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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장비를 착용한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들이 19일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 일본 입국하는 배드민턴 선수단 방역 장비를 착용한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들이 19일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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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연기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다. 일본은 1940년 도쿄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중일전쟁에다가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겹쳐 대회를 반납했다. 그랬다가 24년 만인 1964년에야 도쿄 올림픽을 치러냈다. 이번에도 파행이 있었으니, 올림픽과 도쿄의 인연이 순탄치만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에서 열리는 대회라 대단한 가시적 성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스가 내각에 호재로 작용할 여지도 없지 않다. 올림픽 성공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에 낮아져 있기 때문에, 대회가 별 탈 없이 치러지거나 이 대회로 인해 코로나가 더 크게 확산되지 않은 사실만 갖고도 스가 내각이 '올림픽 성공'이라는 자평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올림픽을 무사히 치러낸다 해도, 올림픽 개최가 일본의 발전을 추동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게 만드는 사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의 무사 개최를 일본의 발전으로 연결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일본, 일사불란하던 이미지는...

'일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행정 효율성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700년간 일본을 이끈 무사(사무라이)의 모습이 함께 연상되면서, 일사불란하고 군더더기 없는 일본 행정의 이미지가 연상되곤 했다. 일사불란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같은 효율성이 일본의 발전을 견인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새천년을 목전에 둔 1997년 8월 25일 발행된 <경향신문> 기사 '일본의 행정개혁: 저비용 고효율 21세기형 국가변신 박차'는 "경제대국 일본을 이끌어낸 견인차로 찬양받던 일본의 관료제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다음에 "일본의 관료제도가 효율적인 경제발전과 불공평성이 적은 사회를 실현하는 데 공헌했다"는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런 다음, 행정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과 관련해 "새로운 국가 형태를 바라는 국민 총의를 바탕으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지난해 소위 '하시모토 비전'을 제창한 뒤 대대적 행정구조 개편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 뒤 "행정구조 개편의 목적은 행정의 통합성과 전략성 및 기동성 제고"라면서 "중복된 부분을 과감히 없애 행정 비용의 부담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여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기사는 "일본은 이 같은 '21세기형 국가체제 만들기'에서도 다른 나라를 앞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가 일본의 행정 시스템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20세기 분위기를 반영하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일본 행정과 21세기 일본 행정이 같지 않다는 점은 이미 상식이 되어 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 사태 앞에서 일본 행정이 우왕좌왕했던 모습도 그런 판단에 힘을 실어줬다. 코로나가 본격 확산되기 전인 2020년 2월 발생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태는 일본 행정이 예전 같지 않음을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코로나 확진 승객들 있었는데도... 미흡했던 일본 대처 

지난해 2월 4일 이 크루즈 선박에 탑승한 승객 1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선박 내부에 대해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사태 확산을 부추겼다. 수천 명의 승객들이 종전처럼 식당·연회장·수영장 등을 자유롭게 이용했던 것이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을 분리하는 그린존·레드존 설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선박에 진입한 후생성 관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조치조차 제대로 강구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이와타 겐타로 고베대학병원 교수는 강제 하선 조치를 당했다. 이와타 교수는 이후 '격리의 기본이 안 돼 있었다'고 폭로했다.

일본 정부는 승객·승무원 3713명 중에서 712명이 확진됐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확진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이 사태를 부추겼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의 행정 시스템이 어느 순간 뒤쳐져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들게 하는 일이다. 행정 시스템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지 않는다면, 올림픽이 무사히 치러진다 해도 그 성과를 사회 발전과 접목시키는 일이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정의 비효율성에 더해, 일본을 이끄는 사람들의 근시안적 사고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은 특히 남북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올림픽이 열릴 일본 도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급증을 보도하는 NHK 갈무리(7월 4일).
 올림픽이 열릴 일본 도쿄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급증을 보도하는 NHK 갈무리(7월 4일).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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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한 것은 코로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납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북한을 자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보다 너그러워야 할 잔칫집 주인이 손님과의 악연을 자꾸 부각시키니 잔치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북한의 도쿄올림픽 불참,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 무엇을 보여주나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무산된 것도 일본의 '근시안적 태도'를 반영한다. 금년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 이래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강제징용 등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에서 한걸음 후퇴했다. 그러면서 한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런데도 스가 내각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방일이 무산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식민지배 청산도 제대로 못 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도 제대로 못 한 문재인 정부 역시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손님을 왕으로 대하기는커녕 오히려 굴복을 요구하는 스가 내각의 태도는 비상식적이라고도 보인다.

일본인들의 마음 그릇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지난 6월 17일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가 주최한 학술 대담에서도 언급됐다. <일본 공간> 제29호에 실린 이원덕·김기석·김숙현·김웅희 네 학자의 대담에서 일본을 이끄는 집단의 비좁은 마음이 거론됐다. 해당 부분은 아래와 같다.
 
김기석(강원대 교수): "저도 일본 언론인들하고 회의하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도쿄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면 좋지 않느냐고 얘기를 했더니, 일본이 왜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되느냐는 식의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원덕(국민대 교수): "작년 가을부터 이미 박지원 국정원장,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의 방일이 이어지면서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재가동하고 한일관계·북일관계·북미관계도 개선의 모멘텀을 맞이할 수 있다는 발상이 정부 내에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중략) 근데 일본에서의 반응을 보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냉소적으로 '남의 집 잔치에 와서 너희 하고 싶은 일만을 하려고 하는 거냐', 그리고 '한일관계가 지금 이렇게 엉망인데 숟가락 얹을 궁리만 하는 거냐' 하는 식의 반발이 일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일본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꿈꾼다. 또 중국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미국과 함께 주도하면서 '정치 강국 일본'을 꿈꾸고 있다. 그런 일본을 이끄는 사람들이 '남의 잔치에 숟가락 얹으려는 것이냐'라며 한반도 평화에 대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 대국을 지향하는 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의 소극적·방어적 태도, 괜찮은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무산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입장을 보도하는 지난 20일자 NHK 뉴스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무산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입장을 보도하는 지난 20일자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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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가 곧 동아시아 평화이고 동아시아 평화가 곧 일본의 발전이라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상식이다. 그런 상식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일본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일본이 동아시아와 세계를 이끌어갈 역량을 점차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일본도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이 위의 대담에 언급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않은 데서도 느낄 수 있다.

북한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를 자국에서 열리는 잔치에 부르려면 웬만한 정성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올 테면 오고,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일본 지도층의 마음 그릇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안 그래도 어려운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예전처럼 유능하지도 않은 데다가 마음마저 비좁아져 버린 일본이 바로 이웃에 있는 남북한과의 협력 시스템을 외면하는 것은 안타깝고도 위험한 일이다.

일본이 평화의 장이 되어야 할 올림픽에서마저 이웃나라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올림픽 개최가 일본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에 긍정적 기여를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태그:#도쿄 올림픽, #동경 올림픽, #일본 행정, #일본인 의식, #스가 요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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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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