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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첸후먀오자이 먀오족 마을 산길에서 만난 할아버지. 주름진 얼굴, 온화한 미소로 맞아준다. 시장 먀오족은 검정 옷을 즐겨입어 헤이먀오(黑苗)라고도 한다.
 시장 첸후먀오자이 먀오족 마을 산길에서 만난 할아버지. 주름진 얼굴, 온화한 미소로 맞아준다. 시장 먀오족은 검정 옷을 즐겨입어 헤이먀오(黑苗)라고도 한다.
ⓒ 김이나 - 중국 소수민족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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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 중국인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저마다의 춘절(음력 1월 1일)을 보냈다. 새해를 맞이했다는 점에서는 모든 중국인들이 같았지만 춘절을 보내는 방법은 민족마다 제각각이었다.

한족과 한족의 영향을 받은 만주족은 천지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반면 유목민족인 몽골족은 제야(除夜, 섣달 그믐날 밤)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밤을 새우면서 새해를 맞이했다. 티베트족의 춘절은 한족의 춘절과 그 기간이 보통 다를 뿐만 아니라 불교를 믿는다는 점에서 새해가 되면 불상 앞에 가서 참배를 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족과 회족에게는 아예 춘절이 없다. 이들의 춘절 연휴는 일반 공휴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은 한족과 소수민족의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에서 인정하지 않는 동화주의로 전환한 지 오래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어떠한 사상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앞으로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이 어떻게 나아갈지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족을 따르라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은 본래 다원주의를 고수해 왔다. 중국의 헌법은 정부가 다수민족인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에 대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각 민족은 일률적으로 평등하다. 국가는 각 소수민족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고 각 민족의 평등과 단결, 상호관계(2018년에 상호화합관계로 수정)를 지키고 발전시킨다. 그 어떤 민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금지한다.
 
헌법은 더 나아가 소수민족의 자치권과 언어 사용의 자유, 풍속 유지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정부는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그들의 특징에 맞게 발전시킬 의무가 있다고 적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법률이 제정되고 소수민족은 나름의 자유를 누리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될 무렵 소수민족의 민족의식이 강화되고 자유와 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중국 정부는 돌연 소수민족 정책을 동화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인물은 중국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 페이샤오통(費孝通)이다.
 
중국의 인류학자 페이샤오통
 중국의 인류학자 페이샤오통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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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샤오통은 80년대 후반에 '중화민족 다원일체(多元一體) 구조'를 제시했다. 중화민족 다원일체 구조란 상층인 중화민족이 하층인 56개 민족을 포함한 하나의 실체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실체적 관념이 되기 위해서는 하층인 56개 민족을 상층인 중화민족으로 응집시키는 작용이 필요한데, 이러한 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 한족이라는 것이다. 중화민족 다원일체 구조는 한족의 사상인 중화만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하나의 실체적 관념이 생기는 데 있어서 한족이 주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동화주의적인 소수민족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족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화민족 다원일체 구조를 채택한 중국 정부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어 교육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13년 집권 이래 누차 "중화민족은 다원일체의 위대한 민족이다"라고 강조해 왔다.

차별과 동화

중화민족 다원일체 구조는 어떠한 사상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형식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변증법[한족이 정(正)이고 소수민족이 반(反)이고 중화민족이 합(合)]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내용은 중화사상의 모태인 화이(華夷) 사상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유가사상이 나이와 성별, 혈통을 기준으로 차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화를 기준으로 차별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공자가 유가를 창립하기 전부터 주나라에서는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이라는 천문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화이사상이 있었다. 당시에 제하(諸夏)족 또는 화하(華夏)족이라고 불렸던 오늘날의 한족과 한족의 통치하에 있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중앙은 화(華)이고 한족의 통치 밖에 있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사방은 화(華)의 밖이다. '화'에는 한족이 세운 천자국과 제후국, 한족의 통치하에 있는 소수민족이 세운 조공국이 있다. '화'의 밖에는 한족의 통치 밖에 있는 동이(東夷)족, 남만(南蠻)족, 서융(西戎)족, 북적(北狄)족이 세운 국가들이 있다.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이민족의 침략이 이어지자 화이사상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춘추시대 전기, 제후국인 제나라의 군주 제환공은 재상 관중의 보좌를 받으면서 천자국인 주나라 왕의 허락 하에 나머지 제후국들을 이끌고 동이족과 북적족의 침략을 막아낸다. 이 일은 후대에 왕을 추앙하고 이민족을 배척했다고 해서 존왕양이(尊王攘夷)라고 불리게 된다.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난 공자는 주나라의 화이사상을 받아들이고 관중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한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에 관중이 없었다면 나도 (동이족의 풍속에 따라)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왼쪽으로 여몄을 것이다."

