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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분석했다. 또 피해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아홉 차례에 걸쳐 그 실태를 해부한다. 이 기사는 그 네번 째다. [편집자말]
아동·청소년 성매수자들은 과연 제대로 처벌받고 있는 것일까?
 아동·청소년 성매수자들은 과연 제대로 처벌받고 있는 것일까?
ⓒ peakpx

A는 랜덤채팅 앱을 통해 알게된 피해자와 2019년 1월 26일 한 차례 성교를 하고, 그 대가로 15만 원을 지급했다. B 또한 랜덤채팅 앱을 통해 같은 피해자와 2019년 2월 17일 3만원을 주기로 약속하고 만나 피해자와 수회 성교했다. 피해자는 12살이었다.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19고합31)

C는 2019년 6월 17일 피해자와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15만 원에 성관계를 하기로 약속하고 만나, 성교를 하고 11만7000원 상당의 담배를 피해자에게 건넸다. 이후 C는 2019년 6월 30일 또다시 스마트폰 앱을 통해 피해자에게 접촉해 15만 원에 성관계를 하기로 약속하고 만났다. 하지만 C가 10만원만 준다고 하자 피해자가 성교를 거부했고, 이에 C는 피해자의 가슴과 음부 부위를 만지면서 강간하려고 했지만, 피해자의 저항에 미수에 그쳤다. 피해자는 16살이었다 (부산지법서부지원 2019고합206)

D는 2018년 7월 피해자를 만나 승용차에 태운뒤, 차량 내에서 성교를 한 뒤 그 대가로 현금 10만 원 및 담배 10갑을 지급했다. 이후 다시 피해자에게 연락해 평촌역 인근 모텔에서 성교를 한 뒤, 현금 15만 원을 지급했다. 피해자는 17세였다. 그리고 D의 직업은 교사였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2019고합121)


위의 사례들은 아동청소년 성매수 범죄로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의 '범죄 사실' 부분을 요약해 옮긴 내용이다. 그렇다면 성매수자인 이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어땠을까? 

A·B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취업제한 2년), C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D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특히 A·B는 12세를 상대로 성매수를 했다. 12세는 의제강간 연령이다. 이럴 경우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으로 간주되어 처벌된다. 하지만 A와 B가 피해자가 12세임을 모르고 성매수를 했다는 가해자의 주장이 인정돼, '의제강간'이 아닌 성매수로 처벌받은 것으로 보인다. 의제강간은 형법상 강간죄(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에 준해서 처벌받는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점 한 가지가 있었다. 동종범죄 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는 사실이다.

초범에게는 따뜻한 법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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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아동·청소년 성범죄 판결문 219개(2020년 1~10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성매수, 강요행위, 알선영업행위 등 키워드 검색)를 검토했고, 이중 62개(성매수 48개, 성매수를 주요 행위로 하되 강제추행, 공갈, 실종아동법 위반 등의 추가 범죄가 더해져 처벌받은 14개)의 1심 판결문, 14개의 2심 판결문을 분석해서 '성매수자'가 받는 형량을 정리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13조 1항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매수자들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상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반면 성인 대상 성매매를 했을 경우,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를 받는다.

이처럼 우리 법은 아동·청소년의 판단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성매수자인 성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본다. 성인에 의한 침해를 받기 쉬운 아동·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법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에 대해서도 비교적 엄하게 다스리고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성매수자들이 감옥에 가는 일이 드물다. 1심 판결 62건 중 성매수자에게 실형을 내린 경우는 7건(11%)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42건(67%)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도 13건(22%)이나 있었다. 동종범죄 전과가 있는 재범인 경우에만 실형이 선고됐다. 재범인 경우에도 집행유예가 선고된 재판이 5건 있었다.

