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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8일 감옥에서 석방된 함세웅 신부
 1979년 12월 8일 감옥에서 석방된 함세웅 신부
ⓒ 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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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자들의 못된 작풍의 하나는 양심수들에게 감옥에서 책을 자유롭게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일제유산을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봉함엽서를 이용하여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직계 가족에게 안부 편지만 허용하였다. 그마저 검열을 통해 걸핏하면 '불온'한 내용이라 하여 압류해 소각시켰다. 양심수들에게 집필이 허용되었으면 얼마나 많은 작품이 나왔을까.

사마천은 옥에 갇혔을 때부터 <사기>를 쓰기 시작하고, 볼테르는 왕실에 대한 담시를 썼다는 이유로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라 앙리아드>를 짓고, 존 번연은 왕군에 체포되어 베드 포드 군사형무소에서 <천로역정>을 썼다. 세르반테스도 왕실 감옥에 갇혀 <라반차의 돈키호테>를 쓰기 시작했으며, 마르코 폴로는 포로가 되어 <동방견문록>을 썼다. 오 헨리는 옥중에서 <점잖은 약탈자> 등을, 프랑수와 비용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유언시>를, 오스카 와일드는 투옥되어 <옥중기>를, 리 헌트는 옥중에서 <시인의 축제>를, 자와할랄 네루는 감옥에서 <세계사 편력>을 썼다. 이외에도 '옥중명저'는 수없이 많고 쌓인다.

함세웅은 3년형이 확정되면서 광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동안 정부비판의 행적으로 인한 보복성인지 하필이면 악명높은 광주교도소였다.

광주에선 간첩들 있는 감방에 집어넣더라고요. 거기는 0.8평이야. 완전히 커튼으로 다 막아 놓구 맨 낮에도 전등을 24시간을 켜 놓는 거야. 여기 서울은 밤에만 불 켰는데요. 그것도 10촉 짜리. 아주 껌껌해요. 그리고 옆으로 손이 닿는 거야. 그러니까 서울은 그래도 방이나 커서 요가도 했는데, 거긴 기가 막힌 거예요.

그래도 제가 가니깐 너무 좋아하는 거야. 거기에 한 70명 정도 있었어요. 한 35명은 또 긴급조치, 목사님도 계셨어요. 그때 유인태랑 이런 사람들 그때 다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내가 가니깐 너무 좋아하는 거야. 신부가 왔다고. 여러 곳에 연락을 다 했잖아 우리끼리. (주석 10)

흔히 감옥을 '인생대학' 또는 '국립대학'이라 불린다. 새삼 인생을 돌이켜보는 장소이고, 국가에서 공짜로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제가 위가 좀 나빠요. 그래서 밥을 잘 못 먹어요. 그 밥이 1등급 2등급 3등급 4등급이 있는데, 우리는 4등급이에요. 1등급은 크고 4등급이 제일 작은 밥이에요. 4등급엔 콩이 많았어요. 저는 반 밖에 못 먹었어요. 그런데 재판 받을 때 이문영 교수님이 쿡 찌르시면서 "신부님, 우리가 밖에서 너무 잘 먹었죠?" 하시는 거예요.

밥 한 그릇에 그냥 국 한 그릇, 짠지 하나, 그냥 마늘종 같은 거를 주는 거예요. 그것을 또 너무 많이 줘요. 그런데 소금 범벅을 해 가지고, 한 두 쪽이면 밥을 다 먹었을 정도였어요. 짠 간장에다 넣은 건데 얼마나 짜요. 정말 못 먹겠어요. 첫 날에는 모래알 같지 뭐. 그게 전혀 안 먹혀요. 그런데 한 일주일 지나니깐 그 밥이 맛이 있는 거예요. (주석 11)

예로부터 감옥은 강한 자는 더욱 강하게 만들고 약한 자는 더욱 약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함세웅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묵상과 기도로서 일상을 보내었다. 그리고 공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광주에 비해 비교적 넓은 감방이었다.  

영성적으로 감옥은 제가 정화되는 곳이라고 느꼈어요. 감옥은 수련소, 또 제2의 신학교라 여기면서 감옥의 영성이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감옥에서는 유신이나 박정희에 대한 것보다는 하느님과 저라는 단독자의 관계 속에서, 또 고통 받는 학생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부분을 깊이 성찰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창세기서 37장 이후에 나오는 요셉이야기,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또 팔려가서 남의 집 종살이 했다가 감옥에 갇혔던 요셉 성조(聖祖) 이야기. 그 다음에 신약성서에 나오는 베드로, 바오로, 요한, 실라…이들이 감옥에 갇히잖아요. 감옥에서 읽으니까 '감옥'이란 글자가 커다랗게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순교자의 길도 감동적이고, 그 다음에 동방교회, 러시아 정교회와 그리스 정교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또 기억나는 게 포로수용소에 갇힌 어느 사제의 체험기인데 예수님의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죠. 자기도 밖에 있을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죄수복을 입고 죄수번호를 달고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2천 년 전 예수님이 이런 분이셨구나. 이때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는 거예요. (주석 12)


주석
10> <함세웅ㆍ권호경 감옥의 자유>, 52쪽, 바이블리더스, 2012. 
11> 앞의 책, 44~45쪽.
12> <함세웅 신부의 시대증언>, 162~16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함세웅, #함세웅신부, #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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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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