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7 14:52최종 업데이트 23.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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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군산항을 억지로 열어젖힌 일본은 전라도 곡창지대의 쌀을 모조리 군산으로 끌어모아 일본으로 실어 갔다. 항구에서 멀지 않은 영화동은 외국인에게 치외법권이 주어지는 조계지가 되었고, 일본인들은 이곳에 살던 조선인들을 쫓아낸 뒤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길을 냈다. 관공서와 고급 주택, 백화점과 레스토랑이 이곳에 들어섰다. 일본인들이 떠난 뒤엔 가까운 곳에 미 공군부대가 자리를 잡았고, 클럽과 식당들이 뒤이어 들어왔다.

개복동도 영화동, 월명동 등과 더불어 군산의 원도심이다. 한때 이곳에는 1910~20년대에 문을 연 전라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두 개의 극장 씨네마우일(옛 군산극장)과 국도극장(옛 남도극장)이 있었다. 일제는 이곳에 윤락가도 만들었는데 한때 호남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정부가 군산항 왼쪽 바다를 메워 국가산업단지를 만들면서 군산은 산업도시로 거듭났지만, 10년쯤 지나 군산 '중앙로1가', 그러니까 군산에서 가장 북적이던 곳에 있던 시청과, 월명동에 있던 법원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온통 논밭이던 나운동과 수송동에 잇달아 높다란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군산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기울었다. 대우자동차 군산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최근 몇 년 사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많은 이들이 군산을 떠나기도 했다.

개복동에 활기 불어넣은 첫 번째 혁신 플랫폼
 

개복동으로 돌아와 미술 작업을 하는 조권능 대표 ⓒ 조권능

 
2008년 한 젊은 예술가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개복동에 작업실을 냈는데, 그가 바로 몇 년 뒤 우리나라의 첫 지역관리회사(Area Management Company)인 ㈜지방을 세운 조권능 대표다. 지역관리회사란, 특정 골목상권이나 재래시장처럼 일정한 범위 안에 자리한 소상공인 등의 주체들로부터 예산을 받아 지역을 되살리는 일을 맡아 하는 회사다.

군산에서 나고 자란 조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서울로 훌쩍 떠나 미술 전문 잡지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홍대 앞'이라 불리던 마포구 동교동에 살았다. 골목 곳곳에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청년 예술가들이 홍대 앞으로 모여들던 때였다.

그는 자연스레 청년 예술가들과 어울렸고, 그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도시의 풍경을 바꿔 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예술 활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가슴 설레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 설레는 일을 고향인 군산에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7년 만에 군산 개복동으로 돌아온 조 대표는 문 닫은 국도극장이 보이는 오래 비어있던 건물 2층에 작업실을 열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골목 담벼락 곳곳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고, 비어있던 공간이면 어디라도 전시회를 열었다. 건물 옥상에서는 음악가들을 불러 공연도 펼쳤다.
 

개복동 건물 옥상에서 청년 예술가들이 공연을 하는 모습 ⓒ 윤찬영

 

지금은 사라진 카페 '나는섬' ⓒ 윤찬영

 
작업실을 낸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그는 사람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공간을 꾸리기로 마음먹고, 작업실 자리에 카페 '나는섬'을 열었다. 그때 만해도 군산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정말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까운 곳에 둥지를 트는 젊은 예술가들도 생겨났다.

동지들이 생기자 조 대표는 공연과 전시회도 더 자주 열었다. 나는섬에 가면 군산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청년 예술가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고, 자연스레 그가 바라던 공동체도 만들어졌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는섬이 자리한 100m 남짓한 골목을 '예술의 거리'라 불렀다. 지금으로 보자면 안팎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만나고 부딪히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혁신 플랫폼'이 만들어진 것이다.
 

개복동 칵테일바 '앙팡테리블' ⓒ 조권능

 
하지만 아직 '도시재생'이란 말도 없던 시절, 청년 예술가들의 힘만으로 동네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섬을 연 지 3년 뒤인 2012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통째로 비어있던 3층짜리 건물 2층과 3층을 빌려 칵테일바 '앙팡테리블'을 열었다. 주말이면 늘 사람들로 붐볐던 이곳을 지금도 아직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한참을 지켜보던 군산시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2015년 시는 오랫동안 닫혀있던 극장인 씨네마우일을 사들여 '군산시민예술촌'으로 되살렸다. 그해 10월 예술의 거리에서 1회 '버스커즈 뮤직 페스타'가 열렸다.

