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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7월 2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복직 응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1986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해고된 뒤 2011년 크레인 농성 후에도 복직하지 못했고 올해 정년(만 60세)을 앞두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7월 2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복직 응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1986년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다 해고된 뒤 2011년 크레인 농성 후에도 복직하지 못했고 올해 정년(만 60세)을 앞두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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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숙 언니, 언니에게 진 빚 갚으려 사람들이 모입니다(http://omn.kr/1qxno)
② 노동변호사가 대통령이지만... 당신은 여전히 해고자(http://omn.kr/1qzkf)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만약 장례식장이라면 결코 보러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기일. 가진 것 없이 몸뚱이 하나로 험한 세상 살아내느라 늘 고단하고 비루했던 아버지는 저 세상에서 영험해지셨다. 될 듯 말 듯한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주더니 속으로만 앓았던 소원까지 들춰서 들어주신다.

작년 이맘때다. 그리곤 재회. 뿌옇게 김 오른 온천. 아버지 제사 마치고 지치고 힘들어 가끔 다니던 온천장 대중탕을 찾았다. 한참 긴장을 풀어가던 중에 불현듯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샤워기 아래 돌아앉은 깡마른 여자. 사람 몸이라고 하기엔 척추 돌기가 지나치게 도드라져 고대 어느 짐승의 등짝 같다.

게다가 머리카락까지 하얗게 새었다. 팔 한번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어 보여 오지랖 넘은 마음이 성큼 대며 앞서다가 흠칫 물러선다. "아, 김·진·숙이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더니 저기 좀 보소. 죽기 전에 한번 보자고 벼르고 벼렸더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저 모양으로 나타났네.

밉다. 정말 밉다. 목젖이 아프고 눈알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허적허적 자꾸만 헛손질을 해대다가 끝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어버렸다. 그렇게라도 달래 두지 않으면 무슨 말이든 비명으로 터져 나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울고 세수하고 울고 세수하고 또 울고. 목욕탕이라 다행이다.

그러는 사이 허깨비 같고 고대 짐승 같은 그이가 일어선다. 천천히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서 나간다. 멍하니 그 뒤통수만 쫓다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그때서야 몸이 움직인다. 비로소 가슴이 뛰고 마음이 기쁘다. "아! 살·아·서 만났구나."

이미 옷 입고 나서는 그를 뚝뚝 물기 흐르는 알몸으로 막아섰다. 흔들리는 눈, 많이 놀란 눈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훌쭉해진 뺨을 쓰다듬었다. 살아서 만났으니까. 영락없는 바보처럼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뭘 잘했다고. 그러니 나도 따라 웃을밖에.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전국 각지가 들끓어도 소식 한 자락 없던 사람이다. 시시한 말 다 접어두고 "그냥 밥이나 한번 먹자는데 전화는 왜 안 받아요." 버럭 댔더니 "그래, 그래" 한다. 무턱대고 감사하다.

언제나 전설 같은 '의장님'
 
14일 85크레인 고공농성 이후 9년 만에 희망버스가 출발한다는 내용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 기자회견이 열렸다. 내건 구호는 ‘해고없는 세상! 김진숙 쾌유와 복직'이다. 영도조선소에서 김진숙의 동료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19일 희망버스 출발" 14일 85크레인 고공농성 이후 9년 만에 희망버스가 출발한다는 내용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 기자회견이 열렸다. 내건 구호는 ‘해고없는 세상! 김진숙 쾌유와 복직"이다. 영도조선소에서 김진숙의 동료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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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사다. 30년 전 병원노조 활동 초창기, 1990년대다. 전노협의 시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형형하게 빛났던 눈빛들. 그 살아 움직이는 눈빛에 반해 그들처럼 살고자 함께 달렸다. 당연한 수순으로 해고되고, 제3자 개입금지로 구속되고,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그 당시는 부산지역노동자연합(부노련) 의장. 지금도 무심결에 의장님, 한다. 나뿐 아니라 그 시절 옷깃 스친 모든 이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전설 같은 '의장님'이다. 당시 전노협 부산지역본부와 금속노조와 병원노련, 부노련 등이 부전시장 어귀 한 건물에 엉켜 지냈다. 만나지 않으려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물다섯이 서른둘이 되도록 함께 살았다. 가혹했지만 가슴 저미게 아름다웠던 시절, 다시 태어나도 또 그렇게 살 것이다.

광주의 5월과 망월동을 다녀온 것이 시작이었다. 함께 웃고 술잔 기울였던 이들을 하나, 둘씩 솥발산 열사 묘역에 묻으면서 떠날 수가 없었다. 병원의 3교대 근무도 힘들었지만 잔업에 특근, 철야로 하얗게 말라가는 고무(신발)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고는 도저히 그냥 살 수가 없었다.

아침 7시 출근해서 저녁 7시 퇴근, 잔업은 밤 10시까지, 특근은 자정까지, 철야는 다음날 새벽 4시까지란다. 그리고 3시간 자고 다시 아침 7시 출근이라니, 이게 어떻게 사람이 사는 방식일 수 있나.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세상이 이 모양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소금꽃 나무> 책을 끝내 읽었다. 그 책에 실린 많은 연설문들. 그 글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기에 첫 장을 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 그 모든 글이 꼬박 일주일에서 열흘까지 뼈를 깎고 살을 태워 만들어낸 글들이었다. 좁은 자취방을 너구리 굴로 만들면서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우고. 수십 수백 번의 첨삭을 거치고도 만족할 줄 몰랐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의 연설과 글은 한 번도 사람들의 마음과 염원을 빗나간 적이 없다. 기어코 눈물을 쏟게 하고 끝내 함성을 만들었다.

부전시장 사무실을 떠나던 날.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떠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며 호언장담도 했다. 하지만 그 끝이 그토록 절망인 줄 알았다면 아무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렸을 것이다.

다르게 사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웠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 하지만 쥐구멍에 볕들 듯 내 인생에도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긴 여행을 다녀오고, 고마운 인연을 만나고, 결혼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의 어미가 되고. 그렇게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전처럼 전선에 서 있지는 못하지만 이 삶이 헛되지 않도록 나와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자 노력한다.

정년 전에 단 하루라도

간호사, 노인요양병원의 간호사는 안성맞춤이다. 친절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과 부드러운 손길만 있어도 충분하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이나, 길거리를 청소하고,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법정에서 재판을 하고, 심지어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한다고 해도 그 노동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그냥 일이다. 하루 8시간을 일하고 받는 임금이 왜 그렇게 하늘과 땅으로 달라야 하나. 의식주 기본적인 삶에 왜 지옥과 천상으로 깊은 골이 파여야 하나.

암이 재발했다고 한다. 그 마른 몸이 지금은 어떠할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는 그 몸으로도 현재 투쟁 중이다. 35년 동안 돌아가고 싶던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정년 전에는 단 하루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불의가 바로잡아져야 한다. 그렇게 사람 사는 세상, 평등의 세상을 향해 오늘도 김진숙이 살아 숨 쉬며 간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든 내가 김진숙이고 김진숙이 나다. 내일(19일) 다시 부산을 찾는다는 350대의 희망차 승객들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이렇게 무수한 김진숙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이의 어깨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바란다.

- 김성란(전 병원노련 부산본부 선전부장)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년째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오는 19일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방식은 드라이브스루(차량 탑승형)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년째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해 오는 19일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방식은 드라이브스루(차량 탑승형)이다.
ⓒ 희망버스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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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복직 드라이브스루 부산 희망차 참여신청 바로가기 (http://asq.kr/ybv3ubvO5IPI2U)

태그:#김진숙,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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