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찬반 의견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개막했던 2020 도쿄 올림픽이 8일 17일간의 대장정을 끝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일본의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1만 5000명 이상 폭증하면서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일단 올림픽이 시작된 이상, 5년 동안 기다린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중단할 수 없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를 수확하면서 16위로 올림픽 일정을 마무리했다(금메달 우선 기준). 12개의 금메달을 따냈던 2012년 런던 올림픽은 물론 9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2016년 리우 올림픽에도 미치지 못했고 최소 7개 이상의 금메달로 종합 10위 진입을 노렸던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태권도, 유도 등 전통적인 메달밭에서 한국은 단 하나의 금메달도 캐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즐긴 선수들에게는 메달 획득 여부와 색깔에 관계없이 이번 도쿄 올림픽이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됐을 것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좋은 경험을 쌓으며 스포츠 팬들을 감동시켰던 이 세 선수들처럼 말이다.

지구에서 가장 활 잘 쏘는 한국 양궁 응원단장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왼쪽)과 안산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왼쪽)과 안산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올림픽 6연패에 성공한 양궁 여자 개인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7연패가 좌절됐다. 중국 관중들이 한국의 박성현이 활을 쏠 때마다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며 박성현의 집중력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각종 국제대회에서는 외국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한국과 경기를 할 때면 일부러 기합을 크거나 소리를 지르는 방식으로 한국 선수들의 멘탈을 흔들곤 했다.

그동안 각종 국제대회에서 조용히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하기로 유명했던 한국 선수들이었지만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다소 색다른 궁사가 등장했다. 바로 남자 양궁대표팀의 2004년생 막내 김제덕이었다. 김제덕은 경기 중간마다 긴장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쳤고 이는 곧 김제덕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게다가 실력까지 뛰어난 김제덕은 혼성전과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여자부의 안산과 함께 3관왕 달성이 꽤나 유력해 보였던 김제덕은 지난 7월 27일 개인전 32강에서 독일의 플로리안 운루에게 세트 스코어 3-5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뛰어난 파이팅과 젊은 패기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따낸 김제덕도 혼자서 경기를 책임져야 하는 개인전에서는 위기관리능력 부족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렇게 김제덕의 올림픽 일정은 모두 마무리됐다.

하지만 김제덕은 3일 후 여자 개인전이 열리는 30일 유메노시마 양궁장의 관중석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던 파트너 안산과 여자 대표팀의 맏언니 강채영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강채영은 아쉽게 8강에서 탈락했지만 김제덕의 응원을 받은 안산은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하계올림픽 최초의 3관왕에 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생 막내의 응원이 누나에게 잘 전달됐다.

아쉬움 대신 환한 웃음으로 은메달 목에 건 김민정
 
[올림픽] 깜짝 '은메달' 보여주는 김민정 김민정이 30일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보여주며 기뻐하고 있다

김민정이 30일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보여주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한국 사격의 관심은 온통 '사격 황제' 진종오에게 쏠려 있었다. 진종오가 올림픽에서 하나의 메달을 더 추가하면 김수녕을 제치고 대한민국 올림픽 역대 최다 메달 보유자(7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종오는 7월 24일 10m 공기권총에서 15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고 27일 추가은과 함께 출전한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에서도 본선 1차전 통과에 실패하며 아쉽게 올림픽 일정을 마감했다.

사격의 간판스타 진종오가 노 메달에 그쳤지만 한국 사격은 7월 30일 기쁜 메달 소식을 전해왔다. 여자 25m 권총 종목에 출전한 김민정이 결선에서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은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김민정은 5년 전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을 정도로 일찌감치 한국 여자 사격의 간판으로 불렸지만 세계대회는 물론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경력이 없어 이번 올림픽에서도 메달 유력후보로 꼽히진 않았다.

하지만 김민정은 결선에서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ROC)의 비탈리나 바차라슈키나와 10시리즈까지 38-38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고 결국 슛오프 끝에 1-4로 뒤지며 은메달이 결정됐다. 슛오프에서 더 좋은 성적을 냈다면 메달 색깔이 바뀔 수도 있었기에 아쉬운 감정을 표현했을 법도 했지만 김민정은 경기가 끝난 후 환하게 웃으며 금메달의 주인공 바차라슈키나를 축하해줬다.

시상식에서도 마치 금메달의 주인공처럼 환하게 웃은 김민정은 지난 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저 즐겁게 총을 쐈을 뿐인데 어느새 목에 메달이 걸려 있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금메달리스트가 되진 못했지만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은 그 어떤 챔피언들에도 뒤지지 않았던 셈이다. 커리어 두 번째 올림픽을 끝낸 지금도 만 24세에 불과한 김민정은 진종오처럼 사격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세계 스포츠 팬들을 감동시킨 '4등의 품격'
 
[올림픽] 우상혁, '높이 뛰었다' 1일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2m 35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2021.8.1

1일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2m 35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2021.8.1 ⓒ 연합뉴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국 육상 높이뛰기의 간판 이진택은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높이뛰기의 김희선에 이어 8년 만에 올림픽 결승 무대를 밟았다. 당시 이진택은 2m29의 기록으로 8위에 오르면서 한국육상의 트랙·필드 종목 올림픽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1997년 2m34의 한국 신기록을 세운 이진택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높이뛰기의 일인자였다.

2003년 이진택 은퇴 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 육상은 트랙·필드 종목에서 단 한 명의 올림픽 결승 진출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렇게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 있는 육상 종목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됐던 지난 7월 30일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의 현역 일병 우상혁이 예선에서 2m28을 뛰어넘으면서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진택 이후 무려 25년 만에 찾아온 한국 육상의 쾌거였다.

우상혁은 지난 1일에 열린 결선 무대에서도 최고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결선에서 2m33을 넘으며 개인 최고 기록(종전2m31)을 경신한 우상혁은 2m35의 높이도 1차 시기에 넘으며 이진택이 가지고 있던 한국기록을 무려 24년 만에 갈아치웠다. 비록 금메달 도전을 위해 선택한 2m39에는 두 번 모두 실패했지만 우상혁은 전체 4위에 오르며 대한민국 올림픽 육상 역대 트랙·필드 종목 최고순위를 기록했다.

더욱 화제가 됐던 것은 우상혁의 표정과 자세였다. 대회 내내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경기를 즐긴 우상혁은 2m39 1차 시기에 실패한 후에도 "괜찮아"를 외치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2차 시기 실패 후에는 현역 군인답게 카메라를 향해 멋진 거수경례를 했다. 만약 이번 올림픽이 관중들이 가득 찬 상태에서 경기가 열렸다면 우상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박수와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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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 김제덕 김민정 우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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