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스톤' (Rolling Stone)의 표지를 장식한 BTS.

'롤링스톤' (Rolling Stone)의 표지를 장식한 BTS. ⓒ Rolling Stone

 
"K-팝 팬들은 어디에나 있죠. 하하. 아마 여기서 웃으시는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겁니다. 하하. 이 부분은 나중에 또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문을 읽어가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방의 스태프들과 기자들을 향해 웃으며 동의를 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 안 해도 다 알지 않느냐'는 뜻으로 생략한 듯 보이는 그 괄호 안에 BTS(방탄소년단)가 자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이는 없을 것이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여배우가 올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작년엔 영화 <기생충>이 4개 부문을 수상했다"라고 설명한 뒤, 미군의 한국전 참전 등 양국의 역사 공유 및 인적, 문화적 교류를 강조했다. 그 가운데 나온 K-팝과 <기생충> 그리고 윤여정에 대한 언급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당장 아미(방탄소년단 팬덤)가 트위터 상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영상에 멘션을 달았다. USA 투데이 등 외신 또한 공교롭게 BTS의 'Butter'가 공개된 날 바이든 대통령이 K-팝 팬들을 언급한 것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K-팝 팬"과 같은 기사 제목을 뽑았고, 그 'K-팝 팬'이 '아미'라는 해석을 곁들였다.

이러한 바이든의 화기애애한 언급은 전 세계에서 BTS가 선도하는 K-팝과 K-컬처의 위상과 영향력을 상징하는, 특히 미국 내 인기를 반영하는 단 하나의 장면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도 표한 관심

대서양 건너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같은 날 프랑스인 '아미'의 트위터 글을 리트윗해 관심을 끌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당신이 만약 서적, 음악, 영화, 전시회, 콘서트에 300유로를 지출한다면 처음 무엇을 구매할 것인가"라는 트위터 글의 답변을 독려했고, 이어 BTS 뷔의 팬을 자처한 사용자가 "BTS 콘서트요!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BTS '버터' 스트리밍 해주세요"라는 인용 글을 리트윗해 아미의 응원을 받았다.

바이든에 이어 마크롱 대통령도 'Butter'의 공개를 의식했던 걸까. 마크롱 대통령의 이러한 트위터 정치가 이채로운 것은 유럽에 상륙한 BTS의 인기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유럽 주요국인 프랑스의 대통령이 BTS의 인기를 자국 아미들과의 소통 도구로 활용했다는 데 진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과거엔 상상에서나 가능했던 그 유쾌한 일을 BTS가 전 세계 온/오프라인을 통해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BTS 개인의 영광일 수 없다. 이러한 BTS와 K-팝(과 K-컬쳐)의 영향력이 실제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 제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1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발간한 2021 해외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제10차)를 보면, 현재 해외 한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가수/그룹은 역시나 방탄소년단이었다. KOFICE는 "(BTS라는 응답이) 22.0%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다음으로 블랙핑크(13.5%)를 꼽았다"며 "대부분 국가에서 BTS라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고 풀이했다.

여기까진 예견된 수순이었을 터. 외국인들이 한국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 또한 'K-팝'이 (16.8%)이 1위였다. 지난 4년 동안 1위를 차지한 K-팝에 이어 한식(12.0%), IT산업(6.9%), 한류스타(6.6%), 드라마(6.4/%) 순이었다. 아울러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 아르헨티나, 프랑스, 영국, UAE 등 각 대륙에서 K-팝을 1위로 꼽았다.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KOFICE가 강조한 아래와 같은 결과였다.

"2017년까지 북한/북핵 및 한국전쟁 등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이미지가 5순위 안에 포함된 반면에 2018년부터 주(로) 연상 이미지는 IT산업을 제외하고 모두 문화 콘텐츠로 나타남."

미 할리우드 주요 배급사인 소니 픽쳐스가 김정은 국방위원장 캐릭터를 실명으로 등장시킨 영화 <인터뷰>가 제작된 것이 2014년이었다. 불과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김정은 위원장 체제의 북한은 핵 도발 국가이자 미국의 적대국가 중 하나였다. 그로 인해 평소 한국을 방문할 일 없는 전세계인들에게 우리의 이미지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전쟁 위협의 상존하는 나라였던 것도 사실이다. 

해외한류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K-팝을 필두로 한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가 과거 정치사회 분야에 갇혀 있던 한국의 이미지를, 외국인들이 다가오기 쉽지 않았던 무거운 이미지를 제고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 반전의 완성이 BTS의 미국 진출이 본격화되고 UN '7분 연설'이 화제를 모은 시기이자 BTS와 아미의 선한 영향력이 빛을 발한 시점이란 사실은 분명 곱씹어 볼 대목이다.

제주 4·3을 응원하는 손길
 
 제주4·3 제73주년 추념식이 열린 지난 4월 3일에 이어 제주도 아미들이 재차 제주4·3을 응원하는 손길을 내밀었다.

제주4·3 제73주년 추념식이 열린 지난 4월 3일에 이어 제주도 아미들이 재차 제주4·3을 응원하는 손길을 내밀었다. ⓒ 제주 4·3평화재단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가 BTS 빌보드 뮤직어워즈 4관왕 기념으로 재단에 떡과 배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보내주신 떡 맛있게 잘 먹었고 배지는 행사 기념품으로 나눠드리겠습니다. 연이은 기증에 감사드리며 BTS 활동에도 응원 보냅니다."

