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2 14:04최종 업데이트 24.01.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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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5개월여의 끈질긴 추적. 검찰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의 '추적기'를 가감없이 전합니다.[편집자말]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0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법사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회의장 앞에서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를 총괄지휘하는 한동훈 검찰 반부패강력부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2017년 5월 15일 언론을 통해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이 보도됐다. 2017년 4월 21일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부하 검사들을 대동하고 회식을 하면서 서로 상대방 부하검사들에게 70만원에서 100만원씩 들어있는 돈봉투를 돌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 직후인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합동 감찰에 착수했다. 그리고 5월 19일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돈봉투 만찬', 일회적인 일탈행위? 

그리고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2017년 6월 7일 합동감찰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이영렬 전 지검장은 매월 대검찰청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수령해서, 특수수사 검사실 및 각 부·과 수사활동비, 수시 수사지원비 등에 집행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특수활동비 사용 전반에는 문제가 없고 '돈봉투 만찬'은 일회적인 일탈행위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영렬 전 지검장은 면직이 됐다.


그런데 과연 당시의 감찰결과가 진실이었을까?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찰청에서 수령한 특수활동비를 '수사활동비'와 '수사지원비'로만 사용했을까?

이영렬 전 지검장이 제기했던 행정소송(면직처분 취소소송) 1심 판결문을 보면, 그렇지 않다. 당시에 서울중앙지검장은 특수활동비 중 일부를 검사장실 운영비로 매월 170만 원, 1·2·3 차장실에 각 100만 원, 사무국장실에 80만 원, 법정과에 100만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수사비가 아니라 '운영비'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특수활동비의 용도에 벗어난 지출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만 쓸 수 있기에, '운영비'로 쓰는 것은 위법이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 장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문 ⓒ 하승수


이것은 법무부와 검찰이 합동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힌 내용과 다른 부분이다.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수사활동에만 특수활동비를 쓴 것이 아니라 운영비로도 썼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특수활동비 집행실태가 서울중앙지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검찰청이든 일선 검찰청이든 특수활동비 용도에 맞지 않는 지출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7년 상반기 이전 자료 불법폐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돈봉투 만찬'이 있었던 2017년 4월을 포함해서 2017년 상반기 무렵까지의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조직적으로 불법폐기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도 작년 6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자료를 수령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심지어 '돈봉투 만찬' 사건 당시의 기록도 폐기되고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해서 전국 59개 검찰청에서 자료가 불법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폐기된 기간은 검찰청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다. 대검찰청의 경우에는 2017년 4월 이전 자료가 폐기됐고, 서울중앙지검의 경우에는 2017년 5월 이전 자료가 폐기됐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윤석열 지검장이 취임한 시점이 2017년 5월 19일이므로, 자료의 폐기시점(주기적으로 폐기했다면 최종폐기 시점)은 윤석열 지검장 취임 이후일 수밖에 없다. 이영렬 전 지검장은 돈봉투 만찬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감찰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영렬 전 지검장이 폐기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법폐기를 지시, 공모, 실행, 묵인을 하는 것은 어떤 범죄에 해당할까?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록물을 폐기할 때에는 기록관리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자료 불법폐기는 형법상 공용서류 무효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

확인 결과, 특수활동비 자료들은 기록물 폐기를 위한 심사와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이런 사실이 문제가 되자,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무단폐기를 비호하고 나섰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번 폐기하는 관행이 있었고, 그런 내용이 교육자료에 나와 있다고 국회에서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범죄가 관행이었다고 해서 면책될 수는 없다. 횡령이나 절도가 관행이었다고 변명한다고 해서 무죄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불법폐기를 하라는 교육자료까지 있었다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도록 교육까지 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불법폐기는 세금오·남용 등 또다른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수활동비를 관행적으로 운영비로 사용해 왔다면, 심각한 세금오·남용이기 때문이다.

7년 공소시효가 문제
 

한동훈 검찰 반부패강력부장이 2019년 10월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이런 범죄가 드러나자 시민단체들은 고민에 빠졌다.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찰조직의 핵심부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특별검사 도입을 국회에 촉구해 왔다. 5만명의 국민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도 했다. 그러나 국회는 특별검사 도입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공소시효 만료시점이 다가왔다.

정확한 폐기시점을 알 수 없지만, 대검찰청의 경우 2017년 4월 이전 자료가 모두 폐기된 것으로 보아 2017년 5월에 불법폐기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올해 5월이면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될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민단체들은 지난 1월 16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검찰 핵심부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행위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이 제대로 수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공소시효가 만료될 경우에는, 나중에 특별검사법을 제정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때에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 조항을 둬서라도 반드시 불법적인 자료폐기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이다. 검찰 조직의 핵심부에서 벌어진 범죄를 검찰이 수사·기소하지 않는 상태는 국가의 공소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공소시효에 대한 특례조항을 만들어서라도 처벌해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특수활동비 자료 불법폐기는 '국기문란' 행위이다. 이런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서는 법치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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