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6 08:58최종 업데이트 21.07.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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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당대표 취임사(2012.10.21.)와 당대표 퇴임 고별사(2013.7.21.)에서 "6411번 버스를 아시나요?"라며 투명인간 분들을 구체적으로 호명한다. 이번 글에서는 '노동자'와 관련한 노회찬의 이야기와 그들의 '지금·여기' 삶의 현주소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 기자말
 

황상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대표가 2018년 7월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진보의 별'이 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그는 언제나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 함께했다. 금배지를 달았을 때든, 달지 않았을 때든, 그는 '진보 정치인'으로서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았다. 손을 맞잡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싸웠다.

그가 걸어온 역사를 뒤돌아봤을 때 무겁지 않은 발걸음이 없지만, 인상적인 현장 세 곳을 '굳이' 꼽아봤다. 누군가는 그 현장 덕분에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평생 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평생에 각인된 그 신(Scene)을, 우리의 기억에도 나누어 담는 것. 그것이 그가 떠나는 길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곽우신‧신지수, 기억해야 할 '노회찬의 현장' 세 가지, <오마이뉴스>, 2018.7.26.). 



노회찬, 그가 떠난 넷째 날 <오마이뉴스>의 곽우신‧신지수 기자가 꼽은 세 현장 가운데 두 현장은 '삼성 백혈병'과 'KTX 해고자'로, 노동‧노동자와 관련된 신(Scene)이었다. 그것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노회찬이 늘 가슴에 품고 있던 '함께맞는 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삼성 백혈병'과 'KTX 해고자'와 노회찬 
 

2018년 7월 24일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심상정 대표와 인사를 나눈 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정의당 20대 국회 원내대표)이 정의당 93차 상무위 모두발언을 위해 준비한 글은 서면발언으로 대체됐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KTX승무원들 역시 10여 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믿고 일해 왔는데 자회사로 옮기라는 지시를 듣고 싸움을 시작한지 12년 만입니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두 사안 모두 앞으로 최종 합의 및 입사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잘 마무리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산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10여년이나 끌게 만들고, 상시적으로 필요한 안전업무를 외주화하겠다는 공기업의 태도가 12년 동안이나 용인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8년 7월 23일 오전 9시 30분 정의당 상무위원회. 이날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던 노회찬 원내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남소연

 
다음날인 7월 24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는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앵커브리핑을 통해 노회찬의 행적을 재조명했다. 손석희 앵커는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들 중에 누군가는 기어이 거대한 바위에 균열을 내기도 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길고 긴 시간을 지나서 기적 같은 오늘을 만들었던 사람들"이라며 삼성 백혈병 분쟁이 11년 만에 마무리된 소식과 KTX 해고 승무원이 전원 복직된 일을 언급했다. 이어 "노회찬 원내대표가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전하려 했던 메시지 또한 계란을 쥐고 바위와 싸웠던 무모한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고 했다. 
 

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2018.7.24.). ⓒ JTBC 유튜브 갈무리

 
2014년 2월 6일 구로 CGV '또 하나의 약속'
: "우리 모두가 '변호인'이 돼야 할 현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2016년 7월 24일 치 <한겨레신문>은 <'황제 경영' 이건희 결정적인 흑역사 네 가지 장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네 가지 흑역사 장면은 ①2005년 삼성 엑스(X)파일 사건 ②2007년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 ③경영권 편법 승계 ④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산재였다. 

2013년 1월 29일 노회찬(진보정의당 공동대표, 19대 국회의원)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1월 27일 밤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로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삼성 쪽이 15시간 동안 경찰과 소방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은 데 대해 질타한 것이었다. 

"삼성반도체공장의 맹독성 유해가스인 불산누출 사고 은폐 사실은 삼성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거부하는 치외법권지역임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도 삼성그룹이 불산가스를 엄벌해 처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화성작업장에 대한 특별감독을 벌였고 그 결과 1934건의 법 위반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에 대한 고용노동부 안전진단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의 지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음' 
- '외부 지적에 대한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최근 수년 동안 수차례 지적됐음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음'


당시 삼성전자는 사과문을 내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5월 2일 두 번째 불산 누출사고가 또 발생했다. 

2014년 2월 6일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 시사회가 열렸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기흥공장에서 2년 가까이 일하던 황유미씨는 스물셋 나이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은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다. 딸의 죽음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아버지는 따져 묻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도 만들어졌다.

