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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과 연초 국내 영화계에서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 있다. 칸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 출품 마감일을 앞두고 앞다투어 그에게 자막 번역 의뢰가 가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열린 제 75회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두 편의 한국영화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과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또한 그의 손과 머리를 거쳤다.

28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달시 파켓은 그렇게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12월 초부터 1월 말까지, 이번 겨울에만 7편을 작업했다"라며 "사실 지난 주말에도 작업이 몰려 답 문자를 빨리 드리지 못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지금 어떤 영화를 맡고 있는지 살짝 물으니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 <기생충>을 비롯해, 올해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 남우주연상을 받은 <브로커>의 숨은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형 상업 영화만 하는 건 아니다. 박석영 감독의 <스틸플라워> 같은 독립영화, 나아가 독립, 저예산영화 축제인 들꽃영화상을 만들어 8년째 운영할 정도로 한국영화 애정도가 깊다.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을 번역한 달시 파켓.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을 번역한 달시 파켓.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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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거장의 영화, 이렇게 작업했다

이미지와 은유적 대사가 특징인 박찬욱 감독과 서사적 대사와 절제된 화면이 장기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대하는 그의 방식은 어땠을까. "일단 박찬욱 감독님 작품 대사는 문장 구조가 재밌고, 의미 전달이 좀 어색해져도 말맛을 살리는 게 중요했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경우엔 대사의 톤이 중요했다"라며 그가 설명했다.

"(송서래를 연기한) 탕웨이 대사를 번역할 때 재밌었다. 한국어가 서툰 중국 여성이라는 설정이라 문법적으로 조금 다른, 특이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대사 안에 담긴 감정을 살리면서도 너무 과장하면 안됐다. 의미 전달과 감정 전달도 중요하지만, 감정적 선을 넘지 않아야 했다.

작업 방식도 달랐다. <헤어질 결심>은 세 번 정도 돌려 보고 초고를 만들어 보냈고, 박찬욱 감독님과 두 번 정도 만나서 수정 작업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제가 마지막에 혼자 다시 확인했다. <브로커>는 CJ ENM 내부에 한국어, 영어, 일어를 잘하는 분이 있어서 그분을 통해 감독님과 소통했다. 메일을 주고받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그때마다 매우 자세하게 의견을 주셨다."


<기생충> 때 외국 관객에겐 생소한 '짜파구리'를 '램동'(ram-don, ramen + udon)으로 번역해 이해도를 높인 건 유명한 일화다. <헤어질 결심>에서도 우리에겐 익숙한 말장난을 나름 국제화한 사례가 있었다.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걸 강조하려는 극중 박해일의 대사인 "원전 완전 안전!"을 두고 "Clearly clean nuclear"라고 번역했다. 사실 좀 어색한 문장이긴 한데 한국말 대사의 느낌을 전하는 게 더 중요했다.

"한국 콘텐츠 많아졌지만, 전문 번역가 인력은 여전히 부족"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을 번역한 달시 파켓.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작인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을 번역한 달시 파켓.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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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달시 파켓은 구글 기반 검색 방법 등 몇 가지 노하우를 귀띔했다. 대사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보다는 뒤에 부가 설명이 있는지에 따라 앞말을 축약하기도 하고, 감독이 전하고 싶어하는 이미지에 맞는 단어를 선택하기도 한다.

"자막 번역이 특별한 건 텍스트만이 아닌 이미지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배우의 연기와도 자막이 어울려야 한다. 같은 대사라도 송강호가 연기할 때와 또다른 배우가 할 때랑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다. 또 앞부분에 나온 대사가 뒤에 똑같이 나온다 해도 다른 번역이 나올 때가 있다."

달시 파켓은 이런 노하우를 학생 및 후진들에 적극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문학번역원 산하 번역 아카데미 커리큘럼 중 하나인 문화콘텐츠 번역실무 고급과정 강사로 나서고 있다. 번역 아카데미는 양질의 번역가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실무 교육 및 실제 작업 기회를 수강생들에게 마련해 실비 지급을 하는 등 지원 폭을 넓히고 있다.

"갈수록 한국 영상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지도가 오르며 번역가도 그만큼 더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자막 번역은 제한된 화면에서 보이는 것이기에 짧게 압축하는 능력도 필요하고, 앞뒤 맥락을 보는 눈도 있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강의를 맡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제가 가르치기보다는 작품을 함께 번역해보고 서로 비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자신감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번역에 정답은 없으니 말이다.

실제로 제가 한 것보다 나은 학생 번역도 꽤 된다(웃음). 저도 배우는 게 많다. 제가 하는 방식을 따라하기 보단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해당 작품의 감독님을 초대해 같이 얘기하는 기회도 갖고 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 쓰면서 고민한 것들, 반대로 감독님 입장에서도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잘하는 학생에겐 실제로 독립영화 등의 번역을 맡기 맡기기도 한다. <싸나희 순정>이라는 작품도 그런 경우였다."


지난해 그는 수강생 3명과 함께 자막 번역 전문회사를 만들었다. 'Subtxt'라는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물씬 풍긴다. 특정 대표 1인 체제가 아니라 4명이 설립 파트너라는 직책으로 작업물을 나누는 방식이라고 한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이 아니라 대표라는 직함이 어색하다"라며 그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영화 평론가이자, 국내 독립영화들의 축제인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 그리고 번역가. 여러 직함을 가진 그는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어 보였다. 스스로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소개하던 달시 파켓은 열악한 번역 환경의 개선, 특히 한국 독립영화의 좋은 번역이라는 자신의 방향성을 설파했다.

"국내 여러 영화제, OTT 플랫폼에 나오는 작품 중 작품 자체는 좋은데 번역이 좋지 않은 경우를 보면 많이 아쉽다. 넷플릭스나 애플 TV 등에서도 번역가를 자주 쓰고, 독립영화계에서도 알음알음 맡기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 몇 년 공부한 혹은 영어를 잘하지만 자막 번역 경험이 없는 사람을 쓰는 경우가 있더라. 비용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작품이 번역 문제로 해외에 소개되지 못하는 상황도 있어서 안타깝다.

그나마 OTT보단 영화계 쪽 시스템이 나은 건 맞다. 번역가에게 외주를 주는 게 아닌 직접 계약하곤 하니까. 소통도 직접 하고. 하지만 여전히 자막 번역을 따질 때 얼마나 빠르게 작업할 수 있고 얼마나 저렴한지만 보는 일이 많다.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만큼 질이 떨어지기 쉽다. 이젠 한국 콘텐츠의 높아진 위상만큼 좋은 번역 시스템을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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