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문화방송이 최근 벌어진 2020 도쿄올림픽 중계 방송사고 참사에 대해 사과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박성제 MBC 사장은 콘텐츠 책임자로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뒤늦은 사과로 땅바닥에 떨어진 방송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MBC는 지난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며 각국의 선수단 소개 장면에서 부적절한 자막과 사진을 잇달아 내보내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는 세계적인 재앙이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진을, 엘살바도르 선수단을 소개할 때는 논란 속 공식화폐가 된 비트코인을,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땐 대통령 암살과 현지 폭동을 언급하는 자막과 사진이 등장했다.

이밖에 시리아에 대해서는 내전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으며, 마셜 제도에 대해서는 미국의 핵실험장이라는 모욕적인 자막이 등장했다. 루마니아 선수단이 등장할 때는 뜬금없는 드라큘라 사진이, 일본 선수단 입장에는 초밥 사진이 등장하기도 했다.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 절대 금기시되는 세계 각국의 민감한 정치적-사회적 현안을 건드리거나, 특정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유도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됐다는게 문제였다. 단순한 국내에서의 방송사고나 해프닝 차원을 넘어서 그야말로 국제적 참사이자 국격 훼손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미디어의 발전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방송들은 이제 해외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주요 방송사라는 MBC의 어처구니없는 개회식 방송은 그야말로 전세계 누리꾼과 외신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MBC는 개회식 말미 아나운서와 자막을 통해 사과하고, 다음 날 한국어와 영어로 공식 사과문을 냈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에까지 해당 논란이 소개되면서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뒤였다.
   
CNN-NYT "부적절한 이미지 사용" 비판

해외 누리꾼들은 자국의 역사와 국가 이미지를 모욕한 데 대하여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일리야 벨라코프는 SNS에서 "도대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해야 폭발한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 이런 자막을 만들면서 괜찮다고 생각했을 담당자는, 왜 세월호와 9.11 테러 사진도 넣지 그랬냐?"며 강도높게 질타했다.

CNN은 "TV 중계는 각국 시청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국가와 선수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임에도 MBC가 모욕적인 고정관념을 내세우면서 실패를 불러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MBC가 이미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비슷한 사고를 내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올림픽 개막식에서 각 나라들의 퍼레이드는 시청자들에게 외교와 글로벌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는 것인데 한국방송이 부적절한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질타했다.

여론이 점점 악화되자 MBC는 지난 26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사옥에서 박성제 사장이 직접 참석하여 올림픽 중계 방송 사고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성제 사장은 세 차례나 허리 숙여 사과했고, 대대적인 쇄신을 약속하며 신뢰 회복을 약속했다.

박 사장은 "지난 주말은 MBC 사장 취임 후 가장 고통스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고 밝히며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90도 허리를 숙였다. 이어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들께 MBC 콘텐츠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역대급 방송참사가 벌어진 경위에 대해서는 "특정 몇몇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앞으로의 대처방향에 대해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도 파악하고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하겠다. 방송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규정을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겠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다하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장까지 직접 나서서 사과는 했지만, 사안의 엄중함과 파급성을 고려할 때 방송참사 이후 무려 3일 만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미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또한 시스템의 문제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내용이 빠진 알맹이 없는 사과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개회식 이후에도 MBC 중계 문제 연이어 노출

MBC는 올해 2월 스포츠국을 조직개편하면서 관련 인력들을 MBC스포츠플러스로 이관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내부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분야에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 전문인력들의 공백이 방송의 질적 하락과 검증체계의 붕괴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로 연결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성제 사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 있었던 사실은 시인했지만 그 부분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은 부정하며 "본사나 MBC스포츠플러스 어느 한 쪽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성제 사장이 가장 심각하게 지적한 방송사고의 원인은 기술적인 문제보다도 오히려 MBC 구성원들의 올림픽에 대한 '규범적 인식'에 대한 자성이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매개로 지구인들의 연대와 우정, 화합을 상징하는 무대다. MBC 방송참사 과정에서 문제가 된 자막과 내용들에는, 제작자들의 주관적 이념과 가치관에 매몰되어 타국과 타민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및 객관적인 이해가 보이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었다.

시스템도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다. 수많은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참여하는 방송, 그것도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대형 이벤트를 중계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부적절한 내용을 확인하고 제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것은, 방송제작에 참여한 MBC 구성원들 사이에서 집단적인 기강 해이와 가치관의 왜곡이 만연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한 대목이었다. MBC가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묻고 얼마나 투명하고 강도 높은 문책을 단행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박 사장의 사과가 무색하게 개회식 이후에도 MBC의 올림픽 중계를 둘러싼 사건사고는 속출하고 있다. 사과 기자회견이 열리기 바로 전날인 25일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B조 예선 대한민국 대 루마니아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자책골로 한국이 1-0으로 앞서가자, 경기를 중계하던 MBC는 전반전 이후 송출된 광고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경기 안내 자막을 내보낸 사실이 논란이 됐다. 누리꾼들은 자책골을 넣은 상대 선수를 조롱하는 자막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한일전 당시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렀던 일본선수를 향하여 "고마워요 사토"라고 했던 발언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한일전이었고 한국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허구연의 발언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도 일각에서는 실수를 저지른 상대 선수의 실명을 꼬집어 조롱하는 멘트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MBC도 개회식에서의 논란이 아니었다면 '고마워요 마린' 자막이 이렇게까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이틀 전 부적절한  자막과 사진으로 그렇게 큰 질타를 받아놓고 또다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 경솔함에 대하여 시청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MBC를 향한 전세계 여론의 질타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 방송과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에 맞는 책임감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과거에는 '국위선양'을 명분으로 한국의 승리와 메달 획득이라는 결과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오늘날의 국민들은 무분별한 '국뽕'에 기초한 경쟁심리보다는 당당한 과정과 명분, 공정성을 더 중시한다.

한국이 더 이상 과거처럼 스포츠를 통해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해소하지 않더라도 당당히 세계적인 무대에서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것이다. 세계인의 화합을 도모하는 스포츠 축제에서 상대 국가와 선수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위는 '우리 편'이라고 해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어려운 시점에 진행되고 있으며, 하필이면 정치적-역사적으로 민감한 관계에 있는 일본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미디어에서는 더 객관적인 균형감각을 지키려는 모습이 필요했다. 그런데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는 MBC에서 앞장서서 올림픽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오히려 국가 이미지와 국민 정서에까지 먹칠을 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잘못은 MBC가 저질렀는데 부끄러움은 온전히 우리 국민들의 몫이다. 국내 누리꾼들은 MBC의 행태를 강하게 성토하며 책임자 처벌과 중계권 박탈 등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SNS 곳곳에서 해외 누리꾼들에 대한 대리 사과가 속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직도 열흘 넘게 남은 올림픽 기간 동안 MBC가 이번엔 또 어떤 사고를 칠지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더 조마조마할 지경이다.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MBC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길은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