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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성들이 있다. 당연한 틀을 갈라지고 터지게 만든 그들의 용기에 귀를 기울여본다.[편집자말]
2018년 5월 3일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북부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운동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2018년 5월 3일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북부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운동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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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5일 목요일 오후 1시 32분. 카카오톡 메신저가 울렸다.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만든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가 보낸 메시지였다. "용화여고 내 교사-학생 간 성폭력 실태조사를 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과거 재학 중에 당한 피해 사실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김해영(27, 가명)씨는 반가움이 앞섰다고 했다. 2014년에도 국민신문고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이 겪었던 피해사실을 고발했었다고 했다. 돌아온 답은 "(문제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것뿐. 김씨는 "그때는 무력감만 느꼈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고 했다. 피해 사실을 알린 것에 멈추지 않고, 그가 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이유다.

그 행동들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졸업생들이 조사에 착수한 지 보름만에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교사에 의한 성희롱·성추행·성폭력을 겪었다는 제보만 175건이었다. 졸업생들은 조사 내용을 종합하여 청와대 국민청원에 "사립학교 내 권력형 성폭력을 전수조사하고 처벌을 강화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서울시교육청이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들을 수업에서 배제하면서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해 4월 6일, 학교 창문 곳곳에 'WITH YOU', 'WE CAN DO ANYTHING'이라고 쓰여진 포스트잇을 붙였다. '당신과 함께',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다',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에게 보낸 연대의 메시지였다. 그렇게 최초의 '스쿨 미투'가 시작됐다.

다만, 그때는 몰랐다. 그 싸움이 2021년 3월 현재도 '진행형'이 될 줄은.

가해자에 징역 1년 6월형 선고... 3년 만에 인정된 '스쿨 미투'
 
2018년 5월 3일 용화여고 모습.
 2018년 5월 3일 용화여고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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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재직 당시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월형이 선고됐다. 가해자는 법정 구속됐다. 그런 가해자의 범죄 사실을 법정에서 진술했던 김해영씨를 지난 2일 만났다.

해영씨는 처음에는 징역형이 나왔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고 했다. 다행스러운 결과라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형 선고 이후 인터뷰 요청에 지난 3년의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 사람이 저한테만 가해자인 게 아니잖아요. 엄청난 분노와 슬픔으로 보내주셨던 사연들, 그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성폭력의 굴레를 다시 보면서 '이 사람은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검찰이 구형한 징역 5년에 절반도 아니고 거기서 더 떨어져서 선고된 거고, 항소심까지 가면 집행유예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건 진짜 아니지 않나요?"

검찰도, 가해자도 항소했다.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스쿨 미투를 용기 있게 고발한 이들은 끝나지 않은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그 싸움이 온전한 승리로 마무리된 것은 아직 아니지만, 그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해자들의 잘못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행동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감 때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용화여고 미투 이후 제기된 초중고 스쿨 미투가 332건(2018년 4월~2020년 7월)에 달한다고 한다. 2.5일에 하루 꼴로 고발이 이어진 셈이다. 

또한 그들의 문제제기로 이뤄낸 징역 1년 6월형은, 학교 내 가해자들에게 성희롱·성추행을 저지르면 감옥에 가게 된다는 걸 명징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발화하고, 뭉치고, 끈질기게 버틴 끝에 세상에 낸 균열이다.

"모두의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 거 같아서, 내가 괜한 짓을 한 건 아니구나 싶어요."

그 균열을 보며, 해영씨는 또 다른 피해자 한 명이 떠올랐다고 했다. 2003년 용화여고 내 문제를 비판하며 학내 성추행 사실을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퇴학처분 당했던 선배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소문으로만, 다들 쉬쉬하며 얘기했었어요. 문제제기 해봤자 이렇게 불이익 받는다는 얘기만 떠돌았죠. 저도 그 사건을 더 알아볼 생각은 못 하고 그냥 외면했어요. 입시나 당장의 삶이 급급해서요. 저희가 문제제기한 후에 알아보니 다 사실이더라고요. 너무 그분을 오랫동안 혼자 있게 한 거 같아서... 죄스러웠어요. 만약에 그분이 저희 판결 난 걸 보셨다면, 아마 보셨겠죠, 위로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다' 아셨으면 해요."

'연대'가 만들어 낸 균열
   
2018년 5월 3일 용화여고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해당 교사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온라인 지지자들의 메세지를 벽에 부착하고 있다.
 2018년 5월 3일 용화여고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해당 교사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기 앞서 온라인 지지자들의 메세지를 벽에 부착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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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영씨에게도 지난 3년의 시간이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여러 차례 경찰서에서 다시 끄집어내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씨는 스쿨미투 이후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정치하려는 거냐"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 남자 교수님들에게 방송 출연 등으로 양해를 구해야 할 때가 있어서 당사자임을 말씀드렸는데, 이후에 교수님들이 절 조심하시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수업 뒤풀이 때 '미투 이런 거 때문에 뒤풀이가 어려워지긴 했지'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시는데, 전 상처받았어요. 그게 왜 미투 때문이에요. 술을 자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거잖아요. 절 반기지 않는다는 느낌..."

