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 한빛라이프

관련사진보기

 
엄마는 아빠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서운한 감정을 딸인 나에게 토로했다. 그럴 때마다 처음엔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듣는다. 그런데 듣다 보면 점점 답답해지고, 결국 "그건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한테 직접 얘기하는 게 어때?"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면 엄마는 이렇게 얘기한다.

"딸이랑 친구처럼 지내는 옆집 엄마가 부럽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 살가운 구석이 없어."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엄마 하소연을 들어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엄친딸'과 비교당하니 억울하다. 화가 나서 "나는 앞으로도 살가워질 생각이 없다"고 말한 뒤 대화를 강제 종료한다.

나는 왜 엄마 말이 힘들까? 

책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는 비폭력대화를 생활 속에서 연습할 수 있게 쓰여진 책이다. 비폭력대화는 간디가 사용한 '비폭력'과 맥락이 같다.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을 가라앉히고, 연민의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 책의 저자인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박재연 대표는 비폭력대화 뿐 아니라 메타인지행동치료, 죽음학 등 상담 심리 여러 분야를 연구했고, 대화법을 주제로 강연 및 워크숍을 진행 중이다. 

그는 이 책의 서두에서 '대화는 곧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면 일단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는 들어주는 거고, 참아주는 역할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결국 참다 참다 가시 돋친 말로 응수하곤 했다. 

내가 "그건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한테 직접 얘기하는 게 어때?"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빠한테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이 얼마나 서운한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렇게 서운하고 힘들면서 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 주변만 빙빙 맴도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느낌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느낌대로 행동하려 한다.
감정을 잘 이해하면, 왜곡된 생각에서 회복되기가 쉽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심리적 여유가 생깁니다. – 116쪽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핵심 욕구가 있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 즉 말과 행동은 각자가 자신들의 핵심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 142쪽

이 책은 '대화가 단절되는 요소', 그리고 '대화가 연결되는 요소'를 비롯하여,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듣기 연습',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하기 연습', '건강한 관계를 위한 나눔 연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파트 별로 혼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연습 문제들이 들어 있다. 이 연습 문제들을 순서대로 따라해보면서, 나와 엄마의 감정과 욕구를 찾아보았다.

나의 감정 : 화난다. 답답하다. → 왜? → 나의 욕구 : 평화(문제가 해결되고, 가족이 화목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감정 : 서운하다. 화난다. →  왜? → 엄마의 욕구 : 이해(서운한 마음을 이해 받고 싶었다.)


말이 아닌 욕구로 만나기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 필요, 바람을 이해 받을 때 자기방어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워지지요. 그리고 상대의 욕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요. – 343쪽

나의 감정과 욕구, 엄마의 감정과 욕구를 추측해본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 "나 요즘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읽다보니까 엄마가 아빠 얘기할  때… '이혼할 거 아니면 얘기하지마'라고 말해서 서운했을 것 같더라고. 그랬어?" (엄마의 감정 추측하고 물어보기)
엄마 : "솔직히 말하면 서운했어."
나 : "그랬구나. 엄마 얘기를 들을 때 해결 안 될 문제라고 생각이 드니까 답답했던 거 같아."
엄마 : "해결해달라고 말한 게 아니야. 그냥 말하고 나면 후련해지잖아."
나 : "내가 이해해주길 바랐던 거야?" (엄마가 바랐던 것(욕구) 추측하고 물어보기)
엄마 : "그냥 들어주기만을 바랐어. 그냥 들어주고 말 몇 마디 맞춰주면 돼. 해결방법이 없다 하더라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기도 하고, 말을 하다보면 정리가 되기도 하잖아. 상대가 들어주기만 해도 감정 상한 게 풀리고… 그런 걸 못하게 되면, 사람이 결국 안으로 곪게 되고 그러는 거지."
나: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내가 온전히 엄마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엄마: "너한테 뭘 바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 편하게 들어줘."


엄마와 약 30분간 전화로 대화를 했는데, 시간이 가는 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서운했을 엄마의 마음을 내가 먼저 입 밖으로 꺼내자, 엄마는 내 입장에서 "너도 바쁠 텐데 엄마가 그런 얘기 해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뭔가 이해받은 것 같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엄마가 나에게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엄마는 그냥 '들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은 엄마가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 엄마의 힘듦이 앞섰을 것이라 여겼다. 내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자, 엄마는 나를 존중하고 있었음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 대한 의심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에서 모든 의심은 사르르 녹아버렸다.                     

엄마 : "너는 엄마한테 네 얘기를 잘 안 하더라?"
나 : "내 얘기를 해서 뭐해. 해결되지도 않는데. 그리고 엄마도, 다른 사람도 나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
엄마: "…모든 걸 너 혼자 떠안고 필요는 없어. 편하게,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말에 눈이 시큰해졌다. 나는 대화 속에서 '아무도 나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전제로, '해결'이라는 또 다른 결론을 찾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전제로 대화를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대화를 하면서 그렇게 피곤했었나 보다.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그리고 엄마와 나는 존중하는 방법이 서로 달랐다. 엄마는 나를 믿고 의지해서 나에게 당신이 힘들다고 얘기했다. 나는 내가 그런 얘기를 듣는 걸 힘들어 하기에 엄마에게 내가 힘든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자극과 반응 사이, 빈 공간

엄마와 대화하고 난 뒤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은 처음이었다. 우리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느낌.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또 엄마와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다음의 말을 되새김질하려 한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의지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으며, 그곳에서의 선택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 짓는다. – 11쪽

어떤 자극이 나에게 있을 때 잠깐 '일시정지' 한 뒤, 엄마가 바랐던 것(욕구)와 내가 바랐던 것(욕구)을 파악하고, 엄마도 나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떠올리려 한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전화를 끊기 전에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너 그 책 다 읽고 엄마한테도 보내봐. 읽어보게."

앞으로 엄마와 나눌 대화가 기대된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 상대의 말이 듣기 힘들 때 후회되는 말을 했을 때, 꼬인 관계를 풀어주는 연결의 대화 수업

박재연 (지은이), 한빛라이프(2020)


태그:#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비폭력대화, #NVC, #박재연, #대화법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