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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하는데 자꾸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어디가 불편한지 물으니 그제야 작은 목소리로 '갑자기 터진 것' 같다고 속삭였다. 친구는 완경(폐경)을 앞둬서 그런지 생리가 불규칙하다고 했다. 혹시 바지에 묻지는 않았는지 봐 달라며 일어난 친구는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50이 넘어도 숨기고 싶은 월경

월경은 가임기 여성에게 일상적인 몸의 일이지만, 부끄럽고 숨겨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월경혈이 질에서 흘러나오는 생리적 구조로 인해 더러운 배설물같이 취급되고 월경 역시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임신, 출산과는 별개로 월경과 관련된 질은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라는 성적인 의미를 덧씌워 금기로 만들었다. 여성은 '생리 중'임을 말하면 창피하고, 옷에 생리혈이 묻는 것도 최대한 감춰야 한다고 내면화 한다.

때문에 '월경', '생리'라는 직접적 단어 대신 '그날, 그때, 마법에 걸린 날' 등으로 에둘러 말한다. 20대 때 중국 어학연수를 앞뒀던 지인은 '月經(월경)'이라는 중국어를 배웠지만 직접 그 단어를 써도 되는지, 완곡한 표현은 없는지 스스로 검열하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한다. 중국에서는 '큰이모'를 생리의 속어로 쓰인다. "큰이모가 오셨다"라고 하면 생리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중국 최초의 여성 생리 주기 관리 앱인 '다이마(大姨嗎)'는 큰이모라는 뜻의 중국어 '다이마(大姨媽)'와 발음이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더 패드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더 패드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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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역시 멘스트루에이션(menstruation) 대신 '기간'이라는 뜻의 피리어드(period)를 많이 사용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피리어드: 더 패드 프로젝트>의 제목 역시 월경을 뜻한다. 다큐멘터리는 인도 여성들이 '월경은 불결한 질병'이라는 편견과 관습에 맞서 스스로 일회용 생리대를 만드는 내용을 담았다.

다큐멘터리는 피리어드(월경)에 관해 물을 때 부끄러워하며 수줍어하는 인도 여자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인도 뉴델리에서 60km 떨어진 낙후된 농촌 지역 하푸르에 사는 대부분 여성은 일회용 생리대를 모른다.

이 마을 여성들은 낡은 옷을 패드로 이용하고 버리는데, 천으로 된 패드 때문에 월경 기간을 견디기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흔하다(2019년 인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인도 여성의 40%가량만 위생적인 생리대를 쓰고 있다).
 

하푸르 여성들은 저가 생리대 기계를 마을에 들여와 함께 모여 공동작업하며 위생적인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판매한다. 생리대 상품명은 '플라이(fly)'. 훨훨 날고 싶은 그들의 소망을 담았다. 그들은 신체적 활동이 자유로워짐은 물론 경제적 수입이 생기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거나 직업을 가질 꿈을 키워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월경에 대해 말할 때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바뀐 인도 여성들이었다. 월경은 '나쁜 피'라는 편견, 월경하는 여성은 더러워 사원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종교 규칙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리 공결이나 생리 휴가도 당당하게
 
생리대.
 생리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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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만든 이 다큐멘터리의 '생리대 빈곤'은 멀리 인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일부 여성 청소년들이 경제적 사정으로 생리대를 구입할 수 없어 휴지나 깔창 등을 대신 사용한다는 일명 '깔창 생리대 사건' 이후 청소년의 기본적인 건강권이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차상위계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을 시작으로 지난 2월, 서울시 성동구가 처음으로 구내 모든 만11~18세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 지원을 시작했다. 경기도 역시 김포, 하남, 성남, 군포 등 대부분에서 여성 청소년들에게 생리용품 구입비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경우,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서 소득 등에 상관없이 월 1만 2천 원의 생리대 바우처를 여성 청소년들(만 11~18세, 2004~2011년생)에게 지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생리대를 사는 그 이상의 가치라고 믿는다.

보편적 지원은 생리대가 개인 소비재가 아닌 생존 물품이며,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리라 기대한다. 우리나라 여성 청소년들 자신도 자연스럽게 생리대를 살 때, 월경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리대를 감추지 않아도 되기를, 생리대 교체 시기에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기를, 생리통 때문에 진통제를 먹을 때도 두통 등 다른 병명으로 둘러대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유난을 떤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한 생리 공결이나 생리 휴가도 당당하게 사용하며 '안전하고 자유롭게 월경할 권리'로 확대되길 바란다.

나아가 월경이 여성들에게 자기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한다. 잘 알려진 대로 영양 불균형, 과한 피로,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은 불규칙한 생리 주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월경은 내 몸을 관찰하고 건강을 살피는 긴밀한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월경을 감추지 말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알아가자.
 
생리가 귀찮은 골칫거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정보를 얻는다면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 거야. 자기 몸에 귀를 기울이고 공부하자. 달마다 하는 생리는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알 기회를 줘. 휘둘리지 마. 생리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마음먹기에 달려있으니까. - <나의 첫 생리> 메러와 아브라함, 89쪽
 
월경은 여성으로 태어난 몸의 활동이다. 더러운 피라는 오래된 미신과 편견으로 만들어진 부정적인 인식은 사라져야 한다. 월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내 몸에 대한 긍정이다. 월경하는 몸은 부끄럽고 더러운 몸이 아니라 건강하고 당당한 몸이다.

여성이 35년 동안 400번 만나야 하는 월경이 매달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아니라 '내가 초대한 손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태그:#월경 , #생리, #생리대지원, #피리어드더프로젝트, #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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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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