왜 실형 선고가 많지 않을까? 지난해 5월 아청법이 개정되어, 성매수 가해자의 상대방은 더 이상 처벌의 일종인 보호처분을 받는 '대상 아동'이 아닌 '피해 아동'으로 분류된다. 가해/피해가 명확한 범죄이며, '매매'로 보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고 있는 서혜진 변호사는 "성착취를 여전히 성매매로 이해하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태도 때문에 실형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여성가족부의 '2018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동향분석 보고서' 역시 아동청소년 성매수자가 받는 처벌의 종류에 대해 집행유예 64%, 벌금 28.5%, 징역 7.6%로 조사한 바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해온 이은의 변호사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을 매수하는 사람에게 비난의 초점을 맞추지 않고, '누가 너희보고 팔래?'라며 열악한 지위에 있는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짙다"라며 "보호의 대상인 미성년자에게도 그런 시선을 보내고 있으며, 사법부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가 감형 요인

이러한 사법부의 경향성은 판결문에서도 드러난다. 수많은 판결문들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서술하고 있으면서도, '가해자에게 한 번쯤 기회를 줘야 할 범죄'라는 시선이 반영돼 있다. 31세의 직장인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14세 피해자의 성을 두 차례 매수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10월 징역, 2년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며 아래와 같이 밝혔다.

"피고인의 가족적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의 가족관계, 직업, 연령, 소득 및 가계상황 등을 감안하면,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할 경우 향후 피고인의 건전한 사회복귀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피고인이 진정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건전한 삶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며, 이번에 한하여 피고인의 다짐을 믿고,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하기로 한다. 다만, 피고인이 판시와 같은 행위를 또다시 반복할 경우 더 이상 선처의 여지가 없음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2020고합24)


2심 판결에서 감형되는 경우도 있다. 2018년 4월 스마트폰 채팅 프로그램으로 20만원을 주겠다며 16세 피해자를 유인한 가해자는 벌금 700만원과 취업제한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원심이 파기되고 벌금 300만원, 취업제한 1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는 동종범죄 전과가 있었다.

"피고인은 벌금형을 넘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이 사건 범행사실을 시인하면서 그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스스로 성매매예방교육을 이수하는 한편, 다년간 꾸준히 여러 사회단체에 기부금을 납부하면서 선행을 베풀어 왔을 뿐만 아니라, 당심에 이르러 피해자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함으로써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피고인과 가족들과 지인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비롯하여..." (대전지법 2019노1397)

법원은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년간 사회단체 기부금 납부'를 했다는 사실, 여기에 가족들과 지인의 선처 탄원을 그의 처벌을 줄일 수 있는 사유로 본 것이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형은 재범 가능성을 두고 판단한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가족도 있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 실제로 재범율이 낮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경험적으로 입증됐는지는 의문이다. 도식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기준이다"라고 지적했다.

2018년도 아동 청소년대상 성범죄 동향분석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매수 가해자 중 '사무직관리' 종사자는 32%이고, 서비스판매직 종사자는 19.2%다. 무직인 가해자는 13.1%에 불과하다. 모든 아동성범죄 유형중 사무직관리 종사자 비율은 제일 높고, 무직인 비율은 가장 낮다.

이렇듯 성매수 가해자는 강간·강제추행·음란물 제작·성매매 알선 등 다른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보다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사회적 유대 관계가 있는' 평범한 남성들이 저지르는 성매수가 더욱 더 낮은 형량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취업제한의 역설... 과도한 기본권 침해는 안된다? 
 
아동·청소년을 성매수해도 취업제한 명령을 내려지지 않았던 판결이 39%나 됐다.
 아동·청소년을 성매수해도 취업제한 명령을 내려지지 않았던 판결이 39%나 됐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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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건의 아동청수년 성매수 1심 판결 중 취업제한 명령이 내려진 판결은 38건(61%)이다. 나머지 24건(39%)은 취업제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취업제한 명령은 성범죄자 대상으로 최장 10년까지 아동 및 청소년 기관·장애인 복지시설의 취업,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을 제한하는 조치다.

