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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을 하겠다. 며칠 전 고등어 한 점을 먹었다. 아니, 정확히 딱 세 점. 나에겐 청국장과 물미역, 버섯볶음 등이 있었고 평소 같으면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누군가 주문한 자반 고등어에 자꾸만 눈길이 갔고 계속 흘끔거리는 내 자신이 싫어 에라 모르겠다, 젓가락을 뻗고 말았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멸종 위기의 동물도 아닌데 웬 고백이냐 싶겠지만 나는 1년 넘게 비건을 지향해 왔다. 이제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건만 나도 날 모르겠다. 아무리 인지도도, 영향력도 없다지만 채식에 관한 공개적인 글도 쓴 적 있는데 식탐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사실 부끄러운 건 이뿐만이 아니다.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를 종종 먹어왔다. 어묵을 먹은 적은 없지만 그것이 우러난 국물을 먹은 셈이다. 또한 생새우와 젓갈을 넣어 만드는 엄마의 김치를 여전히 사랑한다. 언젠가는 내 손으로 비건 김치를 만들어 먹겠지만 그런 날이 늦게 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비건은 단지 식습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동물을 착취하는 모든 행위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시야를 확장하면 부끄러움은 더욱 커진다. 내 겨울을 따스하게 해주는 두툼한 점퍼는 거위 털로 충전되어 있고 모자 주위엔 보란 듯이 털까지 빙 둘러져 있다.

어디 점퍼뿐이겠는가. 물론 전부 비건을 지향하기 전에 산 것들이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고 나면 다시는 동물성 소재를 사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지금 바로 버릴 생각은 없다. 폐기가 최선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당장 그 물건들이 주는 편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심정. 그러니 나는 또 부끄러워진다.

한 문단에 한 번씩 성실하게 고한 나의 '부끄러움'. 이런 생각을 하자면 과연 내가 비건을 지향한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선한 영향력은 언감생심, 나 하나 제대로 주체하지 못할 것이라면 이전과 다른 게 뭐란 말인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동물을 소비하던 시절 말이다.

자책하던 와중 뜻밖에도 '제로웨이스트'에 관한 책 한 권 덕분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하나라도 실천하고 있으며 허점의 유무보다는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실수할지라도 방향을 잃지는 않겠다고 결심도 해 본다. 나, 그것만큼은 자신할 수 있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나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듯 남의 완벽하지 않음을 이해하자. 너나 나나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본문 251쪽)
 
<제로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 책표지
 <제로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 책표지
ⓒ 판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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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의 저자 소일은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윤리적 최소주의자'로 명명한다. 언뜻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니멀리스트'를 한글로 옮긴 것이며 여기에 사람과 사회, 환경에 해를 덜 끼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저자는 화장품은 물론, 샴푸와 치약도 사용하지 않으며 화장실에서는 휴지 대신 소창을 쓴다고 한다. 갖고 있는 사계절 옷은 총 29벌. 수명이 다해 못 입게 된 옷은 손수건이나 에코백을 만든다. 과일은 영양도 챙기고 쓰레기도 줄일 겸 가급적 껍질째 먹는다는데, 사과는 물론 참외와 귤까지 포함된다. 

비닐 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정도는 이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녀는 거듭 말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실천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또한 사람은 살아가는 한 쓰레기를 만들 수밖에 없기에 원대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삶의 태도를 전환'하자고 말한다.
 
"물건을 보고 소비 욕구를 키우는 게 아니라, 물건의 기능부터 생각하면 무분별한 쇼핑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필요에 적확한 제품만을 찾아 쓰는 사람이 된다. 그러다 보면 점점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모하기도 한다. (…) 이렇게 직접 만들거나 고쳐 쓰는 능력을 갖추면 쓰레기를 배출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19쪽)

저자는 제로웨이스트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인정한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을 위해 더 비싼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망설여질 수 있고, 가끔은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수입산과 환경에 관한 언급이 없는 국내산 먹거리 중 무엇이 나을지 혼란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소비와 사용, 처분, 나아가 생산에도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한없이 어설픈데도 불구하고 비건을 지향하고 또 밝히게 된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작게 시작할 것을 권하는 동시에 은근슬쩍 큰 꿈을 내보인다. 
 
"작은 실천들이 모이면 분명히 변화는 찾아온다. 세계를 바꾸기는 힘들지만 나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바뀌면 세상도 바뀐다." (250쪽)
 
 며칠 전 고등어 한 점을 먹었다.
  며칠 전 고등어 한 점을 먹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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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건을 지향하며 저자의 말을 소박하게 실감한 바 있다. 가령, 가족들이 모처럼 모이는 날엔 여전히 식탁 위에 고기가 올라오지만 그 총소비량은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는 분명 나 한 명이 먹지 않는 것 이상의 변화다. 또한 고기를 먹는 것이 점점 꺼려진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거시적인 세상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자신과 나를 직접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작은 세상은 변할 수 있음을 체감한다. 그러니 꼭 비건이나 제로웨이스트가 아니더라도,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을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에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 말마따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의 부제는 '하루에 하나씩, 나와 지구를 살리는 작은 습관'이다. 이에 충실하게 지금 바로 해볼 수 있는 실질적인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수작업을 좋아한다면 이면지로 전통 제본 방식의 공책을 제작할 수도 있고,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이내 버려지는 보자기의 다양한 활용법도 얻어갈 수 있다. 

환경이 걱정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한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는 집 안 구석구석 방치되어 있던 손수건들을 찾았고 휴지 대신 늘 소지할 생각이다. 내 자신이 완벽하지 않으며 나 하나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은 접어둔다. 내가 믿는 대로 실천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으니.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제로 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 - 하루에 하나씩, 나와 지구를 살리는 작은 습관

소일 (지은이), 판미동(2021)


태그:#제로웨이스트는 처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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