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언니들의 스토리텔링이 각광받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유능할 뿐 아니라, 솔선수범해서 동료들을 이끌어주고 든든하게 의지가 되어주는 리더십도 발휘하며, 자연인으로서는 따뜻하고 진솔한 인간미가 넘쳐나는 의외의 반전매력에 이르기까지, 알면 알수록 양파같은 매력을 발산하는 'K-언니들'의 캐릭터가 대중을 사로잡으며 방송에서도 주목받는 시대다.

특히 배구스타 김연경은 최근 '언니미'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배구여제'로 불리우는 김연경은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을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4강 신화로 이끌며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외신으로부터도 '10억분의 1의 별', '진정한 리더'라는 극찬을 받았고 팀 동료와 상대 선수들, 지도자들, 외신과 전 세계 배구계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김연경의 기량과 인성, 프로의식을 인정했다는 것은 바로 김연경이 선수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력과 매너에 모두 찬사... 할말은 한다
 
 SBS <런닝맨>에 출연한 김연경.

SBS <런닝맨>에 출연한 김연경. ⓒ SBS

 
대중이 김연경 신드롬에 유독 열광하는 것은 단지 선수로서의 개인적 업적을 넘어서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사회적 위상과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한국 여성 스포츠 선수 중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찾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로 꼽힌다. 김연아, 박세리 등 자신의 분야에서 월드스타라고 할 만한 업적을 세운 선수들은 있었지만, 보수적인 한국 체육계에서 김연경처럼 거침없으면서 할말 다 하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면서도 구설수나 안티가 거의 없는 슈퍼스타는 찾아보기 드물었다.

김연경은 흥국생명과의 FA 자격 논란에서부터, 이다영-이재영 자매와의 불화설, 국가대표팀에 대한 협회의 부실 지원 등 가장 민감한 현안마다 의도하지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던 경우가 많았지만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야 하거나 어려운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순간에는 절대 회피하지 않았다. 김연경같은 스타가 용기를 내어 앞장서준 덕분에 여자배구가 대중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고, 배구계의 불합리한 관행을 공론화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

김연경은 올림픽과 국가대표 은퇴 이후 최근 방송가에서도 연이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기예능 <나 혼자 산다> <런닝맨> <라디오스타> 등에 출연하여 특유의 호탕한 입담과 예능감을 뽐냈다. '식빵언니'라는 고유의 캐릭터를 살려 제과-게임 등 광고에도 다수 등장했다. 김연경 효과로 인하여 함께 출연한 동료 국가대표 배구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SBS <골때리는 그녀들>의 박선영.

SBS <골때리는 그녀들>의 박선영. ⓒ SBS

 
최근 방송중인 SBS <골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은 여성 연예인, 셀럽들이 여자축구팀을 꾸려 우승에 도전하는 스포츠 예능이다. <골때녀>에는 배우, 가수, 개그맨, 모델, 전 국가대표 운동선수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국내 방송사상 가장 많은 여성 고정출연자들이 단체로 등장한다.

여기서 여성 출연자들의 선수 못지않은 축구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승부욕은 이 프로그램이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구척장신'의 한혜진, '국대패밀리'의 한채아, 전미라 등 언니들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불나방'의 박선영은 <골때녀>의 절대자로 통한다. 체대 출신의 박선영은 젊은 시절 여자 축구 국가대표 지원까지 생각했을 만큼 연예계에서 소문난 운동광이다. <골때녀>는 바로 박선영 때문에 탄생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타는 청춘>(아래 불청)에서 박선영의 남다른 축구실력을 눈여겨본 제작진이 <골때녀>의 아이디어를 기획했고, 불나방은 박선영을 비롯한 불청의 여성 멤버들로 구성된 팀이다.