특히 검찰이 지난 2018년 12월 증거불충분으로 가해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을 때는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아 다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 곁에 있어준 것이 '노원 스쿨 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경계심도 있었는데, 지낼수록 이분들은 진짜 문제 해결을 위해 진심으로 같이 싸워주시려 하는구나 느끼게 됐어요. 신기했어요. 기자회견을 열어도 모르는 분들이 찾아와서 응원해 주시고, 발언도 해주시고, 그때 '연대'라는 게 뭔지 느꼈던 거 같아요. 이 문제를 나 혼자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 알게 됐어요. 한국여성의전화나 시민모임 분들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어요.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가보자, 힘을 얻게 됐죠."

재수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검찰에 접수한 것도 시민모임이었다.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하는 등 여론도 모았다. 결국 검찰은 재수사를 결정했고, 지난 2월 법원도 강제추행을 인정했다.

스쿨 미투에 나선 이들의 '용기'가 낸 균열이라 생각된다고 말하자, 해영씨는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에야 입을 뗐다.

"저는 연대의 힘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저희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청와대 청원, 기사 나고 한 것도 있지만, 그걸 본 재학생들이 포스트잇을 붙여서 더 화제가 된 거잖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공감, 거기에서 오는 연대 행위가 가져온 힘이라고 생각해요. 용기라는 건 있다가도 없어지는 거고, 문제 해결은 지속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연대가 지금의 결과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단발적이라도 치고 올라오는 연대... 불이 여기서 켜졌다 꺼져도 저기서 다시 켜지면 이곳은 계속 환한 거잖아요."

2018년 카톡 메시지를 받기 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냐는 질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할 거 같아요. 이 사건이 해결 안 될 거처럼 전망했던 분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된 거잖아요. 이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분도 많이 알게 됐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손 내밀어 주는 분들이 계시는구나도 경험했어요. 또 청소년분들이 저희에게 '학교에서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 해주실 때가 있어요. 그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뻐요. '아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자신 없게 말하는 게 아니라, 즐겁고 적극적으로 대화 나눌 수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을 같이 갈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과제들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용화여고 스쿨미투 1심 선고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용화여고 성추행 피해자가 발언하고 있다. 여학생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 전직 용화여고 교사 A씨는 이날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용화여고 스쿨미투 1심 선고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용화여고 성추행 피해자가 발언하고 있다. 여학생들을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는 전직 용화여고 교사 A씨는 이날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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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답답함은 있다.

김씨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나중에 이 사건을 돌아봤을 때 가해자 그리고 책임 소재 기관의 이름과 얼굴이 남아야지, 피해자로서의 나만 기억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사람들은 피해자로만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아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잘못을 드러내어 알린 사람이다. 걱정, 불안, 두려움, 공포 등을 떨치고 용기를 내 행동한 사람이다.

"서지현 검사님도, 피해자로만 규정되고, 그분에게 너무 지나친 무게를 지워버리고... 목소리 낸 사람, 균열을 낸 사람에 대해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침묵을 깬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단어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거 같아요. 2019년에 이런 캠페인을 하면 어떻겠냐고 여성가족부에 제안서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어요.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부고발자도 이미지가 안 좋잖아요. 미투 피해자도 내부고발자도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일 뿐인데 이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같이 고민하고 바꿔 나가야 할 거 같아요."

이 같은 고민은 연대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게 해영씨 생각이다.

"미투가 여성들의 얘기로 국한돼있잖아요. 저는 궁금했어요. 남자애들은 왜 얘기를 안 할까? 자료조사를 해봐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피해 경험 비율이 비슷한데, 왜 남학생들은 나서지 않을까? 남성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로 규정되는 순간 남성성을 위협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부모도 아들한테는 '때릴지언정 맞고 오진 마' 그러잖아요.

어떤 남학생이 상담해 왔는데, 남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여전히 학생 엉덩이를 때리고, '게이냐' 이런 말들이 빈번한 농담으로 소비된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은 이게 너무 싫은데 말할 곳이 없었던 거죠.

이런 게 잘못됐다고, 다 같이 얘기한다면 사회가 더 빨리 나아지지 않을까요. 언어 폭력, 성폭력, 신체 폭력 등 권력형 위계질서에 의한 부당함에 저항하고, 문제 제기에 동참할 수 있잖아요.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미투 참여자들에게 '뭔가 목적이 있는 거 아냐' 2차 가해를 할 게 아니라 남성들도 불합리한 것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미투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피해자에 대한 인식 개선부터 이뤄져야 하고요."

또 다른 균열을 위한 고민들이다. 그런 해영씨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고.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어른들도 다 어린아이였는데 왜 소통이 안 될까, 왜 아이들은 이해받지 못할까 그런 고민들을 적었어요. 기대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걸 충족시켜주는 어른을 만난 경험이 없었어요. 이 시절을 기록하며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거 같아요. 지금 바람도 그거예요.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인 거 같아요."

*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 = 이주연ㆍ이정환 기자

태그:#용화여고, #스쿨미투,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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