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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일 오후 5시 13분]
 
지난 4월 25일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고등학생 이하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검증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4월 25일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고등학생 이하 미성년 공저자 연구물 검증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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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교육부는 그동안 진행한 미성년자 연구물 실태에 대한 조사 및 처분 결과를 발표했다. 많은 언론이 해당 결과를 보도했지만 단순 내용을 전달할 뿐, 과연 그 발표가 그동안 국민들이 기울여온 관심에 부응했는지 평가를 담은 보도는 보기 어렵다.

새 정부 내각 후보자 자녀들 입시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수 조사 요구가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 교육부가 미성년 논문에 대해 실시한 전수 조사가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지 평가가 필요하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써 본다.

상식에 배치되는 결과

교육부는 미성년 저자 연구물 총 1033건을 확인했는데 이 중 부정 연구물은 96건에 불과하다고 했다. 중고생이 저자로 참여한 논문의 91%에 달하는 937편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분 결과도 마찬가지다. 부정 판정한 논문 96건의 미성년 저자 82명 가운데 72명이 해외 대학 입학 등을 이유로 제외되고 10명만 처분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입시에 영향이 미미했다'라거나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5명이 또 제외되었다.

결국 몇 년에 걸친 교육부의 전수 조사 결과 우리나라에서 '부모 찬스'가 의심되는 연구물이 1033건인데 고작 5명만 입학 취소되었고 나머지 99.5%의 저자는 아무 문제 없이 학적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로 과연 '학벌 세습'이나 '부모 찬스'의 불공정이 해소될 수 있을까.
 
교육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연구부정 판정 논문 대입활용 사례에 대한 조치내역'. 몇 년에 걸친 교육부 전수 조사 결과 '부모 찬스'가 의심되는 연구물이 1033건인데 5명만 입학 취소되었다.
 교육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연구부정 판정 논문 대입활용 사례에 대한 조치내역". 몇 년에 걸친 교육부 전수 조사 결과 "부모 찬스"가 의심되는 연구물이 1033건인데 5명만 입학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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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취소를 당한 5명을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 2명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와 진실탐사그룹 <셜록> 보도로 알려진 서울대 교수의 딸로 보인다.

전북대 2명은 아들과 딸을 5편의 논문 저자로 올려 언론 보도로 화제가 되었던 전북대 교수의 자녀들로 보인다. 강원대 1명 역시 아들을 논문 저자로 올리고 청탁을 통해 강원대 수의대에 편입시켜 언론에 크게 보도된 서울대 교수의 아들이 분명하다.

결국 몇 년에 걸친 교육부 전수 조사는 2019년 이후 언론에 주목을 받았던 인물들만 입학 취소했을 뿐 추가 적발하여 처벌한 인물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과연 이들 외에는 부정 논문을 쓰고 국내 대학 입시에 활용한 학생을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 4월 13일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정 논문을 쓰고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 9명 중 6명이 논문을 입시 때 제출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이게 확인된 사실이라면 이들 6명은 이번 교육부 발표 입학 취소자에 포함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보도자료에 서울대의 입학 취소자는 한 명도 없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대 한 곳만 해도 누락자가 이 정도다. 대입에 논문 활용을 폐지한 이후로도 논문을 특기자 전형에 포함시켰던 카이스트 등에서 아예 부정 연구물이 한 건도 없는 것 역시 조사의 신빙성을 의심케 한다.

교육부는 "엄정한 연구윤리 확립 및 대입 공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이 실시됨"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정작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빈약한 조사와 조치 결과인 것이다.

허망한 결과가 나온 이유

이런 결과가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교육부가 조사를 각 대학에 자체적으로 맡겼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교육부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었을 뿐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조사하도록 하고 게다가 처분까지도 대학에 맡겼다. 그 뒤 결과만 수합하여 발표했는데, 이런 시스템에서는 대학이 요령을 피울 여지가 너무 많다.