<또 하나의 약속>은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제작 두레)으로 개봉할 수 있었다. 아버지 황상기씨는 딸의 유품을 가지고 영화관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는 노회찬과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함께했다. 장하나(민주당 의원), 권영국(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김성환(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등 그동안 삼성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워온 사람들도 자리를 같이 했다. 
 

삼성 직원의 백혈병 문제 다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2014년 2월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영화를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씨와,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등 삼성 관련 피해자 가족과 삼성 반도체 재해 문제를 고발해 왔던 이종란 노무사도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 유성호

 
노회찬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3일 전인 2월 3일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당시 노회찬은 '삼성 떡값 검사' 실명을 폭로한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인해 국회의원 직을 상실한 상태였다.

"<또 하나의 약속> 2월 6일 개봉! 예고편 보고 울컥하기도 처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변호인'이 되어야 할 현실을 감동적으로 다뤘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부터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입니다."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던 노회찬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 백혈병 문제를 사회적 공론화하는 데 애썼다. 

2014년 5월 14일 노회찬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적었다.

"삼성전자가 백혈병 문제를 전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늦게나마 밝힌 것을 환영한다. 사실 청해진해운의 확대판이 삼성그룹이고 대한민국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반성이 돈보다 생명! 약자도 함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백혈병 문제 해결 노력이 삼성그룹의 묵은 과제를 푸는 결자해지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무노조 방침도 폐기돼야 한다. 강자가 더 강해지기 위해 약자를 짓밟는 일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


5월 15일 노회찬은 페이스북에도 "백혈병 문제에 대한 삼성전자의 최근의 태도 변화가 삼성그룹의 3세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경영권 3대 세습도 문제지만 그간 무노조 경영방침, 정경유착 등 삼성그룹의 반헌법적이고 반사회적 경영철학과 방식, 즉 이윤지상주의로 생명과 인권을 짓밟고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중소기업, 협력사들에 대한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는 약육강식의 경영방식이 승계되는 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노회찬은 글 말미에 이렇게 충고했다.

"삼성은 더 이상 국가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일 수 없다. 삼성은 이제 어두웠던 과거와 결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같은 날 노회찬은 트위터를 통해 근로복지공단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삼성 백혈병 문제가 7년씩이나 끌게 된 데에는 근로복지공단이 재벌복지공단 노릇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삼성도 발을 빼고 있는 마당에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백혈병은 산재가 아니라 계속 주장할 것입니까?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항소 포기하기 바랍니다."

20대 국회로 복귀한 2017년 9월 20일 노회찬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재해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장 등에 대한 재해조사를 실시할 때 재해 당사자를 참석시키도록 한 요양업무처리규정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회찬이 떠난 2018년 7월 23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추모 논평을 냈다.

"고인은 삼성의 범죄를 고발하며 굽힘없이 싸웠던 용기 있는 투사였고, 반올림에게 든든한 친구였습니다. 그의 삶을 잊지 않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의 빕니다."

7월 25일 빈소에 조문 온 황상기씨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불러낸 노회찬은 이러했다.

"노회찬 의원은 반올림 활동 처음 할 때부터 많이 지지해주셨다. 반올림 시위, 집회할 때도 많이 보살펴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셨는데..."

"처음 반올림 만들고 나서 삼성 기흥공장에 다니다가 (한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그분이 조금 이따가 돌아가셨죠. 그 장례식장에 가서 노회찬 의원님이 엄청나게 비통해하셨어요. 그 모습이 떠오르네요."


2019년 7월 노회찬재단은 1주기를 맞아 '제1회 노회찬 정의상' 수상자로 '양승태 사법농단'을 파헤친 이탄희 변호사를 선정했다. 이탄희 변호사는 상금을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 기부했다.

이에 대해 황상기씨는 "이탄희 전 판사님, 안녕하세요. 우리 산재피해자 가족들은 판사님의 도움으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판사님이 기부해주신 뜻을 잘 새겨서 산재 피해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는 글로 마음을 전했다. 

참고로 '다시는'은 태안화력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함께했던 산재피해가족들이 다시는 이와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뜻으로 모여 활동하는 모임이다. 발전소, 건설현장, 방송국, 반도체공장, 고교 현장실습 나갔던 콜센터, 생수공장, 식품공장, 외식업체 등 아픔을 겪은 곳은 다양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죽게 되었다는 같은 슬픔으로 모였다.