박선영은 <골때녀>에서 전문 축구인들도 인정하는 놀라운 실력을 과시하며 불나방의 설특집 파일럿-정규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수를 넘나드는 왕성한 체력과 독보적인 발재간은 물론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축되지않는 강인한 정신력, 상대팀들의 집중견제와 거친 플레이도 유쾌한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성숙한 모습으로 실력과 매너 모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당하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 잊지 않아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허니제이.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허니제이. ⓒ 엠넷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아래 스우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여성 스트릿 댄서들의 세계를 조명한 서바이벌 경연 예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환불원정대' 안무가 출신으로 유명한 아이키가 이끄는 댄스 크루 '훅'은 방영 초반 타 팀으로부터 '아이키와 아이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키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의 연령대가 어리고 경력이 짧기 때문이었다.

아이키는 4대천왕 미션에서 자신보다는 팀 자체의 군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팀원들과 똑같은 옷에 핑크 가발을 뒤집어쓰고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도록 했다. 자신만이 돋보이는 게 아니라 팀으로서 함께 주목받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이키의 의도대로 훅의 무대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고 미션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각 크루의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지는 <스우파>에서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아이키만의 능수능란한 유머감각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크루들의 첫 만남에피소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라치카 가비와의 팽팽한 신경전이 부각되며 자칫 엠넷 서바이벌 특유의 '악마의 편집'이 등장할 수 있는 타이밍에, 정작 아이키는 "털게 없네요, 죄송합니다"라는 자폭 개그 한 방으로 분위기를 무장해제시켰다. 심지어 댄스배틀 중 의상체인지에 실패하며 위기를 맞은 경쟁자 가비를 오히려 도와주기도 했다.

코카앤버터와의 4대천왕 미션을 앞두고 선전포고를 해야하는 장면에서는 "연신내 사시잖아요?"라며 허를 찌르는 생뚱맞은 드립을 던진다. '안무카피 챌린지'에서는 다른 팀들처럼 상대가 따라하기 힘든 복잡한 동작 대신 오히려 귀여운 안무를 선사하며 상대의 허를 찌른다. 결국 줄곧 진지하던 상대팀마저도 참지 못하고 끝내 피식 웃게 만들어버린다.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동료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유쾌하게 경쟁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아이키의 여유가 호감을 자아내는 이유다

댄스크루 '홀리뱅'의 수장인 허니제이는 걸스힙합계에서 손꼽히는 댄서지만, <스우파>에서는 대우가 영 좋지 않다. 첫 등장 당시의 끝판왕같던 포스와 달리, 5회까지 개인전-팀전을 모두 합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무려 5연패라는 굴욕을 당하며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호구제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미션에서의 거듭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방송 이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허니제이에 대한 호감도가 갈수록 높아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과거 같은 크루였다가 갈등을 빚으며 해체했던 후배 리헤이와 7년 만에 댄스배틀에서 재회하여 아쉬운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멋있어졌는데?"라고 칭찬해주는가 하면, 먼저 손을 내밀어 리헤이를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모습으로 '대인배'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장면은 지금까지 <스우파> 최고의 감동적인 명장면으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또한 계급미션 메인댄서 결정전에서는 아이키가 실수를 저지르고 남은 안무를 포기하자, 유력한 경쟁자였음에도 끝까지 계속 독려하기도 했다. 라치카와의 4대천왕 미션에서 안무파트 선점을 놓고서 신경전을 벌였을 때도 먼저 양보한 쪽은 허니제이였다. 각종 교묘한 수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지략가들이 즐비한 <스우파>에서 허니제이는 대중성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려하고 어린 후배들과 상대 크루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허니제이의 정정당당한 정공법과 페어플레이야말로 진정한 힙합정신을 보여줬다며 시청자들의 호평이 연일 쏟아지는 이유다.

이처럼 최근 대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K-언니들의 공통점은 이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기 확신에서 나오는 당당함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면서, 자신만 돋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든든한 동료이자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주눅들지 않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 도전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진취적인 사고야말로 같은 여성들마저도 설레게 만드는 '언니 리더십'의 매력이다.
김연경 허니제이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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