지난 26일 제주4·3 평화재단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이 인증 사진과 함께 게시한 글이다. 제주4·3 제73주년 추념식이 열린 지난 4월 3일에 이어 제주도 아미들이 재차 제주4·3을 응원하는 손길을 내민 것이다. 제주4·3의 진상이나 사건 자체를 잘 모르는 국민들이 상당수인 가운데 아미가 한국 근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이 사건을 알리는 데 동참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물론, BTS의 선한 영향력과 아미의 응원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광주 출신인 제이홉도 최근 트위터를 통해 41주기를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했고, 어김없이 아미들도 이에 동참했다. 트위터 상에서만 무려 2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고 가사에 5·18 추모 메시지를 담는 BTS의 선한 영향력이 '제주4·3'이나 '광주5·18'와 같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광경을 확인하는 일도 경이롭다.

최근 1주기를 맞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직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의 일환으로 지난해 100만 달러(약 12억)를 모금하고 기부한 자선단체 '원 인 언 아미(One In an Army)'의 활동을 보라. BTS가 21세기의 비틀즈라는 평을 받는다면, 아미야말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팬덤인 것이다.

"저희가 아는 한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멤버들은 아마 많은 자선 사업이 BTS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멤버들의 생일 때 전 세계의 팬클럽에서 수많은 자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는 함께 일하는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프로젝트가 끝나고 편지를 보내요. 그래서 최소한 편지는 갔을 거예요(...).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의지예요. BTS가 끌어당기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에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 BTS가 그룹으로서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린 뭉칠 수 있어요."


BLM 운동을 위한 기부 직후인 지난해 8월, '원 인 언 아미' 회장인 루이즈(스웨덴, 29세)가 글로벌미디어 '바이스'와 한 인터뷰에서 BTS 멤버들이 '원 인 언 아미'의 활동을 아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의외로 담담한 답변이다.

아동인권, 기아, 동물보호, 자살방지, 여성 지원 등 전 세계 28개 이상 '팬덤' 단체들이 비영리 기구를 통해 연합한 것도, 아미의 전 세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갖가지 NGO 단체에 기부를 계속해 나가는 연대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BTS의 선한 영향력이 각 대륙을 뛰어 넘은 집단 지성과 만나 다채롭고 섬세한, 자발적이며 실천적인 결과물들을 빚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유니세프의)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전 세계의 팬들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들을 듣게 됐습니다. 인생의 시련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스스로를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에 대해서죠. 이 이야기들은 저희에게 책임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봅시다.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촉구하고 싶습니다."

지난 2018년 9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청년 어젠다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에서 아미들을 감동시킨 BTS의 '7분 연설' 중 일부다. 이렇게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BTS의 쉬운 듯 건강하고 온기 있는 위로의 메시지는 같은 해 결성된 '원 인 언 아미'와 같은 팬들에게 가닿았을 것이다.    

소아암 환자와 청각장애 아동, 팔레스타인 아동 구호 기금과 청소년 정신건강을 돕는 단체를 넘어 아프리카 아동을 위한 기부까지. 열거하기 힘든 BTS 멤버 7명의 기부 활동에 개별 기업 및 단체들이 프로모션으로 동참하고, 이런 움직임이 아미를 통해 글로벌하게 진행된다.

가히 BTS의 선한 영향력이 열어젖힌 신세계라 할 만하다. 20세기 비틀즈의 팬들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외쳤다면, 21세기 BTS의 팬들은 미시적이고 직접적이며 글로벌한, 그리고 자본주의에 걸맞은 실천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롤링스톤즈> 표지 장식한 BTS

개인적으론, 최근 BTS가 시대를 풍미하던 팝스타와 록스타들이 차지하던 <롤링스톤즈>의 표지를 장식했다는 소식이야말로 꽤나 신선한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BTS의 음악성과 스타성,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전통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 음악지가 인증한 셈이니까. 

그리고 보란 듯이, BTS는 2021 빌보드뮤직어워즈 4관왕을 차지하며 2019년 2관왕에 이어 자체 최다 수상기록을 작성했다. '다이너마이트'에 이어 자꾸 흥얼거리게 되는 신곡 'Butter'의 뮤직비디오는 지난 22일 공개 20시간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했고, 27일 현재 2억 3천 만회를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Guinness World Records)는 지난 25일(현지시간) BTS의 'Butter'가 '유튜브 뮤직비디오 프리미어 최다 조회수' 등 유튜브와 스포티파이(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의 5개 신기록을 다시 썼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7일(현지시간), BTS가 17년 만에 귀환한 <프렌즈> 특별판 <프렌즈: 더 리유니언>(Friends: The Reunion)의 게스트로 출연했다. '지구상 가장 인기 있는 보이밴드'(Biggest boyband on the planet)란 소개 자막도 달렸다.

다시 바이든 대통령. 그는 한미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웃음기 어린 농담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BTS를 지칭하지 않았다. 그리고선 "여기 웃는 분들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거다, 나중에 또 얘기할 수 있을 것"이란 아리송한 여운을 남겼다. 마치,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존재라는 듯이 말이다. 며칠 후 BTS는 빌보드뮤직어워즈를 수상했다. 미국 대통령까지 친근함을 표시하는 BTS는 다른 의미로 비틀즈를 뛰어 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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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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