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축구는 팀 스포츠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 '손흥민, 김민재' 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는 단연 돋보였지만 상대적으로 생긴 구멍은 예상보다 컸다.

'포 백' 네 명의 수비수는 숫자에 그쳤고 특히 측면 수비 '풀백'이 내준 공간은 뼈아픈 실점의 빌미가 됐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최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 카타르 월드컵이 58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벤투호의 수비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게임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23일(금) 오후 8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코스타리카 축구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2-2로 비기며 월드컵 본선 불안감을 드러냈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2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 대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공격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2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 대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공격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슛 기록 21:6' 실속도 못 챙긴 한국 축구

비교적 쌀쌀한 가을 밤기운을 뚫고 찾아온 3만7581명 대관중들은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상대 팀들을 떠올릴 틈이 없었다. 지지 않은 것이 다행인 게임이라는 평가를 부인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전 상대 팀 코스타리카는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통과해 막차를 타고 카타르에 도착하게 된 팀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선수들에게는 보약을 안겨주고 떠난 셈이다. 우리 축구팬들이 김민재라는 유능한 센터백에 취해 있을 때에도 수비 구멍이 어디에 생길 수 있는가를 가르쳐준 것이다.

벤투호는 게임 시작 후 28분만에 먼저 골을 넣고 웃었다. 오른쪽 풀백 윤종규의 과감한 측면 공격 가담과 날카로운 패스로 황희찬의 깔끔한 왼발 슛을 이끌어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7분 뒤에 우리 수비 라인의 구멍이 크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오른쪽 측면 공격이 빛나며 동점골이 들어갔다. 콘트레라스의 오프 사이드 반칙이 확인되어 이 골이 취소되기는 했지만 토레스의 오른쪽 측면 왼발 감아차기 골은 일품이었다. 바로 그곳에 우리 왼쪽 풀백 김진수가 보이지 않은 것이다.

벤투호는 이 게임을 통해 21개의 슛(코스타리카 6개) 기록을 남기며 일방적인 게임 흐름을 이어나갔다. 유효 슛 기록도 '한국 8개 - 코스타리카 3개'로 앞섰다. 하지만 상대 팀 골키퍼가 퇴장당한 틈을 타 겨우 2-2 점수판을 만들고 끝냈을 뿐이다. 

결국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진짜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41분, 토레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반대쪽으로 올린 왼발 크로스를 베네테가 달려들어가며 왼발로 밀어넣은 것이다. 이 순간 오른쪽 풀백 윤종규가 따라붙지 못했다. 

이 게임 4-1-3-2 포메이션을 내세운 벤투호는 왼쪽 풀백 김진수, 오른쪽 풀백 윤종규를 매우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현대 축구 포 백 시스템에서 측면 풀백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공격에 가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빈 공간을 메우는 대책은 분명히 보이지 않은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이 그 넓은 공간을 혼자서 커버할 수 없었고 두 번째 옐로 카드를 받을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김진수의 의욕 넘치는 공격 가담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왼발을 잘 쓰는 날개 공격수 토레스를 그쪽에 두고 항시 기회를 노렸고 실제로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양상은 반대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벤투호의 오른쪽 풀백 윤종규는 황희찬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지만 자신의 뒤로 돌아들어오는 상대 선수를 자주 놓치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1-1로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도 윤종규 뒤로 돌아들어간 브라이언 오비에도를 놓치는 바람에 하프 타임도 불안해 보였다. 후반전 시작 후 19초만에 베네테에게 내준 왼발 중거리슛 순간에도 우리 왼쪽 풀백 김진수의 위치는 수비수 본연의 자리가 아니었다.

63분에는 벤투호의 좌우 측면이 크게 흔들리며 역전골까지 내줬다. 알바로 자모라의 크로스를 받은 안토니 콘트레라스의 헤더 슛을 김승규 골키퍼가 가까스로 쳐냈지만 바로 앞으로 달려든 코스타리카 골잡이 베네테를 따라붙는 수비수는 없었다.

9분 뒤에도 우리 수비수들은 집중력이 흐려져 로안 윌손에게 골문 바로 앞 노마크 슛 기회를 내주며 총체적 난국을 드러냈다. 비록 81분에 코스타리카 골키퍼 에스테반 알바라도가 우리 교체 선수 나상호 앞에 떨어진 공을 잡기 위해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핸드 볼 반칙을 저지르는 바람에 퇴장당하고 말았지만 그 이전까지 우리 수비 라인은 월드컵 본선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알바라도가 쫓겨나 세케이라가 골키퍼 자리에 바꿔 들어왔고 손흥민의 오른발 감아차기 프리킥이 기막힌 2-2 동점골로 들어갔지만 이 평가전은 거기까지였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오는 27일(화) 오후 8시 이번 월드컵 G조 브라질, 세르비아, 스위스와 한 조를 이룬 카메룬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게 된다. 수비 라인의 문제점을 얼마나 고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9월 23일 오후 8시, 고양종합운동장)

한국 2-2 코스타리카 [득점 : 황희찬(28분,도움-윤종규), 손흥민(85분) / 베네테(41분,도움-토레스), 베네테(63분)]
- 퇴장 : 에스테반 알바라도(81분, 코스타리카 GK)

한국 선수들
FW : 황의조(78분↔정우영2), 손흥민
AMF : 황희찬, 황인범, 권창훈(73분↔나상호)
DMF : 정우영1(65분↔손준호)
DF : 김진수(65분↔홍철), 김영권(78분↔권경원), 김민재, 윤종규
GK : 김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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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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