취업제한에 대해 규정한 아청법 56조 1항은 "성범죄 사건의 판결과 동시에 이를 선고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한편 '재범의 위험성이 현저히 낮은 경우, 그 밖에 취업을 제한하여서는 아니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예외 규정에 기반해 법원은 취업제한 명령을 면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원은 취업제한이 사실상 '이중처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과거 성범죄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10년 취업제한을 규정한 아청법 56조 1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임에도 취업제한을 받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취합제한이 내려지지 않은 24건의 판결 중 2건은 재범이었다. 

취업제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판결에서도 나타난다. 이용자 42명 중에 취업제한을 받은 가해자가 11명이며, 운영자 손정우 역시 1심에서는 취업제한이 면제됐다.  

성매수 가해자 E는 지하주차장에 주차한 자동차 내에서 14세인 피해자에게 10만원을 주기로 하고 성교를 했고, 이에 1심에서는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에 3년의 취업제한을 명령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취업제한이 면제된다. 법원이 밝힌 이유는 아래와 같다.

"피고인은 동물체험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동물체험관의 주요 수요계층이 아동이나 청소년일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나, 한편 같은 증거에 의하면 이 사건 피고인의 범행은 휴대폰 앱을 이용하여 동물체험관과 관계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성매수를 한 것이고 (...) 범행의 특성상 피고인이 향후 자신의 직업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새로운 피해자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거나 피고인의 직업이 이 사건과 같은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수원고등법원 2019노644)

법원이 성범죄 재발보다, 가해자의 기본권 침해를 더 우려한 셈이다. 앞서 17세 피해자를 성매수한 가해자 D 역시 교사임에도 취업제한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처벌 강화되어야 사회적 인식 변화돼... 양형 기준 높여야"

<오마이뉴스>가 검토한 판결문 내용에 대해 아동 성범죄 관련 전문가들은 법원이 아동·청소년 성매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한편, 성매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장임다혜 연구위원은 "이미 아동 성매수=성착취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아동이 동의했거나 관계를 적극적으로 가져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착취적인 행위'라는 것이 인정되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판례가 사회의 변화를 못 쫓아가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장 연구위원은 "법원에서는 피해 아동이 순진무구해 보여야 '피해'가 인정이 된다. 이들이 손쉽게 성관계를 선택한 것 자체로 비난 가능성이 높기까지 하다"라며 "아동이 아닌 가해 남성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사건의 착취적 성격을 고려해서 엄히 다스려야 한다"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형사부 판사는 "재판부 내부에서 양형을 갑자기 높이는 것은 쉽지 않다"라며 "갑자기 1~2달 사이에 사회적 분위기가 변한 것을 법원이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비슷한 사건인데 몇 주 전에 비해 갑자기 높은 형을 내릴 수도 없고, 옆 재판부와 형량이 크게 차이 나는 판결을 할 순 없지 않겠나"라고 실무적인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대법원 양형 기준위원회가 나서서 양형 기준을 높이는 방법이다. 판사들이 개별적으로 들쭉날쭉한 판결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양형 기준을 만들어서 솜방망이 처벌은 막자는 것이다.

서혜진 변호사는 "아청법에서 대상 아동 조항을 삭제한 법률 개정도 너무 늦었다"라며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자에 대해선 처벌을 강화해야 사회적 인식이 변할 수 있다. 취업제한 명령 역시 개인에게는 가혹한 측면이 있더라도 아동 보호를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동시에 피해자 보호 정책도 함께 가야 한다"라며 "검찰에서 진술 조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어서 가해자가 처벌을 안 받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어느 지역에서 언제 피해를 입더라도 '피해자 진술 조력인' 등 제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지는<④-2 "아동 성매수하면 인생 끝난다는 인식 줘야"... 현직 판사의 제언>에서 양형기준의 문제점을 소개한다.

태그:#성매수, #성착취, #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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