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내부가 공사 중이라 파헤쳐 놓은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한참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보살 한 분이 오셔서 점심 공양을 하라고 하신다. 보살이란 여성 불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스케치는 잠시 접고 다른 보살님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했다. 비빔밥에 찬으로 전을 주셨는데 맛있게 먹었다. 내 앞으로 나이가 아주 많으신 보살 한 분이 앉으셨다.
"보살님, 여기 두꺼비 바위가 있어 사람들이 기도처로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떤 기도가 잘 먹혀요?"
"응, 내가 아는 분이 딸을 여의지 못해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서 기도를 하고 박씨를 만난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딸이 박 씨랑 결혼했어."
딸을 시집보내는 기도가 잘 먹힌다고 하니 나도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그 보살님이 옆에서 공양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보살님들 몇 분에게 농을 던진다.
아니 이 보살님들은 기도할 때는 안보이더니 공양할 때 되니까 나타나시네.
그때 주지 스님이 나타나서 한 마디 하신다.
"이분들 아침에 나랑 108배하고 요 앞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지금 공양하러 오신 거예요."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안양암을 그렸다. 보통 절은 산의 정상 부근에 있으면서 아래로 민가를 내려보고 있는데 안양암은 반대로 산꼭대기에는 민가가 있고 절이 그 아래 있다. 절이 민가를 업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라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내 그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말씀을 나누던 주지스님과 이사장님도 외출을 하셨고 보살님들도 퇴근을 하셨다. 나 혼자서 주인 없는 절에 남아 스케치를 마쳤다.
스케치를 마치고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마치 창신동에 스케쳐들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올라가는 골목마다 스케쳐들을 만났다. 여러 번 만난 스케쳐는 여러 번 만나서 반갑고, 처음 본 스케쳐는 처음 봐서 좋다.
카페 낙타 옥상에 올라가서 아래 전경을 색연필로 그렸다. 그런데 아뿔싸 옆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 초록색 색연필을 아래도 떨어뜨리고 말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오늘 그림은 한 장만 내야겠다.
그림을 마치고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카페 낙타에 올라가서 각자 자기 그림을 전시하는 이벤트를 했다. 작은 카페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자신의 그림을 디스플레이하고 다른 사람의 그림도 감상하느라고 야단법석이다.
같은 광경을 보고 그려도 그림은 다 다르다. 그래서 그림이 좋다. 간단치 않은 이벤트를 준비한 운영진도 대단하다. 디자인도 훌륭하고 진행도 잘 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사에 참여한 모두가 행복해한다. 전시장에 방명록이 있어서 이렇게 썼다.
"We Draw Together! 함께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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