2008년 5월 9일 서울역 광장 계단... KTX승무원 800일 투쟁 선포식 자리
: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2008년 5월 9일, KTX 승무원 800일 투쟁 선포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노회찬. ⓒ 노회찬재단

 
KTX 승무원들의 투쟁이 800일을 맞이하던 2008년 5월 9일. 노회찬(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은 'KTX 승무원 800일 투쟁 선포를 위한 기자회견'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여승무원들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외주위탁, 불법파견 철회, 해고자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파업을 들어간 것은 2006년 3월 1일. 하지만 380명이었던 파업 참가자는 50명으로 줄어들었고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이들의 자리는 이랜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다시 메워졌다.

노회찬은 연대사를 통해 이렇게 격려하며 응원했다.

"긴 기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은 승무원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동안 지나간 일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고 있습니다. 이미 법원, 감사원, 인권위까지 철도공사가 직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도 이들은 여전히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앞장 서 막은 억압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800일이 지났지만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역사에 기록될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으로만 남길 수 없습니다. 실질적인 복귀를 위한 싸움이 돼야 합니다. 다시금 힘을 내주십시오."


2004년, KTX 첫 개통을 앞두고 여자 승무원들이 대규모 채용됐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입사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지난한 파업 투쟁은 시작됐다. 당시 코레일 사장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민청학련의 수괴'로 지목돼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철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 낙선한 뒤 철도공사라는 공기업 사장으로 돌아온 이철에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외주화 강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KTX여승무원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오던 이철 사장은 2007년 들어 '직접고용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해결의 실마리는 2007년 9월 노사가 공익협의체 구성에 합의하고 이후 해고 노동자들을 KTX의 역무계약직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 직전까지 가면서 풀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임기 내내 여승무원들의 복귀에 강경한 대응책으로 일관했던 이철이 사장직을 물러난 1월 21일 이후 노사교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철의 퇴임은 장기화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없어진 것을 의미했다. 
 

2006년 9월 28일, KTX 여승무원들이 노동부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재조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두고 이날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몸에 밧줄을 묶고 국회진출을 시도하던 KTX 여승무원들이 경찰에 가로 막히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종호

 
2006년 4월 20일 17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감사원 업무보고에서 노회찬(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은 감사원장을 향해 "KTX 여승무원은 철도공사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승무업무는 근로자 파견이 허용되는 업무가 아니므로 철도공사에서 직접 고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전윤철(감사원장)은 "열차표를 구입하는 국민들은 열차 승무원에게 제공받는 서비스까지 포함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라면서 "KTX 여승무원은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맞다"고 대답했다.

10월 27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 앞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노회찬은 'KTX 여승무원들이 불법파견 형태로 일하고 있다는 7가지 증거가 있다'고 밝히면서 "감사원이 철도공사의 불합리한 KTX 승무원 외주 위탁에 관한 사항을 다시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이가 388m인 KTX 열차에서 안전업무를 열차팀장 1명이 담당하고 있다는 철도공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KTX 승무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안전업무를 하고 있다."

"KTX 여승무원을 운영하는 한국철도유통에서 인원을 유연하게 편성할 수 있도록 인력을 늘려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지만 공사는 인원을 확정해 놨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KTX 여승무원들은 생리휴가를 제비뽑기로 결정해야 했다. 이것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정한 '사용사업주와 하청근로자 간 노무관리상의 종속성'이 인정되는 명백한 증거다."

"2004, 2005년에 만일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을 직접 고용했을 경우 약 73억 원의 추가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직접고용을 통해 철도공사의 방만한 예산운영을 개선할 수 있다."

"국토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로 오는 승객의 약 7%가 병의원 진찰을 목적으로 KTX를 이용한다. 승객들을 위해서라도 철도공사의 KTX 여승무원 불법파견형태 운영은 직접고용으로 바꿔 안전업무와 서비스업무를 통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2008년 9월 2일, KTX 해고 승무원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서울역 안 조명철탑에서 ‘철도공사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2008년 9월 노회찬은 추석을 앞두고 오미선(전국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에게 "추석이 끝나기 전에 내려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역 30m 철탑 위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이었던 오미선 지부장은 "이번 추석에는 내려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파업 915일째 날 오미선 지부장은 <한겨레>(2008.8.31.)를 통해 이런 말을 전했다. 

"솔직히 무서워요. 이런 고공농성이 비정상적이고 과격한 방법이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봐주지 않잖아요."

