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언어는 생각의 토대다. 하나의 언어로 모든 생활이 가능한 환경은 편안함을 주지만, 익숙함이 생각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모국어 밖에 놓이는 경험은 자신과 세계가 낯설어지는 생생한 감각을 제공한다. 그런 이질감을 맞닥뜨리며 나를 여는 과정에서 내 안에 새로운 골짜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외국어가 모국어와 충돌하며 생기는 틈새에서 새싹처럼 무언가 자라나는 걸 꿈꾼다. 그런 내게 최근 읽은 스가 아쓰코의 <베네치아의 종소리>는 여러모로 신선한 자극과 울림을 남겼다.  
 
'베네치아의 종소리' 책표지.
 "베네치아의 종소리" 책표지.
ⓒ 문학동네

관련사진보기

  
스가 아쓰코는 예순이 넘어 비로소 첫 작품을 발표했고 8년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다섯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음에도 세월이 지날수록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다. 1960년대 패전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일본을 뒤로하고 유학길에 올라 13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했고, 귀국 후에는 연구자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로 왕성히 활동했다.

<베네치아의 종소리>는 유럽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언어와 사상,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세계를 탐구하며 정체성을 쌓아간 청춘의 기록이다. 비행기를 이용한 해외여행조차 일반적이지 않고, 여학교를 졸업하고 신부수업 후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스가 아쓰코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의 유복한 사업가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가치관, 생활방식에 의문을 지녔던 그녀는 가톨릭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일찍이 외국어를 익혔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도 삶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다 과감하게 유학길에 올랐다. 

젊은 시절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일은 개인의 내면에 얼마나 강렬한 흔적을 남길까. 저자는 "두 나라, 두 언어의 골짜기에 끼여 발버둥치던 그 시절"이라고 썼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자 했던 뜨거운 노력은 한 사람의 세계를 확장하고 독특한 무늬를 새기게 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보는 유연하고 너른 시선을 품게 해주었다. 인종과 성별, 나이와 사상 등 다름을 구분하고 경계하는 태도가 그녀에겐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여자다움이나 인간의 존엄을 희생하지 않고 학문을 계속하려면, 혹은 결혼만을 목표로 두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시집이나 가. 싫으면 수도원에 들어가든가.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했을 때도 반발심이 들었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시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문장이 나를 동요시켰다.
"스스로 대성당을 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성된 대성당에서 편하게 자신의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성당까지', <베네치아의 종소리>,스가 아쓰코,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청년기에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며 배움과 자유를 열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갈망을 깊이 탐구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지는 않는다. 1960년,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동양의 젊은 여성이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기 위해 낯선 땅을 향해 도전하는 이야기는 지금의 독자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동경어린 시선을 자아내게 한다.

온갖 장벽 앞에서 자신을 부수고 다시 세우길 반복하며, 타국의 문화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썼을 긴 시간을 헤아리다 보면, 그 사이 쌓아 올려진 그녀만의 '대성당'이 인애로운 모습으로 눈 앞에 드러날 것만 같다.

<베네치아의 종소리>에는 학회 참석으로 갔던 베네치아의 호텔에서 오페라의 선율과 아련한 종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베네치아의 종소리', 첫 유학지인 파리의 기숙사에서 만났던 독일인 친구와 삼십 년 만에 재회해 벚꽃길을 걷는 '카티아가 걷던 길', 젊은 시절 유럽 여행의 기억을 평생의 자산으로 품었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전해온 청을 들어주기 위해 밀라노 중앙역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 등 열두 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과거 기억의 편린을 주워 현재와 연결하는 그녀의 글은 아껴 둔 천을 엮어 지은 펠트 이불같다. 과거는 추억으로 박제되지 않고 현재에 무늬를 잇고, 빛깔을 드리운다. 지난 시절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상실의 아픔을 남긴다. 하지만 상실은 사라짐의 슬픔만 지니고 있지 않다. 기억과 이야기로 되살아나 현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고, 그 흔적은 다른 이의 삶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스가 아쓰코가 타국에서 삶을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에 두려움으로 망설이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건 아마 저자가 외국어에 능숙했기 때문이 아닐까. 관계 맺고 소통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언어 능력이다. 이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떠남을 결정하는 것이 쉬워질 수 있다. 스가 아쓰코에게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삶의 배경을 바꾸고, 경험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코로나19 감염병에 의한 팬데믹 상황에서 낯선 나라로의 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여건에서 지금의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젊은이들의 욕망은 어떻게 채워지고 있을까.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목마름을 축일 정도의 해외 여행을 경험했다. 그런 지난 시설이 다행스러운 만큼, 낯선 세계를 맞닥뜨리며 거듭나는 기회를 빼앗긴 요즘 청년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생각의 틀을 허물고 조금 다른 방향으로 물꼬를 트고 싶다면, 닫힌 내면에 작은 틈새라도 만들어보고 싶다면, 외국어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베네치아의 종소리>를 읽다보면 이국의 기차역이나 숙소, 한아한 길가에서 누군가를 만나 대화에 빠져드는 상상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어떤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당장 떠날 수 없는 여행을 언어라는 창으로 간접 경험해보자. 언젠가의 여행을 위해 유용한 도구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베네치아의종소리, #외국어공부, #여행에대한간접경험, #스가아쓰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목소리로 소소한 이야기를 합니다. 삶은 작고 작은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