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먹이를 주기 위해 닭장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아직도 낯선 모양이다.
▲ 아직도 낯선 백봉 오골계  먹이를 주기 위해 닭장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아직도 낯선 모양이다.
ⓒ 이승열

관련사진보기

 
배보다 배꼽이 크다

아내의 민원 현장을 같이 둘렀다가 오는 길에 도정공장(RPC)에 들러 차가 꽉 찰 정도로 쌀 딩겨 2포대, 싸레기 2포대, 배추 2포대를 구해 왔다. 딩겨는 수시로 바닥에 깔아 주고 싸레기는 배추 부스러기와 함께 먹이로 줄 것인데 아마 몇 달은 먹이지 싶다.

우리 집 양식은 5가지다. 쌀, 진도견 사료, 소형견 사료, 고양이 사료. 닭 사료인데, 돈으로 따져 공식화하면 이렇다.

쌀>소형견>고양이>진도견>닭,
쌀×2 =소형견+고양이+진도견+닭,
쌀+닭<소형견+고양이+진도견.


수입은 계란이 전부이니 생산성이 있는 것은 쌀사료 뿐, 나머지는 죄다 먹고 싸는 용도라서 비경제적이나 인문학적 가치를 따질 때는 영 허망하지는 않다. 어제는 아침에도 계란을 안 낳았고 민원 현장을 다녀와서 저녁에 또 가 봐도 없고, 오늘 아침에 나가 언 물을 녹이고 싸래기와 배추를 줄 때도 없었다. 오늘은 종일 거울의 각도를 조정하기 위해 나갈 때마다 봐도 없었기에 나흘 동안 양계업은 완전히 공쳤다.
 
비록 하루에 여덟번 정도 각도를 조정해 줘야 하지만 닭장의 보온에는 효과가 있다.
▲ 거울을 이용한 채광 시설 비록 하루에 여덟번 정도 각도를 조정해 줘야 하지만 닭장의 보온에는 효과가 있다.
ⓒ 이승열

관련사진보기

 
허술한 초보에게 온 충고들 

양계 일지를 본 밴친(밴드 친구)이나 페친들이 여러 충고를 해줬다. 그동안 온라인, 오프라인의 지인들은 격려와 칭찬, 염려, 조롱, 야유를 아낌없이 보내 주었다.

ㅡ 청계를 더 넣어 키워라.
ㅡ 아니다. 다른 닭을 섞어 넣으면 싸움이 나는데 그것은 닭싸움이 아니라 개싸움 수준이다.
ㅡ 수탉이 계속 시끄럽게 울면 먹이를 줄 때 말을 걸며 더 정을 줘라.
ㅡ 닭에게는 상추가 최고다. 내년에는 텃밭에 상추를 많이 심어라.
ㅡ 무슨 소리. 나도 상추를 좋아하니 심는 김에 좀 나눠 달라.
ㅡ 수동식 태양광 스마트 시스템은 해외토픽감이다.
ㅡ 밥 팔아 똥 사먹을래? 그냥 달걀 사서 먹어라.


고작 닭 다섯 마리를 키우는 사람에게 주는 넘치는 사랑일 것이나 말들이 서로 부딪치고 넘쳐서 아둔한 나는 하나도 고를 수가 없다.

닭들은 막대기 위에 모여서 밤잠을 자고 낮잠은 짚더미 바닥에 앉아서 자는데 계란을 낳는 중인지, 아니면 그냥 쉬고 있는 중인지는 아직 분간하지 못한다. 하여튼 오늘도 닭들은 종일 쪼아 먹고 잘 놀고 잘 울었지만, 알 낳는 볏짚은 텅 비었다.

달걀 안 먹는다며?

양계일을 시작한 지 10일이 지난 오늘, 꼴랑 계란 세 개를 쳐다 보며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했다. 지난 주 일요일에 놀다가 간 다섯 살 외손주가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며 "나는 이제 계란하고 치킨은 안 먹어. 불쌍해서"라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진짜 이 경험으로 편식을 하면 어쩌나 싶어 나의 양계업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월요일에 큰딸이 사진과 함께 사연을 보냈다. 치킨을 맛있게 먹는 손주에게 "이제 치킨은 안 먹는다며?"라고 물었더니 "외할아버지 닭은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아저씨 닭은 먹어도 돼"라고 했단다.

아, 그 나이에 출구전략을 깨우친 것일까. 아무튼 날이 풀려서 오늘은 달걀을 낳겠지. 방금 아홉번 째로 확인하고 왔으니 열번 째는 틀림없을 거다.

덧붙임. 농업계열 교사, 그 중에서도 동물전공인 모 후배가 "겨울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에너지 비축으로 인해 달걀을 낳지 않는데, 인공적으로 일조량을 늘리면 알을 낳기도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수동식 태양광 스마트 시스템으로도 안 되냐?"고 물어 보니 "피식"하며 웃었다. 이렇게 버릇없는 후배인 줄은 몰랐다. 

(제4화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 거제도 갯가에 엎드려 살면서 백봉 오골계 다섯 마리를 키우는 은퇴한 백수입니다. 생전 처음 키워보는 닭과 씨름하면서 생긴 이야기가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작은 웃음이라도 주면 좋겠습니다.


태그:#거제도 와현, #양계일지, #좌충우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