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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충청남도가 작성한 '식품 알레르기 억제 및 면역강화제 지원' 문건. 이 문건 내에 적시된 사업 공모조건(문서 왼쪽)에는 "조리 중 밥이나 국 등에 첨가하여 학생들에게 공급" 등 섭취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2020년 5월 충청남도가 작성한 "식품 알레르기 억제 및 면역강화제 지원" 문건. 이 문건 내에 적시된 사업 공모조건(문서 왼쪽)에는 "조리 중 밥이나 국 등에 첨가하여 학생들에게 공급" 등 섭취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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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도지사 양승조)가 식품 알레르기를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한다면서 도내 초·중·고 학생들에게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건강식품을 급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선 학교에서는 건강식품을 무상지원하는 취지가 의아하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납품 선정업체도 한 곳이 독점해 특혜시비까지 일고 있다. 충남도의회의 일부 의원은 제품 신청을 직접 독려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의문 ①] '알레르기 억제' 건강식품이라더니... 제품 뒷면에는 '알레르기 주의' 표시
 
공모를 통해 12개 시군 모두 충남 천안에 소재한 ㄱ'업체를 선정, 한 업체가 납품을 독점하고 있다. 해당 제품 포장지에는 섭취 시 주의사항으로 '특정 성분에 민감한 체질이거나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은 원재료를 확인하시고 섭취 전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공모를 통해 12개 시군 모두 충남 천안에 소재한 ㄱ"업체를 선정, 한 업체가 납품을 독점하고 있다. 해당 제품 포장지에는 섭취 시 주의사항으로 "특정 성분에 민감한 체질이거나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은 원재료를 확인하시고 섭취 전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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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는 올해 '학교급식 식품 알레르기 치유제품 지원 사업비'로 6억 원(도비 3억 원, 시군비 3억 원)을 책정하고, 시군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해 2학기부터 초·중·고 123개교(4만6700명)에 건강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의 증상을 관리하고 코로나19 등 유행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면역력을 키운다는 취지다.

충남도는 올 상반기 일선 기초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식품 알레르기 및 아나필락시스(면역반응 원인으로 발생하는 급격한 전신 알레르기 반응) 유병 학생의 발현 억제' 등을 위해 학교급식과 함께 섭취가 가능한 건강식품을 공급하겠다"며 시군별 공모를 요청했다.

뒤늦게 사업을 접한 학교 영양교사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알레르기나 아낙필락시스는 증상을 유발하는 식품이나 약물의 노출을 피하는 것 외에 치유 방법이 없다며 사업 취지에 의문을 나타낸 것.
     
그럼에도 충남도는 제품의 기본 납품 조건으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포함되지 않을 것' 등을 명시한 채 사업을 강행했다. 오히려 사업비도 당초 2억 5600만 원으로 계획했다가 올 여름 6억 원으로 증액했다. 도와 일선 시군들은 공모 절차를 거쳐 모두 충남 천안 소재인 ㄱ업체의 제품을 선정했다.

해당 제품은 버섯이 포함된 가루 형태의 식품이다. 포장지 뒷면에는 현미가루, 버섯 균사체, 건조 표고버섯 플레이크 등의 원재료명을 명기했다. 섭취 시 주의사항으로는 '특정 성분에 민감한 체질이거나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은 원재료를 확인하시고 섭취 전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알레르기 억제사업'이라면서 알레르기 발현 우려가 있는 식품을 선정·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의문 ②] '밥·국에 뿌려먹는 제품으로...' 석연치 않은 공모조건

제품 공모 조건도 특이하다. 충남도는 ① 식품 알레르기 및 아나필락시스 유병 학생의 발현 억제  ② 유전력 등의 원인으로 발생 우려가 높은 학생의 사전 예방 가능 제품 ③ 면역력 강화를 세부기준으로 명시했다. 또 도내에 본사·제조공장을 둔 곳으로 지역을 한정했으며, '조리 중 밥이나 국 등에 첨가해 학생들에게 공급'이라고 섭취 방법까지 조건으로 붙였다.
     
