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코르테 말테제'에 반미 세력 쿠데타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 정부는 그들이 감옥에 감금된 정체불명의 외계인, '프로젝트 스타피쉬'를 악용할 것을 걱정한다. 이에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는 벨 레브 교도소에 투옥되었던 슈퍼 빌런들을 코르테 말테제에 침투시켜 스타피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 결과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와 '할리 퀸(마고 로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1팀이 작전 개시와 동시에 끔찍한 실패를 겪는 사이, '블러드스포트(이드리스 엘바)', '피스메이커(존 시나)', '킹 샤크(실베스터 스탤론)', '랫캐쳐2(다니엘라 멜시오르)', '폴카도트맨(데이빗 다스트말치안)'로 구성된 진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안전하게 섬에 침투한다. 그러나 작전이 진행될수록 팀플레이가 체질이 아닌 악당들은 갈등을 빚기 시작하고, 그들 앞에는 프로젝트 스타피쉬 일명 '스타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이름을 알린 제임스 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DC의 새로운 슈퍼 히어로(빌런)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흥행과 별개로 악평에 시달렸던 전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선을 그은 후 리런치(Relaunch)한 작품이다. 즉 전편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속편이지만 스토리는 전혀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중 리런치의 흔적은 크게 두 대목에서 드러난다. 하나는 전편에 비해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의 비중이 커진 플롯과 캐릭터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비판적인 대목을 철저히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이며 과장된 조롱으로 상기시키는 연출상의 특징이다. 

전편과 선 그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우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을 보자. 작중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 중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는 피스메이커와 블러드스포트가 있다. 두 인물은 인생사와 능력이 모두 동일하지만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다. 블러드스포트는 개인적인 이유로 임무에 참가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방관할 수 없다는 소시민적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에 피스메이커는 평화를 부르짖지만 정작 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든 상관없다고 믿는 급진적 애국주의자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상징한다.

작중 피스메이커가 폭주할 때 본인 스스로 자유의 상징이라고 여긴 헬멧이 찌그러져있다는 점은 그의 신념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이러한 둘의 차이는 진지한 성품을 지녔고 SF스러운 무기를 선보이는 블러드스포트와 달리 피스메이커가 우스꽝스러운 외형과 행동을 보여주며 구식 무기들을 사용하는 외적인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이때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블러드스포트를 중심으로 새로 모습을 보인 등장인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마련해 피스메이커의 신념을 비판하고, 그와 같은 광기를 통제할 수 있는 앞으로의 비전도 제시한다. 아동학대를 당했던 폴카도트맨, 쥐가 유일한 친구인 랫캐쳐2, 마음속 외로움이 가득한 킹 샤크는 블러드스포트처럼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치유하고 싶다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동기로 움직인다.

영화는 이처럼 전혀 관계없는 개인들이 자신들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해결하는 와중에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점진적으로 친구, 가족,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는 무용담을 부각한다. 즉, 아무리 사소하고 인간적인 삶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개인들이더라도 그들의 연대는 광기 어린 국가 권력의 폭주를 막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범죄자들이 하나의 팀과 가족으로 거듭나면서 우주를 구해내는 감독의 전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맞닿은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작중 가장 결정적이고 영웅스러운 역할은 가장 약하고 무용해 보이는 능력을 지닌 소녀에게 주어진다.  

교도소 상황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변화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은 코르테 말테제 섬에 팀을 파견할 때만 해도 팀원들의 생존 가능성과 탈주 및 사망 순서를 두고 도박판을 벌일 정도로 비인간적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민간인을 도우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들은 이내 최선을 다해 슈퍼 빌런들을 지원한다.

이러한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동체적 힘이 권력을 지닌 군과 정보기관, 정치인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희망과 바람을 드러낸다. 코르테 말테제 섬에 여전히 미국 정부가 심어놓은 분란의 씨앗이 남아있고, 미국 정부의 구시대 패권주의적 접근법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쿠키 영상도 이처럼 진짜 피스메이커를 밝혀내는 메시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미국의 역사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또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알레고리로 삼아 캐릭터들의 성격, 더 나아가 영화의 메시지에 힘을 준다. 당장 시작부터 영화는 미국 패권주의의 치부를 드러낸다. 코르테 말테제에 잠입하는 임무를 맡은 1팀은 거대한 성조기 앞에 모인 채 멋진 워킹을 보여준다. 그러나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을 지닌 쿠데타 군 앞에서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믿기 힘든 실패를 경험한다.

이러한 오프닝 시퀀스는 엄연한 주권국가에 몰래 병력을 투입하고, 미국의 의도대로 쿠데타 정권을 조종하려 했으나 처절하게 실패했던 '피그만 침공'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61년 4월 17일,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쿠바 해변에 상륙한 미국의 2506 여단은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남은 병력은 모두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 작전은 쿠바 미사일 사태를 촉발시킨 계기였고,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주권침해행위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철저히 유머러스하고, 과장되어 있고 비현실적인 연출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의 비극성을 대조적으로 강조하며 영화의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숲에서 만난 현지 무장 세력의 캠프를 마치 게임하듯이 습격하고, 사살한 인원의 숫자를 세며 경쟁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죽인 이들은 현지 반 쿠데타 세력, 즉 우군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쿠데타 정권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자신들의 과오인 불필요한 살육을 간단히 외면하는 팀원들의 태도는 미군이 개입되었던 여러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전쟁만 보더라도 미 공군이 군사적 목표뿐 아니라 대도시와 민간인 거주지역에도 융단폭격을 가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해당 사건들이 유야무야된 역사가 발견된다.

그 외의 장면에서 유독 살인과 죽음을 희화화하고 과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할리퀸이 군인들을 창으로 찌르고 베자 피 대신 화려한 꽃잎들이 튀어나온다. 해변에 도착한 팀원들은 마지막 유언에서 제일 중요한 말을 못 한다거나, 전투에 쓸모없는 능력을 선보인다던가, 심지어 수영을 못해서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익사하는 식으로 황당무계하게 퇴장한다. 

하지만 이처럼 부자연스럽고, 윤리적 금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지나치게 만화적인 판타지 덕분에 비현실적인 묘사가 기반을 두는 현실이 역으로 명료해진다. 피스메이커와 나머지 팀원 간의 충돌과 갈등, 그로부터 비롯되는 죽음 역시 다른 장면들과 달리 대조적으로 매우 진중하게 묘사된 결과 그들의 대립이 갖는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따라서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작품에 비해 유달리 잔인하고 폭력적인 연출은 히어로 장르 안에서 이 영화를 (완성도와는 별개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고, 제임스 건이 제작하는 스핀오프 드라마 <피스메이커>에 대한 기대도 키우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모든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화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의도된 연출이다 하더라도 수위가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잔인해서 꽤 불편할 수 있다. 액션이 밀집되어 눈을 떼기 어려운 전후반부에 비해 캐릭터들의 과거사가 소개되는 중반부는 전개상 반드시 필요하지만 리듬이 순간적으로 늘어지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미국식 성인 유머가 남발되는 등 미국적 정서가 강조되는 것도 그 임팩트나 뉘앙스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서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영화다. 우선 리런치라는 승부수를 던져 할리 퀸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들을 폭넓게 활용하고, 빌런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각인시키면서 전편의 실패를 씻어낸 공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비현실적인 판타지로서 미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차별화된 방식으로 풀어내고 독보적인 매력을 뽐낸다는 점에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반적으로 실망을 안겨주었던 DC 히어로 영화들을 다시금 기대할 한줄기 희망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와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임스 건 DC 유니버스 할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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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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