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5 07:32최종 업데이트 21.03.15 07:32
  • 본문듣기
10살 남짓의 두 남매가 부모와 함께 홀로 거주하는 할머니 집을 들어선다.
거실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한 어린 남매는 할머니 품으로 달려가 안긴다.
감격에 겨운 할머니, 손녀, 손자를 부둥켜안고 볼에 연거푸 입을 맞춘다.

때마침 어디선가 들리는 낯선 목소리 "할머니…"
할머니가 반응을 않자 다시 부른다 "할머니…"
그제야 돌아보는 할머니,
할머니를 부른 사람은 간호사였고, 손자들의 방문은 할머니의 상상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백신을 맞은 할머니에게 반응을 묻기 위해서였다.


"아프지 않으셨어요?"
간호사의 질문에 손자를 맞을 행복에 부푼 할머니는 답한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오."

뒤이은 내레이션
"서로 다시 만날 날을 꿈꾼다면 접종합시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백신 접종 캠페인 광고 내용이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 주먹 인사, 물리적 거리 두기, 공공장소에 비치된 손 소독제…. 환경 재앙을 그린 디스토피아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낯선 장면들이 우리 일상 안으로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다. 다행히(?) 인간의 적응 능력은 큰 무리 없이 이 낯선 습관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낯설음이 익숙한 일상으로 쉽게 들어오는 만큼, 이전의 익숙함이 쉽게 잊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이 익숙하던 아이들, 주말이면 극장이나 공연장을 향하던 연인들, 어깨를 맞대고 잔을 주고받던 직장 동료들, 저축해 모은 돈으로 방학을 이용해 해외로 떠나던 대학생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전에 우리가 누렸던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은 위 광고에서처럼 상상 속의 꿈이 돼 버렸고, 이제 인류는 다시 그 잃어버린 일상의 꿈들을 되찾기 위해 모든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예방, 발견, 치료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예방, 발견, 치료 세 단계가 있다. 발병의 이전, 당시, 이후에 해당하는 이 셋 가운데 사후에 해당하는 치료는 과학과 의술의 도움이 없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의 많은 제약회사와 연구소가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우리 몸이 바이러스를 물리치도록 지원군을 보내는 것이 바이러스 치료제의 원리인데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첫째는 우리 몸에 직접적인 충분한 지원을 하는 것, 즉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아 우리 몸이 싸울 수 있는 여력을 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은 이미 독감 치료에서 많이 사용되던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의 약품에 약간의 변형 과정을 통해 코로나19 전문 치료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연구 중이다.

두 번째 방식 가운데 회복된 환자의 혈장을 투입해 면역을 강화시키는 방식이 최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바이러스에 강하게 저항한 사람의 단백질을 복사해 투입하는 방식도 연구 중이다. 둘 다 강한 군대를 지원군으로 투입하는 방식이라고 비유하면 될 듯하다. 국내 연구진도 상당한 진척을 보이면서 최근 변이 바이러스들을 대상으로 실험 중이다.

그리고 예방 차원의 싸움에는 위생 관리와 백신 접종, 두 가지가 있다. 현재 전 세계인의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이슈가 백신의 효과다. 현재까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백신 접종이 실시되고 있는데 국가 간 백신 확보의 편차는 뚜렷하다. 이미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영국, 미국 등 많은 나라의 국민 상당수가 접종 중이고, 이들 국가는 백신의 성공에 코로나19 싸움의 성패를 걸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는 코로나19의 피해가 큰 국가들이다. 백신 효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환자 치료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화이자 백신 접종이 시작된 27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 내 무균 작업대(클린벤치)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주사기에 소분 조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빠르면 4월 아무리 늦어도 가을이면 백신의 효과에 대한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적으로 유럽과 미국은 올해 말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을 접종한다는 목표로 백신 확보와 접종을 실시 중이다. 그 외 한국, 일본, 캐나다 등은 내년 중순까지, 그 외 아시아 지역은 내년 말까지 모든 국민이 접종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그리고 효과. 이것은 인류가 코로나19를 상대로 하는 싸움의 승패를 가름할 가장 중요한 요소다. 코로나19를 여타 인플루엔자 수준의 계절 질병 수준으로 약화시켜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새로운 질병의 출현을 피할 수는 없다. 정보 혁명 이후 지구촌 시대의 첫 대유행을 경험한 인류는 이제 장기적 차원에서 전염성 질병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들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부터 가장 첨단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예방 차원에서 백신 이상으로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은 개인 위생관리다. 특별히 첨단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개인이 실천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전 세계 의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코로나19 창궐 이후 흔히 독감이라 불리는 인플루엔자 감염이 극적으로 줄어든 사실이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아직까지는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충분한 연구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에 독감이 확연히 줄어든 사실을 통계는 이미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국립보건소(Santé publique France)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의 겨울을 맞은 프랑스에서 유독 이번 겨울에만 독감 중증환자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아래 도표에서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그 해 독감 유행 기간이고 보라색 막대 그림이 중증 환자의 수다. 매년 일정한 규모의 중증환자가 발생했지만 이번 겨울의 경우 회색 영역도, 보라색 막대 그림도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국립보건소 발행 주간 독감보고서 (Grippe Bulletin hebdomadaire) Sante publique France. 2021년 2월 10일. ⓒ 프랑스 국립보건소

 
물론 이 도표는 지난 2월 초 겨울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기에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 유행성 독감이 확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2월초까지 없던 독감이 갑자기 출현할 가능성 또한 그리 높지는 않다.