재래시장 살리기와 지역관리회사

그렇게 10년을 지나오면서 그도 지칠대로 지쳤다. 가게 두 곳을 운영하면서 동네를 바꿔나가는 일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군산의 오래된 시장인 영화동 영화시장을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공간연구원이 그에게 지역 마스터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누군가가 앙팡테리블을 이어받길 바랐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는 가게 문을 닫고 영화시장을 되살리는 일에 뛰어들게 된다.

"그래도 개복동에서의 10년은 의미 있었어요. 지역민들에게 '저 친구는 꾸준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으니까요.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갑자기 나타나서 뭔가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오해는 받지 않을 수 있게 됐죠."
 

새롭게 탈바꿈한 영화타운 ⓒ 조권능

 
2017년 조 대표는 건축공간연구원과 함께 '액티브 로컬 캠프'라는 이름으로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열어 창업자들을 모았다. 2박3일 캠프를 거쳐 5개 팀을 뽑고, 시장엔 '영화타운'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붙였다.

"전국 곳곳의 청년몰들은 보통 행정에서 기획과 설계부터 시공까지 다 끝낸 다음에 운영자와 창업자를 뽑아 공간을 하나씩 내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창업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고 책임감도 떨어질 수 있었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 그러니까 운영자와 마스터 그리고 창업자를 먼저 뽑은 다음에 그 안에서 '지역관리회사'를 만들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설계하고 시공하기로 했어요. 지역관리회사가 기획에 깊이 참여해서 창업자들이 바라는 것들을 구현하려고 애를 썼죠."
 

영화타운 청주바 '수복' ⓒ 조권능

  

영화타운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 조권능

 
2019년 여름,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영화타운은 여느 청년몰들과는 달랐다. 작은 사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타운 골목엔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를 비롯해 사케바 '수복', 칵테일바 '해무' 그리고 지방이 직영하는 주점 '럭키마케트' 등이 들어섰는데, 저마다 독특한 맛과 멋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돈키호테는 한때 토요일 하루에만 30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문을 연 지 4년을 채워가는 지금도 영화타운을 찾는 발길은 꾸준하다.

군산 술 살리기, 청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구축

조 대표는 영화타운 프로젝트에 참여할 무렵, 새로운 사업을 떠올렸다. 군산의 양조산업, 그 가운데서도 군산 술인 '청주'를 되살리겠다는 구상이었다. 개항과 함께 양조업이 뿌리를 내린 군산에 처음 청주 공장이 들어선 건 1917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일하던 청년 강정준이 훗날 공장을 이어받아 '백화(白花)양조'를 세운다. 지금도 제사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술인 '백화수복'이 바로 백화양조가 만든 군산 술이다.
 

백화수복 신문광고 ⓒ 백화양조

 
한때 맞수가 없던 백화양조도 197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더니, 1985년 두산그룹에 팔린 뒤 다시 롯데주류로 넘어간다. 백화수복은 지금도 이름만 바뀐 군산공장(롯데칠성)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백화양조가 잊히면서 청주의 고장 군산의 자긍심도 잊힌 지 오래다. 사람들은 더는 백화수복을 군산 술로 여기지 않는다.

조 대표는 백화양조의 기술과 스토리에 새로운 색을 더한 또 다른 군산 술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백화양조에서 일했던 장인들을 찾아다녔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옛 공장장으로부터 장인을 소개받은 그는 지난 몇 년 어깨너머로 청주 빚는 법을 익히며 조심스럽게 새로운 술에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그리고 최근 농업회사법인 '흑화양조'를 세웠다.

"군산을 다시금 청주의 도시로 되살리고 싶어요. 백화양조라는 회사를 되살리려는 게 아니라 군산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던 양조의 문화와 자긍심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되살리려는 거죠. 청주는 여전히 군산에서 만들어지고 있고, 곳곳에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도 제법 남아 있어요. 이런 것들을 모아 매력적인 로컬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를 기반으로 누구라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꿈꿔볼 수 있는 '청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어요. 그 안에서 청년들이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개복동에 이어 또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마침 ㈜지방은 지난해 행안부 청년마을 사업에 뽑혔다. 이름하여 '술 익는 마을' 프로젝트다.
 

