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대한민국 역시 삶의 자유를 통째로 도둑맞았다. 하지만 힘든 시기에 스포츠가 주는 작은 행복은 지친 국민들의 일상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1990년대 IMF 시절 박찬호와 박세리가 큰 위로가 됐다면 코로나 시대를 위로해준 인물은 바로 손흥민이다. 어느덧 아시아를 대표하는 '월드클래스' 선수로 성장한 손흥민의 눈부신 활약상은 유난히 고단했던 2020년 축구팬들이 활짝 웃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이유였다.

최고의 선수로 자리잡은 손흥민
 
 모리뉴 감독과 손흥민

모리뉴 감독과 손흥민 ⓒ 로이터/연합뉴스

 
손흥민은 코로나19 사태로 중단과 재개를 거쳤던 프리미어리그 2019-20시즌에도 11골 10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을 지탱했다. 지난해 12월 번리전에서는 무려 75m를 단독 질주하여 그림같은 '원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손흥민은 이 골로 한국인 최초 국제축구연맹(FIFA) 푸슈카시상을 받았다). 소속팀 토트넘은 지난 시즌 6위에 그치며 부진했지만 손흥민의 활약은 현지 언론과 팬들의 극찬을 받았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고 주제 무리뉴 감독이 취임한 이후에도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손흥민은 현재 진행 중인 2020-21시즌에는 리그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손흥민은 올 시즌 벌써 11경기에서 리그 두 자릿수 득점 고지를 밟으며 토트넘 2년차이던 2016년부터 무려 5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두 자릿수 득점(12골-12-11골-10골-10골) 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올 시즌에는 불과 11경기 만에 두 자릿수 득점 고지를 밟았다. 지금의 기세라면 개인 역대 최다골 경신도 가능하다. 지난 2015년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건너온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지금까지 244경기 98골(12월 10일 기준)을 기록했다.

지난 10월에는 4골 2도움 활약으로 개인 통산 3번째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발표하는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138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토트넘 역사에 이미 손흥민은 살아있는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영국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손흥민의 위상을 놓고 '월드클래스' 논쟁이 벌어질 만큼 유럽무대에서도 그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뜨겁다.

코로나 19로 개막 연기, 사고없이 '완주'
  
 전북 이동국이 1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020 K리그1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전북 이동국이 1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020 K리그1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밖에서는 손흥민이 기쁨을 줬다면, 안에서는 K리그가 축구팬들을 위로했다. 통상적으로 2월 말 혹은 3월 초 개막하던 것과 달리 2020년 K리그는 코로나19 사태로 개막이 연기됐다. 리그 일정도 38라운드에서 27라운드로 축소되면서 지난 5월 8일에야 뒤늦게 출발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전 세계 주요 축구리그들이 멈춰 있는 상황에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으나 K리그는 용기있게 경기를 진행해 외신들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K리그1의 경우 총 162경기 중 관중 입장이 가능했던 경기는 불과 35경기였고, 관중 허용도도 최고 25%에 불과했다. 총 관중 수는 8만6640명(평균 2천475명)이었다. 숫자로는 아쉬운 수치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결국 끝까지 큰 사고없이 '완주'에 성공했다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 선수, 구단, 팬들, 관계자들까지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과 헌신이 맞물린 결과였다. 코로나19 시대의 K방역과 프로리그 운영의 모범을 전세계에 증명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시즌이었다.

직관의 열기가 사라진 아쉬움 속에서도 올 시즌 K리그는 훌륭한 경기력과 짜릿한 명승부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전북과 울산의 '현대가 형제'는 올 시즌도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뜨거운 우승경쟁을 펼쳤다. 결국 전북 현대가 수성에 성공하며 K리그1 역대 최초의 4연패(2017-2020년) 역대 단독 최다인 8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또한 전북은 2005년 이후 15년 만에 FA컵 우승까지 달성하며 창단 첫 더블(2관왕)의 영광을 이룩했다. 전북 중원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손준호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드물게 올 시즌 프로축구 MVP의 영광을 누렸다.

