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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즈음하여 냉장고를 비워야겠다. 냉동실에 몇 년 묵은 식재료는 어떻게 하지? 주말에 옆지기가 끓여놓은 된장국, 건더기가 외딴 섬처럼 둥둥 떠다닌다. 봄동 하나로 무침을 하고 된장국을 끓였으니... 그때 생각난 것이 냉동실의 시래기다. 

막내의 키가 내 허리춤이었을 때, 전남 곡성의 기차마을 근처 한옥 펜션에 묵은 적이 있다. 작은 형님 댁 식구들과 함께였다. 그때 작은 형님이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것이 우리집 냉동실의 시래기다. 형님이 정성껏 만들어서 준 거라, '언젠가는 먹어야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언젠가가 이사를 앞둔 지금이 되었다. 막내는 이제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크다.

추운 데서 오래 기다린 시래기는 얼음으로 덮혀 있었다. 우선은 찬물에 담가 해동한다. 와, 괜찮아졌네! 금방 삶아낸 것과 다르지 않아 일단은 안심이다. 콩가루에 버무려 시래기 국을 끓이면 맛있다던데... 들은 풍월대로 콩가루로 조물주물 무친다. 옆지기가 만든 된장 국물이 부글부글 끓는다. 콩가루 옷을 입은 시래기 투척, 두부도 송송 썰어넣는다. 

특유의 향이 살아있는 아주 시골스런 시래기 된장국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지금까지 기다려준 시래기가 고마웠다. 그리고 버릴 뻔한 된장국물을 재사용했다는 뿌듯함으로 만족감이 두 배다. 둘째는 시래기의 비밀을 알더니, 먹지 않겠다고 했다. 막내는 그것도 모른 채, 후루룩 냠냠!
 
시래기야, 고마워!
 시래기야, 고마워!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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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오랫동안 시래기를 그냥 두었을까.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 시래기에 관심이 없었다. 김장을 할 때, 무에 달려오는 이파리는 당연히 버리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재작년 김장 때부터 옆지기가 그것을 빨래걸이에 말리기 시작했다. 다 마른 시래기는 푹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가끔 먹는 시래기국, 보들보들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시래기를 먹은 다음날 아침은 화장실에서 보는 게 다르다. 다른 날보다 두 배는 나오는 듯하다. 시래기가 배변 활동을 돕는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한 것이다. 지인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가을에 김장무를 많이 심어서, 시래기를 많이 만들어봐요. 배변에 최고예요. 시래기를 먹는 날엔 똥이 얼마나 시원하게 나오던지."

그때는 귓등으로 듣고 사라진 말이 이제는 귀에 쏘옥 들어온다. 여태껏 시래기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내 몸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결과 3년 전,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가 100 mIU/L을 기록했다. 참고로 정상 수치는 0.5~5.5 mIU/L다. 이제는 시래기에 관심이 간다. 다른 데에 외출 나갔던 신경이 내 몸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배변을 시원하게 한 날은 몸이 얼마나 가볍던가. 마음도 발걸음도 상쾌해져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동안 나는 왜 찌뿌둥한 몸을 끌고 다녔던고. 내 몸아, 미안해! 시래기야, 미안해! 오랫동안 푸대접해서 말이야.

시래기가 몹시 궁금해진다. 시래기의 효능에 대해 찾아보니, 8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뼈건강, 혈관질환 예방, 변비 개선, 빈혈 개선, 항암 작용, 노화 방지, 눈건강, 피부미용... 만병 예방처럼 보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지 않을까. 변비개선!

시래기는 섬유질의 보고라고 한다. 식이 섬유는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장내 유해물질을 포획해서 체외로 내보낸다. 고로 변비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대장암도 예방한단다. 장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서 포만감을 주어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올 봄에는 옛날에 안 하던 짓을 많이 했다
 
시계방향으로 꽃다지, 개망초, 엉겅퀴, 괭이밥, 갈퀴나물
 시계방향으로 꽃다지, 개망초, 엉겅퀴, 괭이밥, 갈퀴나물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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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쑥을 뜯으러 서해안 어디까지 간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다. 겨우내 북서풍을 받고 돋아난 쑥은 효험이 다르다는 것이다. 쑥을 뜯을 생각조차 없었던 나는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런데 올봄 나도 쑥을 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옆산에 찔레 새순이 자라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때 맞춰 채취하는 열심까지... 남의 일 이러쿵 저러쿵 쉽게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 안 겪어보면 아무도 모른다.

시골에서 잡초라고 여겼던 풀들이 거지반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올봄에서야 알았다. 꽃다지, 개망초, 제비꽃, 민들레, 엉겅퀴, 갈퀴나물, 토끼풀, 괭이밥, 명아주, 쇠비름, 환삼덩굴, 쇠별꽃, 닭의 장풀... 봄맞이로 옆산에서는 산나물을, 친구 농장에서는 쑥과 다양한 들나물을 채취해서 산야초 효소를 담갔다. 
 
시계방향으로 명아주, 쇠비름, 닭의장풀, 환삼덩굴
 시계방향으로 명아주, 쇠비름, 닭의장풀, 환삼덩굴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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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여성들은 친구들을 만나면 건강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것 저것 건강 식품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옛날에는 그것을 극성스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라.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은 나이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고단한 몸을 돌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었다. 올 가을에는 김장무를 많이 심어서 무청 시래기를 만들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시래기, #중년 여성의 몸과 건강, #봄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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