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30 07:08최종 업데이트 21.09.3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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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29일 오후 도쿄도(東京都)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기시다는 내달 4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후임인 제100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다. ⓒ 연합뉴스=교도통신

 
일본 자민당 총재로 기시다 후미오가 새롭게 선출됐다.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를 자랑하는 고노 다로 규제개혁상, 기시다파의 영수로서 작년에 이어 다시 재도전한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 호소다파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그리고 노다 세이코 간사장 대행 등 총 네 명이 출마한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1차 투표(중/참의원 381표, 각 지역 당원표 381표)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어 2차 결선투표로 이어졌다. 2차 결선투표는 국회의원 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중참의원 381표, 각 도도부현 대표 47표)

그렇기 때문에 결선투표로 가게 되면 국회의원이 소속된 자민당 내 파벌의 역학관계가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럴 경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실권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호소다파(96명)의 의중이 총리를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회(점입가경 일본... 누가 아베의 심경을 건드렸나, http://omn.kr/1v8lb)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후보는 고노 다로였다. 또한 다가올 중의원 총선거 걱정을 해야 하는 3선 이하 의원들은 고노 지지를 표명한 이시바 시게루, 고이즈미 신지로 등 국민적 인기가 높은 이들을 간판으로 선거전에 임하고 싶어 했다. 호재도 있었다. 처음 후보 윤곽이 드러났을 때 기시다파를 제외한 나머지 4대 파벌(호소다파, 아소파, 다케시타파, 니카이파)이 자유 투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원 표와 3선 이하 의원들의 표를 모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노 다로가 유력했다.
 

일본 자민당은 29일 오후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될 27대 당 총재를 선출했다. 사진은 한 표를 행사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2021.9.29 ⓒ 연합뉴스

 
'열등감 덩어리' 아베의 빅픽처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상황이 돌변했다. 애초 자유 투표를 하기로 했던 호소다파가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을 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본정치랄까, 의원내각제 시스템의 구조적 맹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나다 도모미 전 방위상과 더불어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로 이름이 높은 다카이치 사나에는 출마 표명 전까지 차기 총리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아예 이름도 못 올릴 정도로 저조한 지지율(1% 미만)을 기록했다.


그랬던 그가 아베 전 총리의 지지발언이 있자마자 금세 총재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인 20명을 하루 만에 다 모았다. 노다 세이코가 일주일에 걸쳐 겨우 모은 것과 천양지차이다. 아베 전 총리는 물론 여론의 관심이 쏠리자 "개인적으로 추천인이 된다는 말이며, 파벌과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고 그 때만 하더라도 호소다파는 '자유투표'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1차 투개표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다카이치 사나에에게 국회의원 표만 114표가 나온 것이다. 이는 고노 다로가 얻은 86표보다 28표나 더 많고 명문 파벌의 영수인 기시다 후미오가 얻은 의원 표 146표와도 별 차이가 안 난다. 지지율 1% 미만에, 뚜렷한 실적도 쌓은 바 없는 그가 고노, 기시다와 거의 필적할 수준의 표를 획득한 것이다. 노다 세이코와 비교해도 이해가 안 간다. 같은 여성 후보이고, 총무상 유경험자에 둘 다 무파벌이다. 의원 선수도 비슷하다. 하지만 노다는 불과 34표의 의원 표를 얻었다.

둘의 이러한 차이는 돌고 돌아 결국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한다. 우선 아베 전 총리의 멘털리티부터 알아야 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아베의 정적이자 필생의 라이벌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다. 이시바는 고노 다로 지지를 가장 먼저 표명했다. 그리고 이시바파의 의원 표 16표도 고노에게 갔다. 굳이 일본식 논공행상이랄 것도 없다. 어느 나라의 정권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지지표명을 하고 같이 싸워준 동지에겐 정권을 잡은 뒤 걸맞은 대우를 해 주는 법이다. 실제로 이시바는 고노 다로가 총재가 될 경우 당 3역(간사장, 정무조사회장, 국회대책위원장) 및 주요 내각 대신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 자민당은 29일 오후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될 27대 당 총재를 선출했다. 1차 투표에서는 후보 4명 중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이 256표(의원표 146표+당원 산정표 100표),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상이 255표(의원표 86표+당원 산정표 169표)를 획득해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사진은 1차 투표 개표 결과를 보여주는 전광판. ⓒ 연합뉴스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가 말하듯 '열등감 덩어리'인 아베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10년간 온갖 고심을 다해 내친 라이벌이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호소다파의 전략적 투표다. 1차 투표에서 아베의 의향대로 다카이치 사나에를 찍으면, 고노 다로의 과반수 획득은 실패하니까 2차 결선투표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어진 결선에서는 기시다를 밀자고 계획을 짰을 거라는 예측이 파다했다. 이 계획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일단 무파벌 다카이치 사나에가 1차 투표에서 얻은 국회의원표 114표는 호소다파의 96표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파라도 고노는 싫어... 아소의 배신

