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소위 '남성혐오'와 '여성혐오'가 팽배해지고 있다. 여성·남성 커뮤니티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혐오 게시글이 올라온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성별 간의 혐오는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남성혐오로 불거진 '손가락 모양 논란'이나 여성혐오로 불거진 '안산 선수 논란'은 워낙 상식 밖의 논란이라 논란이 됐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두 논란을 다시 들여다보자.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성혐오 표현으로 사용하는 손가락 모양이 한 편의점 포스터에 사용됐다고 해 논란이 됐었다. 소시지를 엄지와 검지로 집으려는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성혐오로 쓰는 표현이라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논란이 된 GS25 포스터(왼쪽)는 교체됐다
 논란이 된 GS25 포스터(왼쪽)는 교체됐다
ⓒ GS25

관련사진보기

 
손가락 모양 논란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당시 전 최고위원)가 논란에 뛰어들면서 이슈는 더 커졌고, 급기야 전쟁기념관에는 2012년부터 있던 포토존까지 철거됐다. 포토존에 유사한 손가락 모양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 커뮤니티 이용자는 남성을 혐오할 목적으로 엄지와 검지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뭔가를 집을 때 사용하는 엄지와 검지 표현을 과도하게 해석해 우리의 일상을 제약할 필요가 있을까? 앞으로 우린 과자를 집을 때 어떻게 집어야 할까? 엄지와 중지로? 아니면 엄지와 약지로?

안산 선수 논란도 마찬가지다. 몇몇 남성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로 규정 짓고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리 짧음 = 페미니스트 = 자격(금메달) 박탈'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면 우리 주변의 얼마나 많은 여성의 자격이 박탈돼야 할까?

안산 선수 논란이 제기됐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엄마와 할머니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숏컷이었던 엄마와 할머니의 자격은 박탈되어야 하는 것일까? 또 안산 선수가 썼다는 '오조 오억' 표현은 우리가 상업광고에서도 접할 만큼 '많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손가락 논란'이나 '안산 선수 논란'은 조금만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이미 혐오가 팽배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옳고' '그름'은 중요치가 않다. 억지라도 이슈를 만들어낸다면 그걸로 성공인 셈이다.
 
안산 선수 숏컷 논란을 다룬 영국 방송 BBC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글.
 안산 선수 숏컷 논란을 다룬 영국 방송 BBC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글.
ⓒ BBC

관련사진보기

  
답답해져만 가는 싸움

앞선 두 논란으로 한동안 내 SNS는 진흙탕이었다. 상식 밖의 논란이 논쟁이 되어 한바탕 토로의 장이 됐기 때문이다. 혐오싸움은 갈수록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남녀 간의 제로섬 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4일 중앙일보에서 <털 뽑고 유두 가리개까지 쓴다, 2030남 눈물겨운 여름나기>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공유됐고, 반응은 주로 남성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댓글들도 "여성들은 맨날 브라 차고, 털 뽑는데 그까짓게 뭐가 힘드냐"는 식이었다. 한 페미니스트 페친이 SNS에 올린 비슷한 글을 읽으며 이러한 조롱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앞선 두 논란처럼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온라인상에서의 여성 대 남성 간의 싸움으로 번질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숨겨둔 나의 콤플렉스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자면 난 얇은 옷을 입지 않는다. 니플패치를 붙이는 것 대신 얇은 옷을 입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다. 반팔을 살 때나, 여름에 외출할 때는 옷에 신경을 많이 쓴다. 혹여나 콤플렉스가 드러나면 여간 민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콤플렉스로 인해 과거 여성 친구들 사이에서 '노브라 이슈'가 한참이던 때 조용히 속으로 응원했던 적이 있다. 모두가 조금씩 도드라진 상의를 맘 편히 입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언젠간 나의 콤플렉스도 자연스레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니플패치 붙이는 게 싫고, 얇은 옷 입는 게 콤플렉스인 남성이나, 어렸을 때부터 브라를 착용했던 여성이나 기간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이 불편하다면 조롱 대신 다 같이 조금은 도드라지게 살자고 얘기해보면 어떨까.

아무런 해결책도 보이지 않은 채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성 혐오는 너무 피로하다. 언제쯤 혐오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콤플렉스를, 우리 어머니들의 숏컷을, 여성 친구들의 몸을 손가락 모양만큼(조금)만이라도 이해한다면 혐오 사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성윤씨는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입니다. '정치권 세대교체'와 청년의 목소리가 의회에 좀 더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6년 12월 청년정당 미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17년에는 만 23살의 나이로 1기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서른을 6개월 앞둔 지금은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남성혐오, #여성혐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