부부가 된 한 명, '샤네프'가 지금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했다.

이어 "외계인이지만 칠십 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다 보니 지구인이 겪는 치매까지 앓게 되었다는 이 설정은, 유머러스하지만 그 유머를 뛰어넘는 페이소스와 현실에 대한 낯선 상징, 그리고 현실 비판으로까지 작동했다"고 덧붙였다.

또 소설 심사위원들은 "문장이 다소 거칠고 후반부 로켓 장면도 좀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신선하고 활달한 서사에 더 많은 기대와 지지가 이어졌다"며 "인물 내면에 대한 표현을 섬세하게 가다듬는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사)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기획실장으로 재직 중인 황명희 당선자는 "투고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생일 하루 전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한 사흘 낙엽에 푹 파묻히고 싶다며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축하합니다',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습니다"며 "본격적으로 시를 배운 지 두 해만의 일이고 보니 내게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이 빈 터일 때 소식의 파장이 깊고 넓게 퍼지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황 당선자는 "내 멋대로 쓴 시를 합평 시간 후 차곡차곡 모아두는 재미에 마냥 즐겁기만 했는데 갑자기 내밀했던 공간이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안개로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며 "당선작의 소재가 되어준 '연어답다' 가게가 문이 닫혔다는 소식이어서 안타깝습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숭실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황인선 당선자는 소감에서 "악어꿈을 꿨습니다. 분명히 발을 물렸는데 이상하게도 상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저는 로또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이 원고를 투고했습니다"고 전했다.

이어 "둘 중에 하나라도 걸려라 싶었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됐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것만큼이나 기쁩니다. 그동안 작가라고 말하기 민망했는데 당분간은 작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며 "악어에게 물려도 멀쩡했던 단단한 발로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고 인사했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南星)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진주신문>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신인 공모를 벌여 운영해오고 있으며, 당선자한테는 시 500만 원, 소설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지난 10월 31일 공모 마감 결과 시는 144명 952편, 소설은 104명 203편이 응모했다.

김장하 이사장은 "전 세계가 무섭다고 하는 코로나19도 글쓰기 창작의 열망을 꺾지는 못합니다. 다들 힘들지만 그래도 문학이 위안과 함께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것 같습니다"며 "모든 응모자와 심사위원께 감사드리고, 두 당선자한테 축하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5일 오후 4시 30분 진주문고 여서재에서 열리고, 코로나19 때문에 예년과 달리 축소해 진행된다.

□ 소설 당선작 <우주 라이크> 줄거리

'나'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며 살고 있다. 언뜻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는 자그마한 비밀이 하나 있다. 지구를 스쳐 지나가다가 추락한 외계인이라는 것. 이들은 Ⓟρ㉡별에서 왔고, 그 별에는 치매라는 병도 없었다.

'나'는 지긋지긋한 지구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꿈꾼다. 하지만 이 외계의 육체는 총알을 맞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평균 수명대로 산다면 앞으로 200년도 거뜬했다.

여행사를 하는 외계인 친구 말젤은 '나'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쿠팡에서는 로켓 배송이 되고, 그 로켓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

'나'와 아내는 지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거대한 로켓 앞에 선다. 하지만 10인 이상 출발 가능이라는 여행사의 조건을 채우지 못해 무산되어버리고, 지구에 계속 남아있게 된다.


□ 시 당선작 전문

연어답다


황 명 희

'연어답다는 연어의 거룩한 삶까지 포장해드립니다' 라고 써 놓은 가게 문을 열자 연어들이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왔다. 바다를 거슬러 오르던 한 생애를 누군가 경건하게 건져 올려 '연어답다'란 토막 난 말로 쟁여 놓은 곳, 냉장실의 붉은 몸 도막에 일렁이는 물결들이 내 눈길을 끌어당긴다. 연어답다의 젊은 주인은 유난히 붉은 살을 집어 들더니 저울에 달아 투명한 랩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치던 연어의 가파른 기억을 단단히 옭아매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투명한 랩으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있던 연어를 끄집어내어 연어답다로 토막낸다. 연어답다 속에 얼룩져있던 연어답지 않다가 보인다. 연어답지 않다를 토막낸다. 연어답지 않다에 얼룩져 있는 연어답다가 보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에 출몰하는 바닷물과 냇물들의 밑바닥을 들추어 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 미끄러지는 몸부림을 꽉 움켜쥔 어머니의 쭈글한 손의 내력을 가늠해 보려는 듯이

'연어답다'는 바닷물과 냇물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엇갈려 새겨진 탄탄하고 붉은 욕망, 혹은 몸부림의 서사가 기록된 오래된 책일까. 혀끝에 살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촉감과 가파른 침묵이 '연어답다'로 포장된 붉은 당신의 생애를 찾아 벚꽃 흐드러지게 핀 산길을 걸어간다. 수천마리 연어 떼가 등 뒤에 우르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벚꽃이 새떼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태그:#남성문화재단, #진주가을문예, #황명희, #황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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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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