아베 총리의 이러한 전략에 맞장구를 친 이가 아소 다로 재무상이다. 자기 파벌의 소속 의원이 총재 선거에 출마했는데 자유투표를 결정한 사례는 없다. 옥신각신 하다가 파벌이 갈라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일단 소속파벌 의원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철의 결속력'을 자랑하는 아소파의 수장 아소 다로는 마지막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아소의 이러한 행위는 배신이라 볼 여지도 있다. 왜냐면 그가 이끌고 있는 아소파(志公会, 시코우카이)의 원류는 고노 다로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가 이끌었던 파벌 고노파(大勇会, 다이유카이)를 잇는 파벌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노 다로 본인 역시 40대 기수론을 펼치며 2006년 자민당 총재선거 당시 입후보를 하려다 파벌의 의향을 존중해 아소 다로를 후보로 밀고 그의 추천인이 된 전력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고려해본다면 아소 다로는 고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
 

일본 자민당은 29일 오후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될 27대 당 총재를 선출했다. 사진은 한 표를 행사하는 고노 행정개혁상. ⓒ 연합뉴스

 
하지만 아소파는 1차는 물론 2차 결선 투표마저 자유투표로 나갔다. 호소다파 96명의 몰표를 얻은 기시다와 그것의 절반정도에 불과한 아소파(53명)의 지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고노 다로의 싸움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아소는 전폭적인 지지를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기 싫어서였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 전 총리만 이야기하지만 지금 자민당 정권의 핵심위치에 서서 아베보다 더 오랜 세월 권력을 누리고 있는 이가 바로 아소 다로이다. 재무상 겸 부총리로 취임한 2012년 12월부터 근 십년간 한 번도 권좌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아소의 안하무인 인터뷰는 이미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고, 상대를 바보 취급하는 무례한 태도와 옹고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온갖 설화를 일으키고 다니는데도 아무도 그를 터치하지 못한다.

그의 재무상 재임은 4기 10여 년에 달한다. 스가 총리는 작년 내각 인선시 '아베노믹스'로 일컬어지는 금융개입 및 일본은행의 적극적 시장참여 정책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정책 연속성을 위해 유임한다고 (아소의) 연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재무성의 촌탁은 이미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의 공문서 위조로 사법적 판단을 받았다. 위조 압력을 이기지 못한 아카기 도시오 전 긴키재무국 직원이 자살했음에도 아소 다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아소의 염려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고노 다로가 총리가 될 경우 아소파는 물론 자민당 자체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올해 만 80세에 10년간 장기집권을 해 온 재무성 대신직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즉 자신이 향유해 온 권력이 송두리째 사라질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고노가 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기시다 총리 시대, 한일관계는?

물론 기시다도 세대교체의 바람에 올라탔다. 그는 니카이 간사장을 겨냥해 "당 3역 임기는 1년, 연임은 3번까지" 하는 걸로 당규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시다는 총재 당선 인사말에서 "내 특징은 듣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게 와서 어드바이스를 해 달라"라고도 말했다. 이 말은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서 정권운영 및 당 방침을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아소가 걱정하는 '독단적'인 고노와 정반대이다.

또한 차기 기시다 내각이 들어서더라도 일거에 전임 정권들과 전혀 다른 형태를 띠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반영됐을 것이다. 아소 개인의 입장에서는 (비록 자기 파벌 소속이긴 하지만) 불확실한 고노보다, 수가 읽히는 기시다가 훨씬 편하며 그가 총리가 되어야만 자신의 권력도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막판에 나름 흥미진진했던 자민당 총재 선거는 언제나처럼 아베와 아소, 두 상왕의 영향력을 재확인하는 것에 그쳤다.
 

17일 오후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당 총재 선거 후보 공동 기자회견에서 4명의 후보가 나란히 서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왼쪽부터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 ⓒ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가 차기 총리가 된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그다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측 외무대신으로 참여해 합의문 타결 후 윤병세 장관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당사자다.

최근 한일관계 악화는 이 위안부 합의 및 파기에서 불거지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기시다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직접 책임자로 참여했던 합의문이 파기된 셈이니 과거 정권보다 더더욱 이 문제해결을 선결조건으로 내걸 가능성도 있다. 한국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으므로 한일관계 정상화는 한일 양쪽 모두 현재 상태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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