가령 "교수 본인이 협조적이지 않으면 학교로서는 미성년자가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지를 밝히기가 쉽지 않"게 되고 대학이 교육부에 허위 보고를 하는 경우도 막을 길 없다. 과거 전북대에서는 "교수 20명이 논문 25건에 자녀 등 미성년자를 공저로 올리고 이 사실을 세 차례나 허위 보고하거나 묵살한" 사례가 있다.

또한 처분까지 대학에 맡겼을 때 이를 따르지 않는 대학에 가하는 페널티도 보이지 않는다. 부정 논문을 입학에 사용한 사례가 다수 보도되었지만 서울대가 한 명도 입학 취소하지 않은 점이 이를 방증한다.

교육부 2차 검증의 실효성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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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2차 검증을 통해 대학의 조사 내용을 엄격하게 검증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의문이다. 보도자료에는 교육부의 2차 검증이 대학의 부실 판정을 얼마나 밝혀냈고 정정했는지, 교육부 자문단의 검증 실적이 얼마나 있었는지의 통계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3년 전인 2019년 5월 교육부는 이 내용을 발표 자료에 포함했었다. 당시 각 대학은 자녀 저자 논문 139건 중 127건이 '연구 부정 없음'이라고 보고했었는데, 이때 교육부는 2차 검증을 통해 무려 85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재조사 요청'을 했노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후 85건의 재조사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고 이번 발표에서는 아예 교육부 자문단의 2차 검증의 성과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1033편 중 부정 연구물 96건을 가려냈다"는 발표가 얼마나 엄정한 2차 검증을 통해 확보된 결과인지는 신뢰하기 어렵다. 수년에 걸친 전수 조사였지만 성과도 초라하고 검증의 신뢰성을 담보할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 2차 검증단의 실체도 모호하다. 2019년 당시에는 "교육부 자문단"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연구비를 지원한 14개 소관 정부부처 또는 연구윤리자문위원회를 포함한 전문가"로 나온다. 교육부 2차 검증단은 명칭도 소속도 불분명한 것이다. 과연 조직적으로 통제되고 있는지, 검증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기준의 일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어떤 것도 파악되지 않는다.

자료로서의 가치

더 우려되는 점은 이번에 보도된 자료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모 찬스와 끼워넣기 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기본 자료로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실태 이해에 필수적인 정보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는 937건을 제외한 채 부정 판정 논문 96건에 대해서만 기본적인 정보를 나열하고 있다. 해당 교수 및 학생 10명에 대한 조치 결과 등이다. 그러나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특권층의 부모 찬스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하려면 나머지 937건을 포함한 전체 미성년 연구물 1033건에 대한 분석 데이터가 제공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정보는 기본이다. 첫째, 모든 미성년 논문의 연구물별 교원 수, 미성년 저자 수, 복수의 미성년 저자 사례 수, 교수 1인당 미성년 자녀 저자 등재 횟수 등이 제공되어야 한다.

둘째, 비자녀의 경우에는 지도 교수와 미성년 저자의 관계 정보가 통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의 부모와 지도 교수가 같은 학과나 학회 소속인 경우, 친인척 관계인 경우, 기타 관계에 따른 정보가 제시되어야 한다.

셋째, 대학별 미성년 저자의 입학 통계 정보가 필요하다. 예컨대 지방대 교수가 본인 학교에서 자녀를 저자로 논문을 발표했더라도 그 자녀는 서울대나 연세대 등에 진학했을 수 있는데, 이렇게 대학별 미성년 저자들이 논문을 활용하여 입학한 통계가 제시되어야 그런 논문이 어떠한 학벌의 사다리에 이용되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넷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며 필수적으로 포함되었어야 할 정보는 미성년 저자의 연구 참여 경로다. 가령 고교-대학 연계프로그램으로 참여한 연구물과 개인적 친분으로 작성된 연구물이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정상적인 교과 활동인 반면 후자는 부모 찬스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참여 경로가 구분되지 않은 자료로는 우리 사회의 진짜 부모 찬스의 실태를 파악할 수 없다. 조민씨와 같이 학교 프로그램을 따라 작성한 미성년 저자 논문도 부모 찬스로 비난받게 되고, 반면 진짜 부모 찬스로 쓴 허위 논문이 '부정 아님'으로 면죄부를 얻는다. 교육부 자료로는 연구물에 대해 단순히 대학이 '부정' 여부를 판정한 결과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조사도 처벌도 실패했다

