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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수험생 시절 내내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식물을 한 번의 실수로 떠나보낸 뒤 다신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다신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요즘 자꾸만 푸릇푸릇한 이파리에 눈이 갔다. 여기저기 키우기 쉬운 식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식물킬러를 위한 아주 쉬운 식물책'이라고 소개된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를 접했다.

책을 읽는 동안 교실 창가에서 키웠던 식물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삭막한 교실에서 홀로 푸른 빛을 내뿜던 작은 식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가만히 들어주던 그 식물. 그리고 동시에 '식물킬러'라는 타이틀을 뗀 후, 이제는 식물의 언어로 일상을 전하고 있는 김파카 작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이를 위해 지난 11월 14일,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의 저자 김파카 작가와 직접 만났다.

식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인터뷰 사진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의 김파카 작가
▲ 인터뷰 사진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의 김파카 작가
ⓒ 김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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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기 이전에 실내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김파카 작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 이직이 아닌 퇴사를 결심했다. 이후 김 작가는 '식물'을 주제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잼프로젝트'를 설립하고 현재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김 작가에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냐고 묻자, 김 작가가 답했다.

"완전 있었죠. '이렇게 평범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고 진짜 망할까봐 무섭기도 했죠. 근데 또 생각해보면 직장에 다니든 뭘 하든 똑같이 걱정하고 불안해할 거면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김 작가가 현재 운영 중인 '잼프로젝트'는 식물 생활을 주제로 한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엽서, 포스터, 식물 키트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일주일에 물 한 번 주기'와 같은 확고한 매뉴얼을 제공하는 타 브랜드와는 달리, 김 작가의 '잼프로젝트'에서는 직접 식물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주기를 체크하여 패턴화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지금보다 더 쉽고 편하게 식물을 판매하는 방법을 마다하고 이와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를 묻자, 김 작가는 이렇게 답변했다.

"똑같은 식물이어도 다른 환경에 두면 관리하는 방법이 달라지거든요. 같은 빨래를 널어도 남향 베란다는 하루 만에 마르고 북향의 원룸에서는 이틀이 넘게 걸리는 것처럼, 식물도 남향 베란다가 있는 집이랑 북향의 원룸인 집에서 완전히 다른 속도로 자란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김 작가는 건물 귀퉁이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7평짜리 원룸에서 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식물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으며, 환경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한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식물로 깨닫는 삶, 사람, 사랑

사람이 그렇듯 식물도 각각의 특성이 있다는 것은 김 작가의 저서 <내 방의 작은 식물을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에서 중점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인간과 달리, 식물은 원하는 걸 말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관찰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가 이런 정적인 시간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큰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김 작가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식물의 매력을 느꼈다.

"저는 들어주는 성격의 사람이거든요. 근데 또 들어주기만 하다 보면 내 얘기가 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식물이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게 하는 것 같아요."

'흔치 않은 주제로 책을 쓰게 만든 식물의 매력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식물을 '들어주는 친구'라고 표현하며,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준다고 말했다. 퇴사 전에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 바빴다면, 퇴사 후에 식물과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생각하는 삶'에 대해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모여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를 쓸 수 있었다고 답했다.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
ⓒ 카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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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내 방의 작은 식물은 언제나 나보다 큽니다>에서는 식물의 삶을 인간의 삶에 비유하여 표현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마당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좁아도 마음속에 화분을 둘 자리가 3개 이상은 있고, 화분마다 각각 다른 씨앗이 자란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 작가의 마음속 마당에는 무엇이 피었냐고 묻자, 김 작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생각해보길 바랐던 부분이라며 반색했다.

"식물처럼 사람들이 다 씨앗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싹 틔우고, 나무가 되고, 꽃도 피우고, 못생겨지기도 하는 걸 같이 겪으면서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거든요. (중략) 최근에 제 마당에는 새로 들어온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이 있어요. 그 씨앗들을 어떻게 잘 싹틔우게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차분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가는 김 작가에게서는 편안한 분위기와 여유가 묻어났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모습으로

최근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번아웃 증후군'을 검색하면 직장인의 85%가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와 극심한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처럼 번아웃, 즉 몸을 불사르다가 결국 모든 연료를 소진해버린 현대인들에게 식물이 어떤 마음을 갖게 해줄지 물었다.

"식물은 느림과 기다림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게 해줘요. 우리가 진짜 바쁘게 사는데 정작 왜 바쁘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실 답이 딱히 없잖아요. (중략) 저마다 각자의 속도가 있고 '너희가 빨리 가는 건 당연한 게 아니야'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요."

또한, 김 작가는 식물에게 배울 점으로 '천천히, 느리게, 꾸준히 자랄 수 있다는 점'과 '자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뽑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는 게 정말 부러워요. 그리고 한번 선인장으로 태어나면 꽃을 피우지 못해도 '그래도 나는 선인장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본질을 알고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게 좋아 보여요."

김 작가의 말처럼 식물은 남이 아닌 자신만의 속도로 자란다. 설령 그 속도가 남들이 보기엔 답답할지언정, 어쨌든 매일매일 0.1cm씩이라도 꾸준히 자란다. 그렇게 자란 식물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든 그 본질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존재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는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내가 아닌 남의 속도로 살아가는 우리는 정작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누구인가'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우리가 왜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지점이다. 아무리 꽃을 피우지 못해도 '나는 선인장이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식물의 태도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의 속도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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