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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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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 때 그 권력과 야합해 언론 자유 운동한 기자들을 대량 해직했던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마치 언론 자유를 위해 애쓰는 것처럼 지금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해직에 대해선 단 한 마디 잘못했다고 사과한 적 없다."

"지금 집권세력도 문제다. (40년 전엔) 언론 자유를 위해 애쓴다고 했다가, 이제 언론중재법을 만들면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고집을 부리고 밀고 나간다. (합의 없이) 강행처리 한단다. 만일 이대로 밀고 나갈 경우, 국민의 거대한 저항을 받아 지난 정권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언론중재법 취지는 옳지만, 숙려 없이 단독 강행은 위험"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자,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27일 법정에서 낭독한 최후진술문은 1979년과 2021년, 두 시점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이사장은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에 앞서 자신이 당시 정권과 소속 언론으로부터 당했던 수난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현 시점 집권 여당의 언론중재법 단독 처리 추진에 대한 비판을 전했다. 이 이사장은 영화 < 1987 >에서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실존 인물로, 1987년 교도관으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 사건의 진상을 전달받고 김승훈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에게 전달, 6월 항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이날 재심은 이 이사장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 윤보선 전 대통령 자택에서 내·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언론자유 보장과 긴급조치 해제를 요구하는 성명서 '나라의 민주화를 위하여'를 배포했다가 "법 질서 파괴, 사회 혼란 조장"이란 죄목으로 1980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 판결 받은 데 대한 판단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조용래)는 당시 계엄포고가 위헌임을 확인하고, 이날 이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41년 만의 최종 결론이다. 검찰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며 당시 기소가 옳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이 이사장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이날 판결이 현재 언론을 둘러싼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개를 편다'는 법문을 인용하면서 "법과 사상은 실천을 뒤따라가기 마련이라는 법문인데, 오늘 재판부는 그 법언이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언론 자유와 관련한 혼란에도 좋은 시사점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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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사장은 무죄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해직기자들에게 언론자유를 빼앗은 당시 정권과 언론사가 참회하지 않고 있는 상황과 현 집권 여당이 국민 여론 수렴 없이 언론중재법을 강행 처리하려는 모습이 공존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언론중재법 취지는 틀린 게 아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거나 이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피해가 넘쳐나고 있다"라고 운을 떼면서도 "(언론자유를 해치지 않기 위해) 갖춰야할 조항이 많은데도, 집권 세력 논리대로 건너뛰어 부작용이 나타나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지금이라도 강행 처리에 정부와 여당이 몰두할 게 아니라, 국회 내에 여야와 언론 관계 단체, 시민단체들이 모여 숙려 기간을 가져야 한다"면서 "좋은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에 이용당해 큰 낭패를 겪을 것이 예상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리를 떠나는 마지막까지 여당을 향해 "신중한 처신을 부탁 드린다"는 말을 전했다.

"언론자유 탄압했던 언론사들, 자유 외치는 모습 시답잖아"

동시에 과거 언론자유를 제약했던 언론사들의 태도도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기막힌 사실은 독재 권력과 야합해 1970년~1980년대 언론자유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내쫓은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신문들이 마치 언론자유를 위해 앞장서는 양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이 언론중재법을 반대하는 것은 언론자유 자체를 시답잖게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이사장은 이날 법정에서 구속 기간 자신이 교도소 안에서 받은 가혹 행위, 일명 '삼청 교육'을 진술하기도 했다. 감방 동료가 눈밭 속에서 벌거벗은 채 모욕적인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두려움에 나서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내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제 치욕이다"라고 괴로워했다.

그는 전두환씨 취임일 특사로 석방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의사회구현'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등을 언급하는 전씨의 취임사를 들으며 "전두환 정권이 끝날 때까지 언론인으로 복직되는 건 상상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전씨 정권이 끝날 때까지 싸울 도리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어찌됐건 지금은 검찰에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는, 그런 세상을 저는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태그:#이부영, #언론중재법, #언론자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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