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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딸애가 회사 초년병 시절에 월급을 타면 친구들과 디저트 카페라는 곳에 가서 맛있는 디저트 음식을 사먹는 것을 보고 조금 비웃었던 적이 있다. 맛있기야 하겠지만 그걸 그리 비싼 돈을 주고 사먹나 하면서, 그런 걸 요즘 젊은 여자 애들의 허영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손수 만든 마카롱.
 아내가 손수 만든 마카롱.
ⓒ 양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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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 또래 아저씨들도 맛있는 걸 찾아다니며 거기다 돈을 쓰니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젊은이들 관점에서는 우리들의 음식 취향이 이상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음식이라는 건 각자 취향의 문제인데 나 같은 늙은 아저씨들이 젊은 여자애들이 그런 디저트 음식을 즐기는 것을 비난하는 데는, 여성의 취향을 열등한 것으로 보는 남성 중심의 시선이 개입돼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입센의 <인형의 집>(1879년) 1막은 여주인공 노라가 크리스마스 쇼핑을 끝내고 귀가하는 데서 시작된다. 집에 와서는 남편 몰래 주머니에서 마카롱이 든 봉투를 꺼내 몇 개를 먹는다.

남편은 노라를 '종달새'니 '다람쥐'니 부르며 귀여워 하면서도, 한편으론 밖에서 돈이나 쓰고 다니는 '낭비군'이라고 비웃는다. 노라를 군것질쟁이라고 하면서 그날도 역시 "시내를 뜯어먹고 다니지는 않았겠지?"라고 비난조로 놀린다.

남편은 "오늘 정말로 과자 가게에 안 들렀냐?"느니, "마카롱을 한두 개 사먹지도 않고?"라고 따져 묻는다. 이런 남편의 모습에서 여인네들은 마카롱이나 사먹고 다니며 남자에게 의존하는 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간주하는 남성 중심적 태도를 유추해보게 된다.

과거 노라는 병석에 있는 남편 모르게 그의 생명을 구하고자 친정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돈을 변통하고, 이 돈을 갚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 절약하여 돈을 모은다. 남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비밀리에 했던 이러한 노라의 행동은 나중 남편에게 발각된다.

남편은 이 과정에서 빚어진 노라의 실책으로 자신의 지위 또는 명예가 손상되자 노라를 책망한다. 심지어 그녀를 자식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는 엄마라고까지 비난한다. 문제가 해결 되면서 남편은 비록 노라를 용서하나 이를 계기로 노라를 더욱 구속하려 든다.

노라는 결국 "당신들(노라의 아버지와 남편)은 실제로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  단지 "당신들은 나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을 뿐이죠"라고 외치며 남편의 '인형'이 되어 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노라는 허위와 위선뿐인 집을 떠난다.

3.
나혜석이 근대 초기 1세대 여성작가라면 백신애는 1930년대 등장한 2세대 여성작가다. 나혜석이 주로 신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2세대 여성작가 즉 백신애, 강경애, 박화성 등은 사회주의 관점에서 가난한 계급의 여성을 소설의 주요한 등장인물로 삼았다.

백신애는 경상도 영천지방 부호의 딸이었지만,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오빠의 영향으로 일찍이 그쪽에 눈을 떴던 것 같다. 사회주의 여성단체에서 활동도 했고 구체적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 불법 잠입했다가 고초를 겪기도 한다.

한때 일본에 가서 연극을 공부하며 배우를 지망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귀국하여 당시로서는 만혼인 25세의 나이에 은행 지배인 역의 일을 하는 이와 대구 공회당에서 신식 결혼을 치른다. 결혼 이후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지만 31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친다.

그녀가 남긴 글 중에 '슈크림'(1935년)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수필이 있다. 당시 <삼천리> 잡지에서는 백신애를 포함해 이광수의 처 허영숙, 무용가 최승희, 여성작가 장덕조 등에게 신혼여행을 주제로 한 수필을 청탁했나 보다. 백신애의 '슈크림'은 그 중 하나다.

백신애는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신혼 여행기를 쓰지는 않았다. 그녀가 여행을 간 곳은 일본을 대표하는 닛코(日光) 관광지다. 눈 내린 천길만길 골짜기를 자동차로 오르며 내려다보는 호수와 정상의 폭포는 무척 환상적이라 당시 그곳서 정사(情死)를 감행하는 이들도 있었나 보다.

그러나 백신애는 풍광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고 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슈크림을 먹기는커녕 보기도 싫어졌다는 다소 엉뚱한 얘기를 한다.

닛코 역에 도착한 부부는 끽다점(커피숍)을 갔는데 백신애가 슈크림을 주문했나 보다. 남편이 "그것이 무슨 맛이 있어?" 하고 묻는 걸, 백신애가 "나는 퍽 즐겨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그날 밤 남편은 호텔에 없다는 슈크림을 일부러 사람을 시켜 릿쿄 역까지 가서 한 상자를 사오게 했다. 그리고선 "자- 실컷 먹으시오. 일부러 당신을 위해 먼 데서 사온 것이니" 하고 권했다. 

정성을 생각해 몇 개를 먹고자 했는데 체면 차리지 말고 먹으라고 자꾸 권하는 바람에 한 자리서 열 개를 계속 집어 넣었더니 지금도 슈크림 하면 머리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 싸울 때 "무턱대고 먹으라고만 권하는 것은 야만적이아요"라는 말을 늘 들먹였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슈크림이라는 것이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커피와 더불어 한 개를 먹을까 말까 해야 맛도 있는 것이지, 한 상자를 시켜 놓고 밥을 먹듯이 배불리 먹으라고 하면 좀 곤란할 듯 싶다. 백신애의 남편이 센스가 없는 건지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백신애는 자신의 어느 소설 작품에서 "나의 결혼은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지는, 하늘을 향해 돌멩이를 던진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그 자세한 내막을 얘기할 수는 없고 백신애는 이후 별거인지 이혼인지를 하고 얼마 안 있어 병으로 사망했다.

태그:#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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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재한 피사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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