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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등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향토예비군 설치법 위헌법률 심판 사건 등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등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향토예비군 설치법 위헌법률 심판 사건 등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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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명예훼손죄'로 6차례 수사를 받았다. 지금도 명예훼손 관련 사건 1건이 경찰서에 남아있다.

첫 사건은 2016년이었다. 광주의 유명 휴대폰 가게에서 일하던 지인이 점장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하고 임금 205만원을 체불당했다. 그러나 사업주는 끝내 체불임금 지급을 거부했다. 나는 이 사실을 SNS를 통해 폭로했다. 놀란 사업주는 체불임금의 일부를 지급한 후 나와 내 지인을 명예훼손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사업주는 나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며 정보통신망법 상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검찰 측 역시 사업주의 고소를 무혐의 처분하며 나의 주장이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사업주가 무고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주장을 거짓으로 치부한 후 고소장을 작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법률에 있었다.

"형법 제307조 제1항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일명 '진실유포죄'로 불리는 조항이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헌재서 '합헌' 
 
지난 2020년 5월 명진고 정문 앞에 게시된 현수막이다
 지난 2020년 5월 명진고 정문 앞에 게시된 현수막이다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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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광주의 '비리사학' 명진고등학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학교재단 측에게 고소당했다. 당시 학교재단 측은 역시나 나의 비판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단 측 고소장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덧붙여져 있었다.

"만약 허위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나는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깝고, 공익적 목적이 있는 표현만으로 6차례 수사를 받았다. 이중 5건은 모두 검찰에 의해 '무혐의 처분' 되었다.

25일 헌법재판소(소장 유남석)가 진실한 주장의 경우에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307조 제1항을 '합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25일 오후 2시에 진행된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5(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건 이번이 첫 사례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해당 조항은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르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형법 제310조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직 공익을 위한 것일 경우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어 남용의 우려도 적다"고 밝혔다.

반면, 반대의견을 낸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일부 위헌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로' 공공의 이익? 그건 누가 결정하나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25일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향토예비군 설치법 위헌법률 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25일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향토예비군 설치법 위헌법률 심판 사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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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헌법 소원은 지난 2017년 반려견 병원 치료 중 부당한 진료 행위를 발견한 A씨에 의해 시작됐다. A씨는 자신의 반려견이 병원 측 실수로 불필요한 수술을 받고 실명 위기를 겪자, 이 사실을 SNS 등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할 경우에도 형사 처벌 받을 수 있음을 규정한 형법 제307조 제1항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파악한 A씨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에 언급된 것처럼 형법 제310조에 "오직 공익을 위한 것일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지만, 공익성이 강한 표현행위가 수사의 대상이 되고 실제로 기소된 경우도 적지 않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형법 제310조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대법원 판례상 "'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일 경우 범죄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데, 이 '주로'의 범위가 각 사건마다 다른 판단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나 역시 과연 나의 행위가 "'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에 해당하는지 고민하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결과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경우에도 개인은 수사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큰 심리적 고통에 노출된다.

이 때문에 형법 제310조는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에 해당하여, 그 자체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반론의 목소리가 크다. 

태그:#헌법재판소, #진실유포죄, #사실적시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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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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