술익는마을 프로젝트 포스터 ⓒ 조권능

   

술익는마을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조권능 대표와 송수민 팀장 ⓒ 조권능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던 청년마을 사업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에 무게를 많이 두는 사업으로 알고 있었어요. 지금까지의 청년마을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사업계획을 쓰다가 마감 이틀을 남겨 두고 방향을 완전히 틀었어요. 지원을 받으려고 억지로 틀에 맞추고 싶진 않았어요. 안 되더라도 우리가 하려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드라이브를 걸기로 했죠. 나중에 들어보니 행안부도 로컬 산업을 발굴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운 좋게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죠."

사업 첫해인 지난해에만 100여 명의 청년들이 군산 청년마을을 거쳐 갔다. 모두 술을 좋아하고 술로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청년들이었다. 함께 술도 빚어보고 창업과 브랜딩 교육도 받았다. 그 사이 술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로컬 콘텐츠와 브랜드도 하나하나 만들어졌다. 청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 확인한 셈이다. 올해는 다양한 실험들이 상품과 브랜드라는 구체적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

"술 익는 마을 프로젝트에서 양조장은 가장 중요한 축이에요. 쌀, 겨, 효모, 술지게미 등 여러 재료들로 전혀 다른 제품도 만들 수 있거든요. 쌀로는 입욕제와 화장품을 만들 수 있고, 천연효모로는 베이커리나 디저트를 만들 수 있어요. 술을 담는 도기나 목기도 생각해 두고 있죠.

​양조장을 중심으로 체험형 관광서비스도 연결할 수 있어요. 지금은 청주바와 청주스테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것 말고도 술과 연결할 수 있는 여러 오프라인 공간과 비즈니스들로 동네를 채워 브랜딩해나갈 생각이에요."


강한 소상공인이 만들어 가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 
 

술익는마을 공간 ⓒ 조권능

 
청년 커뮤니티가 커지고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에 새로운 가게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대기업에 기대어 성장해 온 군산 산업 생태계의 빈자리를 앞으로 패기 넘치는 청년 소상공인들이 채워가길 바란다고 했다.

"작은 가게를 꾸려가는 소상공인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요. 산업단지 중심의 산업화 전략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작지만 강한 가게들이 만들어 가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감각과 열정을 갖춘 소상공인들의 가게가 지역을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로 성장해야 해요. 군산 빵집 이성당도 알고 보면 일본제과점 이즈모야과자에서 출발했어요. 이번엔 빵이 아니라 술로 이성당과 어깨를 견줄만한 로컬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서울·수도권 밖에서 청년 소상공인이 자리를 잡는 게 쉽지는 않다.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는 사업들이 늘고 있다고는 해도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전통적 의미의 소상공인들이 지원을 받긴 어렵다.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을 받아 창업하는 팀들보다는 그냥 자기 가게를 낸 소상공인들이 더 매력적이라 느낄 때가 많아요. 둘은 달라요. 소상공인들은 현장형으로, 매장을 운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팀들이죠.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이 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식당이나 카페를 창업하는 팀들은 지원받기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연말이면 굿즈들이 쏟아지죠. 물론 지원이 없던 시절보다야 낫지만 너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경향이 있어요. 식음료(F&B) 분야에도 더 성장하는 팀들이 필요하고, 의류 쪽도 아직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다양성이 더 필요해요."


그도 지금껏 사업을 해오면서 크고 작은 지원을 받아왔는데, 최근 지원을 받는 데에 익숙해진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보조금에 기대는 걸 무척 경계하고 있어요. 최근 팀원들에게, 우리가 언제부턴가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쓰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자생력을 키우고 사업을 확장하려고 잠깐 기대는 건데 나도 모르게 돈 버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던 거죠. 정신이 확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럭키마케트와 게스트하우스 두 곳에선 돈 못 벌면서 다른 거 잘했다고 위안 삼지 않기로 했어요. 곧 스파도 여는데 여기서도 수익성을 따지기보다 사진 이쁘게 나올 것만 생각하면 안 되겠죠."


조 대표는 문화기획자로 출발해 소상공인을 거쳐 우리나라의 첫 지역관리회사를 창업했다. 그가 보기에 아직 로컬에서 출발한 소상공인이 만들어 낸 성공 모델은 많지 않다. 그는 아직 어떤 한계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술) 제조업이든 지역관리회사든 조금 더 단단한 기업으로 성장해 이 한계를 뚫어내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그러려면 더 큰 수익을 창출하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건 핵심 가치를 충족하는 콘텐츠라고 그는 믿는다.

군산은 다시 청주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앞으로 그가 만들어 갈 군산의 미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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