공교롭게도 12개 시군 납품을 독점한 ㄱ업체의 제품은 밥을 할 때 첨가해 섭취하는 방식이다. 일각에서 '특정 업체를 미리 염두해 두고 공모 조건을 만든 것 아니냐'며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충남도 농식품유통과 학교급식팀 관계자는 "여러 업체가 지원했지만 공모 조건을 충족한 곳은 ㄱ업체뿐이었다"며 "학교급식이다 보니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라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공급 중인 제품이 알레르기 억제와 면역력 강화 효과가 입증됐냐'는 물음에 "안정성과 독성 시험 성적서 등을 갖췄지만 알레르기 억제와 면역력 강화 여부는 아직 입증할 자료가 없어 올해와 내년 시범사업을 벌인 뒤 효과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공모 조건 중 가장 중요한 효능 여부는 제대로 따지지 않고 섭취 방법 등 다른 조건만 주로 적용한 셈이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도 "건강식품으로 알레르기 억제와 면역력 증강 여부 등 효과를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의문 ③] 충남도 "도 교육청에서 제안" - 충남교육청 "아무런 협의 없었다"
 
지난 6월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식사하고 있는 모습.
 지난 6월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식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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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추진 과정에서 절차 역시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급식 식단 편성은 일선 학교가 직접 한다. 학교별로 식단을 짜면 시군에서 운영하는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식자재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건강식품 지원사업은 급식 식단 편성과 관련된 일인데도 학교 의견을 묻지 않고 충남도가 정책사업으로 자체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선 학교나 시군 교육지원청, 충남도교육청의 의견마저 듣지 않았다.

충남도 관계자는 사업추진 배경에 대해 "충남도교육청에서 학교급식을 통한 알레르기를 겪는 학생들의 면역력 강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어 도 정책사업으로 추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충남교육청은 부인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안타깝게도 도 교육청은 물론 일선 학교와도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라며 "도에서 자체 결정해 직접 추진했다"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급식 재료를 이처럼 거꾸로 선정한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이 건 외에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충남의 한 학교 관계자도 "건강식품을 신청하라는 공문을 받은 뒤 '학교급식으로 건강식품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의문 ④] "꼭 필요한 사업" 제품 권하는 충남도의원
     
충남도의회 의원들의 태도 또한 석연치 않다. 지난 12일 충남도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 감사 당시 김은나 도의원(천안 8, 더불어민주당)은 도 교육청 관계자와 일선 교육지원청장들을 줄줄이 불러 세워놓고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식품 알레르기 억제와 면역력 강화 제품 지원과 관련해) 이상한 소문이 돈다. 지자체에서 이상한 제품을 줄 수 있다고 보나? 어떻게 생각하나? 꼭 필요한 사업이다. 사업비를 반납하는 일 없도록 관심을 가져달라." - 김 의원이 도 교육청 관계자에게 질의한 내용

"논산교육지원청에서는 지원실적이 낮다. 사업에 대해 알고 있었나? 지자체가 전액 비용을 주는데 왜 몰랐나?" - 김 의원이 논산교육지원장에게 질의한 내용

"금산교육장님도 처음 알았나? 지자체에서 좋은 예산을 세워주고 있다.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에 아이들이 혜택을 못 받고 있다." - 김 의원이 금산교육지원장에게 질의한 내용


교육위 도의원이 지자체가 학교 현장이나 교육지원청과 협의 없이 학교급식 식단을 편성한 초유의 행정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왜 몰랐냐'며 질책한 후 제품 신청을 독려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충남의 한 현장교사는 "학교급식은 건강식품을 먹이는 곳이 아니다, 강화된 청렴 수칙에 따라 급식에 넣을 쿠키 하나도 홍보 받아서는 안 된다"며 "그런데 충남도는 절차를 무시하며 사업을 강행했다, 도의원들은 제품 홍보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일로 학교급식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닐까 매우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충남도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규모의 건강식품을 학교급식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태그:#건강식품, #충청남도,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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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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