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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할당, 설득력 있나 

청년할당은 문제라고 본다. 청년이라는 정체성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 할당, 성소수자 할당, 농어민 할당, 비정규직 할당 같은 당사자성을 고려한 할당이라 보기도 어렵다. 또 같은 능력을 지녔고, 더 잘할 수 있는데 청년이라는 나이 기준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할당 취지에 대한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도,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도 청년세대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진정성으로 청년할당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청년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이미지를 얻으려 했다는 평가만 남았다. 강준만 교수가 말했듯 늙은 정치인들의 주름살을 가리는 비비크림 정도로 청년의 이미지와 인물을 소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할당된 그들에겐 좋은 일이다. 그들의 정치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인생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다시 절치부심해서 더 나은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이력서에 '전 국회의원' 한 줄이라도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에겐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할당된 청년정치인들은 실제적인 능력 면에서 기성정치인들만 못했고, 그 부정적인 평가는 청년들의 정치 앞에 큰 장애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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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청년정치는 결과로 말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동등한 시각과 실력으로 기성세대를 누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잘해서 봤더니 청년이어야지, 청년이니까 일단 시켜보자는 믿음으로 정치를 맡긴다면 미래세대의 가능성만 닫는 꼴이 될 것이다. 평평한 운동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지, 일단 당선시켜놓고 보자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정당이 시스템으로 청년정치인 육성해야

비비크림 청년할당방식 대신, 체계적으로 청년들을 교육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진정으로 청년세대가 정치에 나서길 바라고 동등한 실력으로 기성세대의 정치를 대체하길 바란다면 말이다.

유튜브 박시영TV에서 민주당 정은혜 전 의원이 나와 했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HOT나 핑클 같은 1세대 아이돌들은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예계에 입문했고 연습기간을 오래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열정과 재능으로 커버했다. 반면 최근 등장한 BTS나 블랙핑크 같은 아이돌들은 오랜 기간 자신들의 10대를 바쳐 연습하고 훈련된 인재들이고 이런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이 전세계적으로 K-POP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한국의 정당들도 이런 흐름을 참고해 청년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

북유럽에서 20대 장관, 30대 총리가 나오는 것을 마냥 부러워해서 덜컥 자리를 내어주는 건 결과만 놓고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10대 때부터 정당활동을 통해 훈련을 받아왔고 그래서 국민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청년이라고 하면 물음표부터 붙는 지금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청년들이 결과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정당 내에서 체계적인 청년정치인 육성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정당들, 교육프로그램과 자체조직 등 투트랙으로 접근해야

정답은 아카데미와 청년당의 투트랙 전략이다. 정의당은 2018년에 향후 10년을 내다보면서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라는 훌륭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했다. 최소 10개월 동안 함께 어울리며 주말마다 공부하고 실습할 수 있는 훌륭한 교육시스템이다. 오랜 기간 동안 수강생들을 교육하며 관리하고, 정당의 이념과 정책을 학습시키고, 그 과정에서 청년정치인에 대한 사전검증까지 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다.

청년할당 대신 아카데미 출신들에게 의원실 1년 근무를 할당하는 것이 백배 낫다고 본다.

당의 자체적인 교육시스템 안에서 발견한 인재들에게 의원실 1년 근무를 할당하는 것이, 외부의 검증되지 않은 청년에게 국회의원 당선을 약속하는 것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가? 이들이 원내 경험을 쌓고 지역으로, 시민사회로, 정당으로 뻗어나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당을 위해서나 청년 정치를 위해 더 중요하다. 또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청년들의 정치적 사고를 기르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당대표 성추행과 맞물려 창당이 미뤄지긴 했지만, 정의당 내 청년당인 청년정의당은 착실하게 창당을 준비해나가고 있다. 청년당은 청년들이 정치적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체적인 세력화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독일의 청년당들의 경우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독일의 기민당,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은 모두 자체적으로 청년당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정당과도 각을 세우고 논쟁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색채를 분명히하고 독자적인 주관을 바탕으로 정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1월28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성평등 조직문화개선대책 테스크포스(TF) 1차 대책발표'에서 배복주 부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응호, 배복주 부대표, 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지난1월28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성평등 조직문화개선대책 테스크포스(TF) 1차 대책발표"에서 배복주 부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응호, 배복주 부대표, 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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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당 안에서도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 몇 명에게 정당의 명운을 걸고 실전에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보다 시스템 안에서 경험하며 성장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낫다. 또한 청년당 내 청년들이 의견을 모아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평가하고 개선하는 경험들은 그들의 정치인생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당이 키운 인재가 당을 이끌어가는 미래를 꿈꾼다

나는 당이 키운 인재가 당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끝내 꿈을 실현해 당을 이끌어 가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독일에 좋은 사례가 있다. 독일의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적녹연정이란 문제의식을 정리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아무도 사민당이 녹색당과 연정을 통해 집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 했다. 좌파의 낭만적인 상상이라 치부됐다. 오직 빌리 브란트만이 슈뢰더에게 좋은 생각이라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보라며 지원했다. 슈뢰더는 평생 동안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작은 단위에서부터 노력했고 결국 자신의 구상을 실현했다.

기성세대가 진정으로 청년정치를 위한다면 과감하게 청년들의 세력화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청년정치를 위한다면 소수의 청년을 위한 청년할당 같은 시혜적인 조치들 거부하고 청년들의 세력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독일 청년사민당의 과거 슬로건 중 'Unsere Zukunft ist mehrwert(우리의 미래는 더 가치가 있다)'는 슬로건이 떠오른다. 청년들이 자체적인 세력을 구축해 기성세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태그:#청년정치, #청년할당, #시스템, #청년정치인,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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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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