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 들어보이는 안산 안산이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옐레나 오시포바를 상대로 슛 오프 끝에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안산이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옐레나 오시포바를 상대로 슛 오프 끝에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어느 때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올림픽이 8일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은 전 세계가 '코로나 19'에 휩싸인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 1년여 연기 끝에 간신히 대장정을 완료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 종합 16위로 대회를 마쳤다. 대회를 시작하기 전 목표했던 금메달 7개, 종합 10위에는 못 미치는 아쉬운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빛난 종목은 역시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양궁이었다. 일찌감치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된 한국 양궁은 예상대로 총 5개의 금메달(남녀 개인전, 단체전, 혼성전) 중 4개를 휩쓸며 한국이 따낸 금메달의 2/3를 책임졌다. 특히 여자양궁은 사상 최초로 올림픽 9연패를 달성했으며, 안산은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올림픽 단독 3관왕에 올라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특히 외신들은 한국을 '무자비한 양궁의 나라'라고 극찬하며 대한양궁협회를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와 선수육성 시스템의 모범 사례로 주목하기도 했다.

펜싱도 눈부신 선전을 보였다. 한국 펜싱은 단체전에서 금메달 1개(남자 사브르), 은메달 1개(여자 에페), 동메달 2개(남자 에페, 여자 사브르)를 수확했다. 개인전에서 동메달 1개만 따낸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단체전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며 2012년 런던올림픽(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던 체조의 깜짝 선전도 주목할만 했다. 도마에 출전한 기계체조의 '비밀병기'였던 신재환은 1, 2차 시기 평균 14.783점의 기록으로 2012년 양학선 이후 9년 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기는 경사를 맞이했다. 여자 도마 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여서정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도마 은메달을 건 아버지 여홍철에 이어 '한국 하계올림픽 사상 첫 부녀 메달리스트'로 영광스러운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하지만 양궁과 펜싱을 제외하면 전통의 효자 종목들은 이번 대회에서 다소 부진했다. 메달밭으로 기대했던 태권도, 유도, 레슬링, 골프, 사격 등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로 나오지 않은 것은 큰 아쉬움을 줬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야구, 축구, 배구, 농구, 핸드볼 단체 구기종목들 역시 지난 리우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노 메달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전통적 강세 종목들의 올림픽 동반 부진은 여러 가지 복잡한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일단 이번 대회만 놓고보면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여러 종목의 선수들이 예년과 달리 정상적인 훈련을 진행하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국제경기 경험 부족과 실전감각 저하는 자연히 올림픽에서의 부진으로 드러났다. 일부 협회들의 경우 파벌 싸움과 정보, 외교력 부재로 경쟁국가들의 성장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무능함도 지적된다.

레슬링에서는 지난 3월 선수와 코치들이 '코로나 19'에 집단 감염돼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 이번 대회에서 한국 레슬링을 대표하여 출전한 것은 류한수(8강)와 김민석(1라운드) 단 두 명뿐이었지만 모두 메달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태권도에서는 여자 67㎏ 초과급 이다빈이 은메달, 남자 80㎏ 초과급 인교돈과 남자 58㎏급의 장준이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대훈은 빈 손으로 대회를 마치며 끝내 올림픽과의 악연을 극복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

유도 대표팀은 은메달 1개(조구함), 동메달 2개(안바울, 안창림)를 획득했다. 사격은 김민정이 유일하게 은메달을 수확했으나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자였던 진종오의 무관이 아쉬웠다. 배드민턴 대표팀은 여자 복식에서 김소영-공희용과 이소희-신승찬이 나란히 준결승에서 패배하며 한국 선수들끼리 동메달 결정전을 치러서 김소영-공희용이 승리했다.

근대 5종 남자 개인전에 출전한 전웅태는 전체 3위로 한국 올림픽 사상 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근대 5종은 한 선수가 하루에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 등 5개 종목을 모두 해내는 종목이다. 전웅태는 지난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못하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고백한 일도 있다. 전웅태는 한국 근대 5종 57년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내며, 스포츠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근대 5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성과를 이뤄냈다.