교육부 입장에서는 전수 조사 과정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번 전수 조사 결과가 긴 시간에 걸쳐 요란하게 진행된 것에 비하면 정확한 실태 자료를 제공하지도 못했고 엄정한 처벌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확한 실태 파악에 실패한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대학에 조사를 위임하는 방식, 그리고 그에 대한 엄정한 교육부의 2차 검증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들이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과연 조사 단계가 제대로 설계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조사는 1단계에서 각 대학으로 하여금 '부정 아님' 판단한 논문을 제외하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에 이들 91%의 논문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미성년 저자 논문의 유형과 발생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 초기에 봉쇄되었다. 만일 연구물의 '부정' 여부를 일차 판단하지 말고 먼저 고교-대학 연계 유형과 개인적으로 진행한 유형을 구별한 뒤 후자에 대해서는 '부정 여부'와 상관없이 정밀 조사를 진행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다. 

처분에서도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 '부정' 판정 연구물을 처분하는 전제 조건으로 "입시에 활용한 것이 확인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에 미성년 저자 연구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해외 대학 진학자들은 빠져나갔고, 전체 1033건 중 0.5%의 인원, 그것도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경우만 처벌받고 말았다.

해외 대학 진학자에 대한 조치는 과연 '입시 활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2019년 5월에 교육부는 이에 대해 훨씬 더 적극적인 조치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해외 대학에 진학한 학생에 대해서는 외국 대학에 논문 부정 사실을 통보'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논문의 부정 여부는 국내 각 대학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해외 대학에 통보함으로써 추가적인 처분이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번 자료를 보면 그 결과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과연 그때 이후 교육부가 몇 건에 대해 외국 대학에 통보했는지, 통보받은 외국 대학들은 어떤 처분 결과를 알려왔는지 내용이 없다.

부정 논문 입학자에 대한 처분을 대학에 맡겼으면서도, 정작 해당 대학이 엄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페널티가 무엇인지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대가 부정 논문을 활용한 합격 사례에 한 명도 처벌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수 조사는 부작용이 크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교육부가 발표한 내용대로면 전수 조사는 안 하는 것보다 오히려 해악이 커 보인다. 

부모 찬스였더라도 부정 판정 받지 않은 대다수 미성년 저자들은 법적 도덕적 비난을 모두 피하게 되었고, 부정 논문 판정을 받았지만 처벌을 면한 75명 역시 '입시에 영향이 미미했다', '검찰이 혐의 없다고 했다'는 등의 변명 거리로 당당할 명분이 생겼다. 이들은 '재수 없이' 입학 취소를 받은 5명과 자신을 구분하며 살 것이다.

자녀를 해외 대학에 진학시킬 특권층은 더 마음 편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식을 끼워넣기 하더라도 대학의 자체 조사만 통과하면 된다. 친분과 인맥으로 얽힌 대학의 구조에서 이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설사 부정 논문으로 판명 나더라도 아버지는 해당 대학에서 주의나 구두 경고 정도의 가벼운 처분을 받고 자식이 해외 진학에 성공하면 걱정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이들은 안전하게 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소득 전문직으로 안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의대 편입학 입시 등에 대한 전수 조사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번 조사를 통해 어떤 식의 전수 조사는 특권층에 면죄부만 제공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데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다.

언론의 역할이 크다. 언론사들은 교육부의 전수 조사 결과를 그대로 중계하듯 발표했을 뿐, 이런 전수 조사가 효용이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다루지는 않았다. 또한 과거 교육부 발표와 비교하여 빠진 부분을 질문했어야 하고 그런 평가에 기초해서 제대로 된 조사의 길을 열었어야 한다.

언론사나 교육관계자, 혹은 정치인 누구라도 이번 전수 조사를 평가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가 '입시 공정'을 지금처럼 선정적으로 소비한다면 내일의 우리는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태그:#교육부, #미성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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