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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린 지난해 1월 12일 오후 거리 홈리스들이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린 지난해 1월 12일 오후 거리 홈리스들이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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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홈리스'를 중심에 둔 공약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나 총선에서는 몇 번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때도 지역 개발이나 숙원 사업을 위해 치워져야 할 골칫덩이로 언급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잠자기, 한 끼 식사를 위해 긴 줄로 늘어서기, 공공장소에서 술 마시기...

길을 지날 때나 언론을 통해 만나는 홈리스들의 삶, 이들의 이질성은 줄곧 인격과 개성, 도덕의 차원으로 도약합니다. 하지만 이들 장면은 가난의 깊이, 그들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의 난도를 보여주는 증표들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정치는 홈리스의 문제를 청소 대상이나 곁가지로서가 아니라, 빈곤 철폐를 위한 정책으로 정면에서 다뤄야 합니다.

[제안①] 밥, 얻어먹는 것 말고 존엄한 한 끼

홈리스들이 맨 먼저 체감한 '코로나19'는 전염병 위기가 아닌, 기근을 부르는 급식 대란이었습니다. 한 여성 홈리스는 "코로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거라도 집어먹고 싶다"라고 했을 만큼, 팬데믹 초기부터 홈리스들의 먹는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홈리스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소위 '급식소'라고 불리는 곳, 또는 '노숙인 시설'(한 달에 기본 20일 이용할 수 있는 '일시보호시설', 입소생활시설인 '자활, 재활, 요양시설')로 나눌 수 있습니다. '노숙인 시설'이야 그곳을 이용하거나 입소한 이들만 대상으로 하기에, 많은 홈리스들은 '급식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 '급식소' 다수는 민간에서 운영한 터라, 팬데믹이 시작되자 대부분 급식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공공이 직영하거나 위탁 운영하는 급식소들이 많았다면 이렇게 임의로 급식을 중단하는 일은 없었겠지요. '노숙인복지법'과 '식품위생법'은 홈리스에 대한 급식 지원을 위해 일정한 기준을 갖춘 '집단급식소'를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노숙인 급식 시설' 중 이들 기준에 맞춘 곳은 전국에 단 4곳에 불과합니다. 법이 권고만 할 뿐 벌칙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 4곳도 전부 민간에서 설치·운영하는 곳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설치하거나 운영하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서울시에서 설치한 '시립 따스한채움터'라는 시설조차 '집단급식소'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원봉사단체들이 외부에서 만들어 온 급식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립 따스한채움터에 붙은 안내문. 2020년 9월 3일부터 65세 이상은 급식 제공이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시립 따스한채움터에 붙은 안내문. 2020년 9월 3일부터 65세 이상은 급식 제공이 안 된다고 적혀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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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팬데믹 이후 민간급식소들이 폐쇄돼 이용 인원이 몰리자 노인 이용자를 차단하고, 사진 등 개인정보를 내장한 전자식 회원증 제도를 도입하는 등 문턱을 높이는 역진적 조치까지 취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홈리스들의 먹거리 문제를 가볍게 여길 뿐 정책으로 진지하게 다루지 않기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얻어먹는 밥이 아닌, 권리로 당당하게 차려지는 급식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수십, 수백 명씩 모여 먹는 집단급식소 형태를 넘어 반조리식, 도시락, 지역사회 식당 이용 등 홈리스들의 주거상태에 맞게 급식 형태가 다양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먹는 문제는 생존권적 기본권입니다. 가벼이 다뤄져도 좋을 이유는 결코 없습니다.

[제안②] 병(病),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아플 때 어느 병원 가시나요? 어떤 이는 이사할 집을 선택하는데 병원과의 거리를 고려하기도 하고, 동네 병·의원을 가더라도 평점과 이용자 방문 후기를 꼼꼼히 챙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홈리스들은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정해준 병·의원만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노숙인복지법', '의료급여법 시행규칙'이 '노숙인 등'은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의료기관만을 이용할 수 있게 정했고, 서울시와 자치구가 시립병원을 중심으로 '노숙인 진료시설'을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중한 질병이나 부상을 입었을 때 찾는 대형병원들에 홈리스들은 접근할 수 없습니다.