한편 메달 색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순간들도 많았다. 육상 남자 높이뛰기의 우상혁은 결선에서 한국 남자 신기록인 2m35를 넘어 4위에 오르는 깜짝 돌풍을 일으켰다. 18세 고교생 수영 유망주 황선우는 첫 올림픽 무대에서 자유형 100m 아시아 신기록(47초56)을 세웠다. 결승에서 황선우는 아쉽게 5위를 기록했지만 아시아 선수가 올림픽 경영 남자 자유형 100m 결승에 오른 것만도 1965년 멜버른 대회 이후 무려 65년 만의 성과였다.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의 김연경이 3세트 실점하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의 김연경이 3세트 실점하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여자배구는 2012 런던올림픽 이후 9년 만에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아시아팀으로 4강에 오른 것은 한국이 유일했다. 프로 구기종목들이 대체로 부진했던 가운데 한국 여자배구는 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일본, 도미니카 공화국, 터키 등의 난적들을 줄줄이 연파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박수를 받았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배구 여제' 김연경은 대회 내내 뛰어난 리더십과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국민들과 외신에 이르까지 극찬을 받았다.

비록 승자가 되지 못했어도 패배에 대처하는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숙한 자세는 돋보였다. 유도의 조구함, 태권도의 이다빈-이대훈, 배구의 김연경 등은 안타깝게 경기에 패배하고도 기꺼이 상대 선수의 승리를 먼저 축하해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멋진 스포츠맨십을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다. 오늘날 스포츠에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과 매너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이 스포츠와 승부를 받아들이는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고 부끄러운 장면들도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 스포츠로 꼽혔던 야구와 축구의 동반 부진은 이번 올림픽에서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킨 순간으로 꼽힌다. 내심 금메달까지 목표로 했으나 8강전에서 그동안 23세 이하 대결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던 멕시코에 3-6으로 충격적인 대패를 당하며 조기 탈락했다.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강팀들과 대등한 정면승부를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2008 베이징 대회에 이어 13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부활한 야구는 대회 2연패를 노렸으나, 준결승 녹아웃 스테이지 이후 충격의 3연패를 당하며 참가 6개국 중 4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이미 올림픽 전부터 프로야구계의 방역수칙 위반과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라 야구대표팀의 무기력한 졸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국민들을 가장 부끄럽게 한 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바로 방송사였다. 국제적인 대형 스포츠 이벤트마다 고질적으로 드러나는 제작진의 전문성과 준비 부족,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중계 등 국내 스포츠 중계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방송사들이 시청률과 화제성에 치우치느라 스포츠 중계마저 자극적인 예능의 관점으로 접근하려다 발생한 사고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MBC는 개회식 중계보다 각국의 민감한 정치, 역사적 현안을 언급하며 외교적 결례, 차별과 편견을 남발하는 자막과 사진들로 외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국제망신을 초래했다. 사장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이후로도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축구대표팀 중계에서 자책골을 넣은 상대선수를 조롱하는 '고마워요 마린' 자막, 여자배구 김연경의 인터뷰 과정에서 취재진의 질문과 다른 축구-야구 결과를 언급하는 엉뚱한 자막 삽입, 마라톤에서 부상을 당하여 레이스를 포기한 선수에게 "찬물을 끼얹는다"고 막말을 일삼는 해설자까지, 수준 이하의 방송사고들이 속출한 점 역시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 밖에도 인기 종목에만 편중된 중복 중계와 그에 따른 비인기종목에 대한 편성 차별, 메달로 선수의 노력과 가치를 평가하는 결과지상주의적인 잣대, 여성 전문 캐스터의 부재와 중계진의 성차별성 발언이 속출한 것 등도 많은 지적을 받았다. 한국 스포츠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장 체육인들만이 아니라 그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방송과 언론도 성숙한 저널리즘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이번 올림픽이 남긴 또다른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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