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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4년 11월 11일의 전주로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나는  좋은 숙소에서  편안히 푹 자고 다음날 즉 11일 아침 8시에 일어났는데 곧 선비 한 명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과묵하고 정중한 그 남자는 전주 개명 사상가의 사위였습니다. 어제 내가 인편에 그의 장인 어른에게 내 명함을 보내 경의를 표시한 바 있었지요. 나는 곧바로 사위와 함께 어르신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을 만난 것은 난생 처음이라 하였습니다. 매우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전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음식이었지요. 아침 9시에 토종 꿀, 밤,  감이 들어왔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엄청난 밥상이 들어 왔습니디. 물론 감사가 특별히 보낸 것이었습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음식을 바라보았습니다. 헤아려 보니 무려 17가지였습니다. 나는 원형 밥상과 거기에 놓인 음식을 스케치한 다음식 하나 하나에 번호를 매겨 그 내용을 기록해 두었지요. 여기 소개합니다. 

1. rice & beans(콩이 섞인 쌀밥)
2. egg, beef & radish soup(계란, 쇠고기, 무을 넣어 끓인 국)
3. broiled thick chicken(통닭구이)
4. 3 salt flat pork(돼지 편육 3 점)
5. slices of cold beef( 쇠고기 편육)
6. Kimchi(김치)
7. radish Kimchi & red pepper(고추가루로 버무린 무김치)
8. slices of beef in egg wash(계란반죽을 입힌 쇠고기 육전)
9. bean sprouts-cold & sour(새콤한 콩나물)
10. salt clams & oysters(조개젓과 굴젓)
11. a duck soup-radish(무를 넣은 오리탕)
12. a soft lark of eggs, radish soup(계란과 무를 넣은 새끼꿩 탕)
13. cold beef -sliced & fried in oil(기름에 튀겨서 식힌 쇠고기 육포)
14. poached eggs(수란)
15. fish raw-salt & cold(염장 생선)
16. soy(간장)
17. vinegar(식초)
   
여기에다 별도로 청주 한 병과 술잔이 소반 위에 얹어 나왔구요. 나는 이 많은 음식을 맛보고 기록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 일을 다 마친 뒤 11시에 양묵과 함께 사진  촬영 도구를 들고 숙소를 나와 전주 감영으로 향했습니다. 감영에 이르러 나는 다시 한번 건물의 웅장한 자태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붉은 천으로 덮인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는 대기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앉아서 조금 기다리자 허공을 찢는 듯한 외침이 길게 울리더군요. 감사가 납신다는 소리였습니다. 감사는 온 몸에 비단 옷을 걸쳤더군요. 옷은 위에서 아래까지 녹색, 연보라, 홍색, 오렌지 색, 청색의 무늬가 춤촘히 수놓여 있었습니다. 다른 벼슬아치들의 의상도 큰 차이가 없었구요.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감사와 나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세 통의 여송연을 선물로 건네자 감사는 몹시 신기한 표정을 짓더군요. 우리는 곧 중국과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는 중불 전쟁의 전모에 대하여 내게 물었고 나는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한.중.일의 관계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감사는 화제를 바꾸어 오래된 황색 종이 한 장을 꺼내보이더군요. 그 종이는  50년 전에 전라도의 어느 깊은 산속 동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출생과 전주 감사가 될 운명이 적혀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도 이런 신기한 일이 일어나느냐고 묻더군요.  한편 그는 일본 고깃배들이 제주 바다에서 불법어로를 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조정에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데 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이야기가 한참 이어졌는데 갑자기 대청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리면서 여섯 명의 장정이 툇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악단이었습니다. 뒤이어 화려하게 차려 입은 중년 여성들이 들어오더군요. 그들의 머리위에는 엄청 큰 가체가 얹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한 짝의 나무패를 손뼉을 치듯이 두드리자 화려하게 치장을 한 네 명의 소녀들이 줄을 지어 오른쪽으로부터 서서히 이동해 오더군요. 머리에는 10인치 높이에 너비가 18인치 이상되는 가체를 얹었는데 그 무게 때문에 소녀들은 고개를 곧게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두 소녀는 초록 치마를 입었고 다른 한 명은 검정 치마를, 또 다른 한 명은 연청색 치마를 입었더군요. 치마는 길이가 길고 통이 컸으며 밑단은 바닥에 끌렸습니다. 치마단을 팔 아래에까지 올려 몸통을 조여맸더군요. 치마 위로는 노란색 실크 겉옷을 둘렀는데 앞 쪽에는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옷 소매는 넓은데 홍, 청, 녹,황, 백색의 줄무늬가 수놓여 있었습니다.

소녀들은 붉은 색의 두꺼운 띠를 둘렀는데 이 띠를 길게 늘어진 나비 매듭으로 묶어서 몸 뒤로 돌려 놓았더군요. 소녀들은 열 여섯살이나 열 일곱살도 채 안 되어 보였습니다.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악대가 기이한 음악을 시작하자 곧게 팔을 뻗어 춤사위가 펼쳐졌습니다. 느릿느릿, 미끄그러지듯 돌아가는 동작이었습니다.

마루 중앙에는 큰 북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북은 황, 청, 백색 줄 무늬의 비단 띠로 장식되어 있더군요. 그 주변에서 무희들이 춤을 춥니다. 무희들은 한 줄로 움직이는가 하면 짝을 이루어 마주 보기도 하고 등을 맞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네모 꼴을 이루기도 합니다.

마루 위에 붉은 술이 달린 네 짝의 북채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얼마 후 소녀들이 줄을 이루어 북채 쪽으로 천천히 다가와 그 앞에 섭니다. 느릿느릿 손을 틀더니 북채를 집어 듭니다. 그러고 나서 북에 접근하여 느린 동작으로 주변을 도는가 싶더니 이윽고 함께 북을 치기 시작합니다. 춤 사위는 반 시간 남짓 지속되었지요.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바라보이는 광경은 세상에 둘도 없이 동양적이고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현란한 차림의 소녀 무희들, 높은 누대, 용, 호랑이, 붉은 기둥들, 창과 무기류, 큰 북, 알록달록한 의복에 어수선한 무리, 초록색 옷차림으로 문가에 도열해 있는 소년들.

이 모든 것들이 어루러진 장면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게다가 나의 존재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검은 구렛나루 수염을 하고 눈동자가 형형한 감사 곁에 외계인 같은 한 이방인이 동석하고 있고 그 주위에 화려한 의상을 착용한 무리들이 둘러 싸고 있는 모습이라니...

태그:#조지 포크, #전주, #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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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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