이후 법원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지만, 2015년 2월 대법원은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철도공사의 정규직이 아니다"며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직접 근로관계 성립을 인정했던 1심과 2심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이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5년 11월 승무원들의 패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날 김승하 케이티엑스(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김 지부장은 당시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로 4473일째 싸우고 있습니다. 서울역 서부에 천막을 치고 승객 안전을 담당하는 KTX 승무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인가요. 취업 사기를 당한 저희는 싸움을 했고 싸움에 지친 우리는 사법부 판단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대법원마저 정권과 야합해 청와대 대통령 뜻에 따랐고 수많은 여성노동자의 꿈을 짓밟았습니다. 저희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외치고라도 있지만 저희 친구들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 잃어버린 13년 세월 꼭 돌려놓으십시오."("대법원 판결 뒤 동료가 죽었다" KTX 해고승무원의 절규, 한겨레, 2018.5.30.)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 대법원 판결을 '2015년 최악의 판결'로 선정했다. 

대법원의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사법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8년 6월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놓고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담긴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대법정에 뛰어든 해고노동자의 절규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2006년 해고)이 2018년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이중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대외비)' 문건에는 16개의 판결(대법원 15개, 대전지법 1개)이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의 '협력 사례'로 적시돼 있다. 이외에도 같은 해 11월 19일 작성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청와대 '압박 카드'의 일환으로 "VIP(박 전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적혔다(중앙일보, 2018.6.5.).

박근혜 정부 '협력 사례'로 언급된 판결 가운데 노동 관련 판결은 'KTX 해고 승무원 사건'을 포함해 다음 여섯 사례였다. 
 

박근혜 행정부-사법부 '협력 사례'로 언급된 노동 부문 판결. ⓒ 조현연

 
'현안 관련 말씀 자료(대외비)' 문건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KTX 해고 승무원 소송 사건이었다. 문건은 박근혜 정부의 '4대 부문 개혁' 과제 중 가장 시급한 부분을 '노동 부분'이라고 규정한 뒤 "노동 부문의 선진화와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 바람직한 노사 관계의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며 그 사례로 이 대법원 판결을 들었다.

2018년 5월 3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노회찬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면서 그동안 앞선 판결 때문에 받은 임금을 다 환수당하고, 자살한 분까지 생겨났다. 아마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저희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주신 분…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신 분"

2018년 7월 21일 KTX 해고 승무원들의 투쟁이 '복직'으로 일단 막을 내렸다. 180여 명의 해고 승무원들이 코레일 사원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2004년 KTX 첫 개통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입사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자회사로 옮기라는 통보를 받은 후 4526일간의 지난한 복직 투쟁을 이어왔다.

김승하 KTX 승무지부장은 "노 의원님께만큼은 직접 좋은 소식을 전달 드리고 싶었다"며 "의원님은 저희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주신 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찾아뵙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노회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KTX 승무원들의 복직 소식을 접한 후 축하 인사를 남겼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육성으로 읽지는 못했다. 김 지부장이 축하 인사를 건네받은 것은 노 의원의 빈소에서였다. 빈소를 방문했던 김승하 지부장은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우리의 투쟁은 어째서 항상 슬프고 아프고 한스럽나... 10여 년 넘게 이어진 복직투쟁 마감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신 노회찬 의원님, 자신의 첫 월급의 절반을 투쟁기금으로 보탠 이한빛 PD님, 3살 딸아이를 두고 떠난 그 친구...상상도 가지 않는 고통"
 

김승하 전 KTX 승무지부장이 2019년 7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유성호

 
1년 뒤 <오마이뉴스>가 만난 김승하 전 KTX 승무지부장, 김승하 전 지부장에게 노회찬은 이런 존재였다고 한다(강연주, "노회찬 마지막 인사, 직접 듣지 못해 안타까워요": [인터뷰] 복직 1주년 맞은 김승하 전 KTX 승무지부장 "의원님의 신념 잊지 않겠다", <오마이뉴스>, 2019.7.23.).
 
'동지' 같았던 분이죠. 노 의원님은 저희가 농성을 처음 시작했던 2006년부터 함께해주신 첫 국회의원이었어요. 아무도 관심 안 가져 줄 때부터 저희를 지지해주셨던 거죠. 그때는 제가 지부장이 아니라서 먼발치서 의원님을 바라봤어요. 그래도 의원님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죠. 살면서 저희 같은 노동자들이 국회의원과 마주할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저와는 먼 정치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존재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로도 우리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 같았어요.

불편한 정치, 사회 이슈가 나올 때마다 노 의원님 생각이 나요. 노 의원님께서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의원님만의 시각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쓴소리를 하시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 사회적으로 '어른' 역할 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기가 어렵잖아요. 누구든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필요한 말을 해주는 그런 어른이요. 그래서 의원님 생각이 더 나는 것 같아요.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다음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노동자와 노회찬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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