어쩌면 우승보다 더 치열했던 것은 승강 대전이었다. 인천-성남-부산 등이 치열하게 경쟁했던 1부리그 잔류 싸움 최종전에서 인천과 성남이 극적으로 생존하고 부산이 1년 만에 강등당하는 대반전으로 마감했다. 강등 1순위로 꼽히던 성남이 최종전에서 부산 아이파크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잔류에 성공한 장면, 2부리그에서 수원FC가 경남FC와의 승강 PO 최종전에서 종료 직전 PK를 얻어내며 1-1 무승부로 1부 승격을 확정짓는 장면 등은, 오로지 축구이기에 가능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는 평가다.

1부에서 우승과 잔류, 강등 모두 상하위스플릿이 적용되는 파이널라운드에서 갈렸다는 것도 지난해와 흡사했다. 첫 도입때만 해도 우려가 적지 않았던 승강제 도입과 스플릿제도가 K리그 최고의 흥행보증표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명예로운 은퇴' 이동국
 
 이동국이 1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020 K리그1 전북 대 대구 경기가 끝난 후 밝게 웃고 있다. 2020.11.1

이동국이 1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020 K리그1 전북 대 대구 경기가 끝난 후 밝게 웃고 있다. 2020.11.1 ⓒ 연합뉴스

 
한국축구 역대 공격수 계보를 잇는 스타이자 전북의 레전드 이동국은 올 시즌을 끝으로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했다. 이동국은 K리그 통산 최다 득점(228골)과 최다 공격포인트(305개), 필드플레이어 최다 출장(548경기), 필드플레이어 최고령 출장(41세 6개월 3일) 및 최고령 득점(41세 1개월 15일) 등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한편으로 이동국의 은퇴는 한국축구에서 '정통 공격수' 발굴이라는 큰 숙제도 남겼다. 이동국에 이어 정조국까지 90년대-2000년대부터 한국축구를 이끌어왔던 스타급 공격수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는 반면, 이들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K리그에서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올시즌도 주니오(울산)와 세징야(대구) 등 외국인 공격수들이 득점과 주요 상위 기록을 독식하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재능있는 선수들은 일찍 해외로 나가거나 혹은 외국인 선수와 경쟁해야 하는 정통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기피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국내 공격수들은 대부분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과 울산의 강세에 비하여 전통의 빅클럽으로 꼽히는 서울과 수원의 동반 하위스플릿 추락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서울은 올 시즌 최용수 감독 사퇴 이후에도 무려 3명의 감독대행을 거치는 촌극을 빚어야 했다. 시즌 초반에 관중석 성인용품 인형 반입 사태로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서는 수비수 김남춘이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올시즌 1·2부 22개팀 중 무려 5개 팀이 시즌 중 감독 사퇴라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는 유례없는 '감독 잔혹사'라고 불렸다. 황선홍-최용수-이임생처럼 인지도 높은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들도 수난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K리그 1·2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동(포항)-남기일 (제주), 수원FC의 승격을 이끈 김도균(수원), 광주를 창단 최고성적으로 이끈 박진섭(서울), 스타출신 감독의 가능성을 보여준 설기현(경남)과 김남일(성남)까지 '70년대생' 감독들의 대거 약진으로 K리그 감독의 세대교체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게 2020년은 잊고 싶은 한 해였다. 코로나19 사태로 국제 경기 일정이 사실상 올스톱되며 예정된 월드컵 지역예선을 하나도 소화하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10월에는 궁여지책으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과의 스폐셜 매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11월에는 오스트리아에서 모처럼 정예멤버가 소집되어 멕시코-카타르와 매치 2연전 일정을 소화하며 1승1패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벤투 감독의 점유율 축구에 대한 효율성은 의구심을 자아냈다. 설상가상 소집기간 선수와 스태프 사이에서 연달아 확진자가 속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내년 이후에도 대표팀 운영과 원정 경기 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손흥민 K리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