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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원님, 안녕하세요. 매번 한다, 쓰자, 말만 하다가 이제야 펜을 들었습니다. 요즘엔 새로 시작한 일로 정신이 없어 아예 잊고 지냈는데, 오늘 우연히 거리에서 찬원님을 봤지 뭐예요. 한 막걸리 회사의 광고 포스터였는데요, 찬원님께서 예의 그 부드럽고 잔잔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 계셨어요. 어찌나 반갑고, 기뻤는지,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부터 켰습니다.  

사실 저는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딘가 유치하고, 어쩐지 촌스럽고, 왠지 왜색의 냄새가, 뭐 그런 선입관이 강했죠. 그런 제가 한 트로트 가수에게 관심을 갖고, 이렇게 팬레터까지 쓰고 있다는 게 저로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찬원님이 우리 가족에게 전해준 선물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기에 이렇게라도 꼭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어머님의 수술
 
이찬원 가수가 콘서트 무비 <미스터트롯: 더 무비>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미스터트롯: 더 무비" 이찬원 이찬원 가수가 콘서트 무비 <미스터트롯: 더 무비>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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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머니와 둘이 삽니다. 내가 모시고 산다기보다 어머니께 얹혀 사는 형국이죠. 물론 저도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독립해 30년 가까이 따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3년 쯤 전에 어머니 집에 들어왔지요. 어머니께서 갑작스레 심장 수술을 받으셨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고령에 큰 수술을 받으신 분을 혼자 둘 수는 없어 이렇게 된 거죠.

수술을 받으신 후 어머니는 급격히 약해지셨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전신마취를 하고 아홉 시간이나 걸린 대 수술이었으니 성한 젊은이들도 힘들어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무릎관절을 비롯해 온 몸이 성치 않아 걸음 옮기기도 어려우셔서 어머니는 그저 TV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드라마나 뉴스를 보시는 게 일과의 전부였답니다.

찬원님도 아시죠? 우리나라 드라마. 오죽하면 막장이라고 할까요. 그들은 툭하면 싸우고 욕하고 소리 지르곤 하지요. 도무지 정상적인 인물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희한한 세상에서 사는 그들의 모습은 참 끔찍하지요. 뉴스는 또 어떻구요. 볼 때마다 스트레스 폭발하지 않나요? 그런데 어머니는 온종일 그런 것만 보시니, 저는 정말 걱정이 컸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집에 들어서는데, 귀에 익은 마구잡이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흥겨운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지는 거예요. TV에선 낯선 남자들이 구성지게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어요. 그건 위대한 신화의 서막, <미스터 트롯>이었지요. 어머니는 전에 보지 못한 밝은 얼굴을 하고 그 프로그램을 보고 계셨어요.

저도 잠깐 어머니와 함께 그들을 봤어요. 노래 정말 잘하시더군요. 저리 재주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었나 싶었어요. 모든 분들이 뛰어나셨지만 저는 처음엔 정동원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고 어린 게 어쩌면 그렇게 구슬프고 처연하게 노랠 잘 하는지, 신기할 정도였죠. 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애가 너무 고생한다며 그 친구를 걱정하셨어요.

님 덕분에

제가 물었죠. 어머니는 저들 중에 누가 제일 좋으냐고. 그러자 어머니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단호하게 "이찬원이 젤 좋지" 하셨습니다. 왜 좋으냐 재차 물었더니 "대구가 고향이고, 쟤들 중 제일 여릿여릿하고 순진하고 착해빠져서 매번 손해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고향은 경주, 일단은 당신과 같은 지역 출신이라 마음에 드신다는 거였습니다.

나머지 이유는 순전히 어머니의 자의적 판단이겠지요? 어떤 근거를 갖고 말씀하시는 것 같진 않았는데, TV에 비친 찬원님 모습을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해요. 노래할 땐 정말 집중하고 몰입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만 그냥 이야기할 땐 어머니 표현과 같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느낌?

실제로 찬원님이 유일하게 코로나19에 감염 됐었잖아요.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던지, 언뜻 눈물까지 보이셨다니까요. 또 다른 멤버들이 굵직굵직한 광고를 찍고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 보면서 어머니는 '우리 찬원이도 한 번' 하시며 기도를 드리기도 하셨죠.

<미스터 트롯>이 끝난 이후, 그 멤버들이 주축이 된 아류 프로그램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채널 돌려막기(?)만 잘 하면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됐지요.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그 시간대를 훤히 꿰셨어요.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찬원님과 친구 분들을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푹 빠져 보시곤 하시지요.

그 덕인지 어머니는 눈에 띄게 안색이 좋아지셨고, 표정도 밝아지셨고, 모든 면에서 의욕적으로 변하셨어요. 밥도 잘 챙겨드시고, 가끔 미장원에도 다녀오시고, 친구분들 불러 식사하시고 <미스터 트롯>들에 대해 열띠게 토론도 하시면서 건강을 되찾고 계시는 것 같아요. 전에 없던 변화죠. 저도, 당사자인 어머니도 놀랄 정도이지요.

이게 모두 찬원님 덕분입니다. 찬원님이 우리 어머니를 어둠의 골짜기에서 구해내신 겁니다. 이건 결코 과장이거나 그냥 하는 입바른 말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미스터 트롯>이 없었다면, 그래서 우리 어머니께서 찬원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께서 여전히 우울하고 짜증나는 드라마의 늪에 빠져 계셨다면, 과연 이만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요.

프랑스의 극작가 장 아누이는 '사랑은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 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말일 테지요. 우리 어머니를 보면 그 말이 정말 옳구나 생각이 듭니다. 찬원님을 향한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 당신의 건강을 되찾아 준 셈이니까요. 참으로 놀라운 사랑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찬원님은 우리 가족, 특히 어머니의 생명을 구해주신 은인이십니다. 늘 찬원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더는 아프지 말고 늘 행복하시길 간절히 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5월 21일
인천 사는 이상구 드림

PS : 이건 사족입니다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솔직히 우리 어머니는 예전부터 가수 신유씨를 좋아하셨어요. 왜 있잖아요. '일소일소 일로일로', '잠자는 공주' 같은 노래로 유명한. 그의 앨범을 직접 사서 들으실 정도로 좋아하셨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가 보이지 않는다고 어머니께서 걱정하셨는데, 그 빈자리를 찬원님이 채워주신 겁니다. 그 또한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는 신유씨와 찬원님이 함께 손잡고 나와 당신이 가장 좋아하시는 "찔레꽃"을 불러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합니다. 하하.

태그:#이찬원, #미스터트롯, #은혜, #생명의 은인 ,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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