급감한 독감, 왜?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과거에 비해 더 철저해진 위생관리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그나마 몇 가지 긍정적 기여를 한 것 가운데 하나다. 평소 기침이나 재채기 할 때의 습관, 식탁에서 음식물 공유할 때의 습관, 손가락의 접촉 대상과 경로 등 생각지 않던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작은 생활 습관 하나하나가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었다.

공공영역에서의 위생관리 체계 역시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졌다. 소독제 설치 등 사회적 비용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한 질병의 감소가 가져온 비용절감 효과는 그와 비교할 수 없다. 공공영역에서의 거리 유지, 실내 입장객 제한 등의 조치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함께 없어지겠지만 위생시설의 강화는 지속할 필요가 있다.

국경 통제 강화 역시 한 몫 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국경 통제를 코로나19 이후까지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에서 실시중인 보건 전자카드처럼 건강 정보를 여권에 담는 방법도 생각해볼 만하다. 모든 건강 정보가 여권에 담길 필요는 없고 전염성 있는 질병 정보만 여권에 수록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염성 강한 질병에 대한 시민들의 공적 차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염성 있는 질병을 접촉 제한을 통해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전통적이면서 확실한 방법이고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코로나19를 통해 전 인류가 다시 한 번 통감을 한 이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공공보건 차원의 관리체계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

예방, 치료와 함께 또 하나의 전선이 바로 바이러스의 조기 발견이다. 이 분야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 의미 있는 표준화 모델을 제공한 바 있다. 충분한 키트 확보와 공격적 검사, 감염자 동선을 첨단 기술을 이용, 추적해 핀셋 격리를 하는 것이 골자다. 이제는 많은 국가들이 충분한 키트를 생산하고 보급 중이다. 다양한 방식의 선별진료소도 운영한다. 조기 발견에 대한 중요성은 이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영국의 실험

심지어 몇몇 국가에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려고 한다. 바로 자가진단키트. 한국에서는 아직 논의 단계에 있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일반인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실무 작업에 들어갔고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시중에 배포되고 있다. 누적 확진자 기준 다섯 번째 코로나 발생 국가인 영국은 특히 각급학교가 정상 수업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으로 자가진단키트 배포를 꼽고 있다.

지난 8일부터 전면적 개학을 실시하고 있는 영국은 이후 코로나19 추이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올해 1월 9일 하루 확진자 6만 8천 명을 넘어서는 등 감염률 최고조를 기록한 영국은 이후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면서 2월말에는 하루 확진자를 1만 명 이하로 떨어뜨렸다. 개학이 시작된 지난 8일 확진자 5177명을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 5천명 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 비교 ⓒ https://coronaboard.kr

 
이 결과는 특히 이웃나라 프랑스와 비교할 때 더욱 고무적이다. 누적 확진 규모 세계 여섯 번째 국가인 프랑스는 1월 중순 이후 꾸준히 하루 신규 확진자 2만 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전국 봉쇄, 저녁 6시 이후 통행금지, 공항폐쇄 등 순차적으로 새로운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신규 확진자 규모가 떨어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서 오히려 미세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프랑스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다시 영국에 누적 확진자수 기준 역추월을 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프랑스 국민들의 백신 거부감. 영국에 비해 백신 접종의 속도가 느려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앞서 소개한 대국민 접종 권고 광고까지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제 프랑스 정부도 자가진단 키트를 배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12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회의를 통해 자가진단 키트의 배포와 관련한 반응을 들었다.

그 외 다른 서유럽 국가들도 대체적으로 자기진단 키트 배포에 긍정적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약국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한 달에 5개씩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무료 배포는 아니지만, 가게나 슈퍼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서 500만 키트를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는 오스트리아처럼 모든 국민들에게 한 달에 5개씩 키트를 무료 제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서유럽 국가들이 자가진단 키트 배급 확산에 나서는 이유는 다름 아닌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개인 생활 방역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공공 시민으로서의 의무라면, 백신과 치료제 개발 그리고 충분한 진단 키트를 확보해야 하는 것은 방역 당국의 의무다. 이제 유럽은 국민 각자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자가진단 키트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로 인적이 드문 영국 런던 시내 길거리에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동참하라는 안내가 서 있다. 2021.3.5 ⓒ 연합뉴스

 
남은 과제들도 있다. 키트 배포를 서두르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도 아직 초등학생에게는 배포 계획을 갖지 않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와 입 깊숙한 곳의 타액을 묻혀내야 하는 불쾌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가 역시 과제다. 무엇보다 결과의 신뢰성이 아직까지는 진료소에서 사용하는 키트에 비해 떨어진다.

유럽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은 정확성의 문제는 빈도수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한 번 더 정확한 측정보다 여러 번 덜 정확한 측정이 더 신뢰도가 높다고도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15분에서 30분 사이 결과를 알 수 있는 장점이 크다.

전염성 질병의 자가진단 시스템이 일반화되면 병원, 공항, 학교 등 다양한 공공시설에서 보다 철저한 생활 방역이 보장될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 탑승을 앞둔 승객들은 스스로 진단 결과를 체크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앞서 언급된 전자여권과의 연동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영국은 지금까지 1600만 키트를 확보, 요양원으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초중고 학교 및 학교와 관련된 업종으로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수시로 학교에서 테스트 결과를 제출하게 된다. 집에서도 1주일에 두 번 검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백신 접종에 피치를 가하는 영국이 이제 진단키트 보급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들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면서 신규 확진자 증가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영국에서 백신과 자가진단키트의 효과까지 나타날 것인가? 앞으로 몇 주 영국에서의 추이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