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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6일 오후 수능이 치러질 대구 시내 한 시험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별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 수능 시험장 코로나19 특별방역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6일 오후 수능이 치러질 대구 시내 한 시험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특별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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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를 오는 12월 3일 오전, 이 시험을 주관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아래 평가원)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분명히 다음과 같이 발표할 것이다.

"이번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어 출제했다."

정말 그랬을 것인가? 평가원의 이런 발표가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평가원의 수능 9월 모의평가 일부 문항 오답률은 97.1%

멀리 갈 것 없이 두어 달 전으로만 돌아가 보자. 평가원이 정식 수능 수준에 맞춰 학생들에게 연습을 시키는 시험이 있다. 이 시험이 바로 수능 모의평가다. 평가원은 수능 모의평가를 벌인 지난 9월 16일 보도자료에서 다음처럼 발표했다.

"모의평가 출제위원단은 학교 교육을 통해 학습된 능력 측정을 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추어 출제했다."

하지만 이 모의평가 관련 EBS에서 공개한 문항별 오답률을 보면 수학 가형 30번 문항 오답률은 92.5%였고 수학 나형 30번 문항 오답률은 97.1%였다. 평가원이 고교생의 2.9%나 7.5%만 풀 수 있는 문제를 낸 것이다.

객관식 오지선다형으로 출제한 수학 나형의 21번 문항을 보면 5개의 답지를 제각기 선택한 비율이 모두 20%에 근접했다. 대부분의 응시생들이 문제를 풀었다기 보다는 문제를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고교 교육과정 수준에 맞춰 출제했다'는 평가원의 발표가 심각하게 의심받는 상황인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아래 '사교육걱정')은 해당 모의평가를 분석해 수학 가형 30개 문항 가운데 3개, 수학 나형 30개 문항 가운데 2개가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것으로 판정했다.

이런 상황은 해마다 정식 수능이 끝난 뒤에도 번번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올해 7월 21일 시도교육감협의회까지 나서 '코로나19 상황에서 쉬운 수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평가원은 '예년과 비슷한 난이도를 유지할 것'이란 태도를 고수했다. 오는 12월 3일, 코로나19로 시달린 응시생을 대상으로 치를 수능에서도 교육과정 수준까지 위반한 '불 수능' 문항을 안길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사교육걱정 관계자는 "정부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으로 도저히 대비할 수 없는 수능 문항 출제로 학생과 학부모를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고교교육과정을 신뢰한 학생들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좌절감과 배신감을 초래한 수능은 올해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이 같은 교육과정을 뛰어넘은 불 수능 문항 출제 관행은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교육규제법)' 취지에 어긋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법은 제10조(대학 등의 입학전형 등)에서 "대학 등의 장은 입학전형에서 대학별고사(논술 등 필답고사, 실기고사 등)를 실시하는 경우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 또는 평가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선행교육규제법 덕분에 대학별고사에서는 교육과정을 위반한 출제가 많이 줄었다는 게 사교육걱정의 분석이다. 그러나 정작 국가가 출제하는 수능은 치외법권인 셈이다.

사교육걱정 관계자는 "정부가 수능은 선행교육규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킬러 문항을 출제하고 있다"면서 "선행교육규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없도록 선행교육규제법을 개정하여 국가가 출제하는 수능 또한 대학별고사와 마찬가지로 출제 전 과정에서 고교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면밀히 관리 감독할 것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3 학생 학부모인 기숙영씨는 최근 사교육걱정 행사 발언에서 "매년 수능 때마다 각 주요 과목의 몇 번 몇 번 문항은 소위 킬러 문항이라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면서 "누구를, 무엇을 죽이기 위한 문제인가. 아이들을 위한 평가의 목적이 아이들을 아웃시키기 위한 것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변별력이라는 이름으로 평소의 성실성과 학교생활은 무시당한 채 특별 트레이닝 받은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시험지 안의 문제들은 누구를 위한 문제들이냐"고 따졌다.

이선영 교사(중학교 수학)도 "고교 수학 교육과정 평가 방법 및 유의사항에 '학생들의 수학적 사고를 저해하여 복잡한 상황을 포함하는 문제를 다루지 말라'고 분명 명시하고 있다"면서 "이런데도 오답률이 90%가 넘는 고난도 수능 문항이 출제되는 것은 '수능이 정말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데에 교사로서 많은 의문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18일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18일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교육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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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은 2019년 수능을 치른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원고를 모집해 불 수능에 대한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1심에 이어, 지난 18일 항소심에서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수능 출제는 교육부와 평가원에 기본 권위가 있으며 재량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교사들 "국가에서 사교육 불평등 야기하는 수능 문제 출제"

이 재판과정에서 현직 수학교사 55명이 '2019학년도 수학 수능 출제에 교육과정을 위반한 문제가 있다'고 의견서를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학교사들이 재판부에 낸 의견서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2019학년도 수능 수학 몇몇 문항들은 특정 문제해결 전략을 기억해야 하거나, 교육과정 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수학 기호를 사용하여 성실하게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해결하기 어렵다. 고난이도 문제집과 이를 반복적으로 훈련시켜주는 사교육 기관의 도움이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항을 출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태그:#불 수능 논란, #킬러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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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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