서울지역에서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민간병원은 단 두 곳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들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공공병원 대부분이 감염병 전담병원이 되면서 홈리스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감염병 전담병상 확보를 위해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을 비롯한 4곳의 공공병원 병상 모두를 소개(疏開)하기로 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현재 서울지역의 거리 홈리스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단 두 곳밖에 없습니다. 이 두 곳 중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시립보라매병원뿐입니다. 홈리스들은 아무리 중한 병에 걸려도, 응급 상황에 처해도, 이들 노숙인 진료시설에서 입원할 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상황은 팬데믹 이후 지속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2020년 11월, 시립동부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자 입원해 있던 홈리스들은 치료 완료 여부를 불문하고 병실을 비워야 했습니다. 응급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후송해도 좋다는 병원의 허락 없이는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노숙인'은 나라에서 정해 준 병원만 가도록 하는 '노숙인 진료시설'이란 제도가 문제입니다. 헌법적 가치인 평등권을 이렇게 대놓고 부정하는 정책이 또 있을까요?

과거 의료급여수급자들은 국가가 지정한 병원만 다니도록 했던 '의료보호 진료기관의 지정제도'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료 이용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이유로 이미 1999년 2월에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노숙인'에게만 '노숙인 진료시설'이란 이름으로 현재까지 존속하는 것입니다. 차별의 제도화라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노숙인 진료시설의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에 따른 홈리스 의료공백 대책을 요구하는 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노숙인 진료시설의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에 따른 홈리스 의료공백 대책을 요구하는 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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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③] 집, 홈리스 정책의 기본값으로

거리 홈리스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의문은 대개 "왜, 시설에 안 들어가세요?"입니다. 그만큼 거리 홈리스를 위한 주거는 '시설'이라는 관점을 우리 사회는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지선진국들의 경험에 따르면, 이런 시설정책은 고비용·저효율임은 물론 반(反) 인권적이란 것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사회 역시 생활 시설 중심의 정책이 홈리스 상태를 끝내지 못하고 시설과 열악한 주거를 반복하는 '회전문 현상'을 만드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들은 이런 시설 생활이 주거로의 이행을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립생활 능력을 오히려 저하시킨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 2021년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활시설 입소자의 31.1%가 20년 이상을 시설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변명을 하더라도 누군가를 20년 이상 시설에서 살게 하는 정책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형제복지원이나 양지마을과 같은 인권유린 사건, 시설 비리와 같은 '사건'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집'에서 살아야지 획일된 규율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시설'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정책의 방향을 지원 받는 이의 인권과 행복을 조금이라도 키우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시설이 아니라 개별 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책의 기본값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홈리스 복지의 역사가 긴 국가들은 '주거 우선'(housing first) 정책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홈리스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데 효과적인데다, 그렇기에 비용효과가 커 정파와 관계없이 선호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무엇보다 집합 형태의 시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노숙인 시설 발 집단 감염, 그리고 요양시설과 교도소 등 시설 내 집단 감염 사태를 통해 최근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적절한 주거가 안전한 주거이고, 주거권과 건강권은 불가분의 관계란 것을 코로나19가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올해 6월이면 '노숙인복지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됩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부·지자체 모두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하는 시기일 듯합니다. 이들 변화 속에 '노숙인복지법'의 변화를 포함하는 것은 어떨까요? 위에 언급한 문제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 이 법률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노숙인복지법'은 시설 중심의 법률인데다, 정책 대상의 참여와 이의신청 권한을 보장하지 않고, 모든 지원 조항을 임의 규정으로 하여 실효성이 없는, 그래서 제정과 동시에 반빈곤 운동 단체들부터 비판과 개정 요구를 받았던 법률입니다. '노숙인복지법'은 시설 중심의 대책, 시설 생활을 장기화시키는 법률이 아닌, 주거 제공을 통해 홈리스 상태를 종결시키는 법률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정책 속에 이런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길 고대합니다.

* 본 글에서는 특정한 법·제도를 언급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리 노숙, 쪽방과 고시원 등 사람이 살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 혹은 그러한 상태를 '홈리스'라고 쓴다. '노숙인복지법'은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에서 사는 사람, 주거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을 '노숙인 등'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밀집지역 쪽방(전국 10개 지역)을 제외하고는 흩어져 있는 쪽방과 고시원, 여관·여인숙, 찜질방, 피시방, 만화방, 패스트푸드점 등 다양한 거처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정책대상에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태 파악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제사회는 '홈리스'라는 용어를 통해 다양한 비적정 주거상태에 처한 이들을 파악하고, 정책대상으로 삼는다. 본 글은 정책대상을 바로 정하고, 주거를 중심으로 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노숙인 등'이 아닌 '홈리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기자 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홈리스행동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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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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