주나라의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전국시대에 태어난 유가사상가 맹자는 존왕양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한족의 문화로 이민족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용하변이(用夏變夷)를 주장한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하(夏)를 사용해서 이(夷)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들었어도 이(夷)를 사용해서 하(夏)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화이사상은 중국의 힘이 강할 때는 자취를 감췄다가 힘이 약해지면 존왕양이와 같은 소극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후에는 용하변이와 같은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주나라의 정치인들과 유가사상가들은 애초에 왜 이민족을 차별하게 되었을까? <예기(禮記)> 속 한 편으로 전국시대의 문헌으로 여겨지는 <왕제(王制)>에는 이민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중원을 차지한 국가의 민족과 사방의 민족들은 모두 자신들의 본성이 있고 이러한 본성은 바꿀 수가 없다. 동방의 민족들을 이(夷)라고 부르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문신을 하고 음식을 날로 먹기도 한다. 남방의 민족들을 만(蠻)이라고 부르는데 이마에 문신을 하고 두 발이 서로 엇갈리고 음식을 날로 먹기도 한다. 서방의 민족들을 융(戎)이라고 부르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곡식을 먹지 않기도 한다. 북방의 민족들을 적(狄)이라고 부르는데 깃털과 털로 된 옷을 입고 동굴에 살고 곡식을 먹지 않기도 한다. 중원을 차지한 국가의 민족과 이(夷), 만(蠻), 융(戎), 적(狄)은 각기 평안히 살 수 있는 처소가 있고 적합한 입맛이 있고 적절한 옷이 있고 편리한 도구가 있고 구비된 기자재가 있다. 중원을 차지한 국가의 민족과 사방의 민족들은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고 기호가 다르다.
 
<왕제(王制)>편의 작가는 환경에 따라 조성된 서로 다른 본성은 바꿀 수 없고 서로 다른 본성은 서로 다른 언어와 풍속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와 맹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이사상에는 기본적으로 이민족의 본성과 문화에 대한 한족의 본성과 문화의 우월주의가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족은 이민족을 문화적으로 차별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이기에 앞서 본 바와 같이 한족은 자신들의 문화로 이민족을 동화시키려고 한다. 이때 동화시키는 방법은 물론 자신들의 문화의 정수인 예(禮)를 가르치는 것이다. 만약에 이민족이 자신들의 본성을 거슬러 인위적으로라도 예를 갖춘다면 이민족이 세운 국가는 조공국이 되고 화이질서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경계심 가져야
 
시진핑 중국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0. 5.28
 시진핑 중국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0. 5.2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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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족의 정체성은 인종뿐만 아니라 문화로도 결정된다. 따라서 인종적 차별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별을 받아도 그 민족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자기 정체성을 잃은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쉽게 동화된다. 문화적 차별이 인종적 차별보다 무서운 점은 문화는 정신적인 것이기에 더욱 쉽게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화된 민족은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못 누리게 된다. 동화되었다고 차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족은 이렇듯 이민족을 차별하고 동화시켜 왔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단 한 번이라도 화이질서 속으로 들어온 이민족은 화이질서 속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는 현재 용하변이식의 적극적인 화이사상을 통해서 동화주의적인 소수민족 정책을 펴고 있다.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움직임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화이사상은 기본적으로 중국 소수민족의 문제지만 과거에 화이질서 속으로 들어갔던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의 문제기도 하다. 중국은 또다시 주변국들을 화이질서 속으로 넣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화이사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태그:#중국, #사회, #중국사회, #정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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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매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베이징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구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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