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가벼움의 오묘한 균형, 유희열의 <스케치북>

[리뷰] KBS의 새로운 음악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록 2009.04.27 10:31수정 2009.04.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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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그의 삽화집 <익숙한 그집앞>이 연상되는 예쁜 타이틀그림이 흘러오고 그 삽화집에 수록되었던,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의 헌정의 의미를 담은 곡인 '라디오 천국'이 연주된다. 백색 야마하 피아노를 치다가 '우우'하고 넣는 그의 수줍은 허밍은, 공중파에서는 약간 무리수라 생각했지만 관객들은 힘찬 함성으로써 그의 용기에 보답했다. 개편을 맞아 새롭게 신설된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첫 방송, 첫 음악은 그렇게 시작됐다.

진정한 '라디오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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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신설된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유희열의 삽화집이 연상되는 프로그램의 타이틀 화면 ⓒ kbs


그의 오랜 팬이라면, 이삼십 대들의 아이돌 원맨밴드 '토이(Toy)' 유희열이 가진 독특한 성향쯤은 파악하고 있다. 그는 다분히 감성적이고 다분히 지적이며, 또한 다분히 키치(Kitsch)적이다.

그가 방송에서 대중들에게 처음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 과거 MBC의 신해철의 <FM 음악도시> 화요일 게스트에서의 그의 모습은, 처음엔 '퀸시 존스'나 '데이빗 포스터'의 음악세계에 대해 역설하는 명문대 엘리트 뮤지션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오래 못가 신해철과 함께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미국 팝시장의 '섹시스타 시리즈'를 심야 라디오에서 그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설파하기 시작하는 캐릭터로 진화, 혹은 퇴화됐다.

그런 그의 독특한 이중적인 모습은 청취자들에게 상당히 큰 반향을 몰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신해철에 뒤를 이어 <FM 음악도시>의 2대 DJ의 자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당시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 첫날,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그는 마이크 앞에서 연신 침을 꿀떡 꿀떡 삼키며 멘트를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것이 그의 '라디오 천국'으로 가는 첫 번째의 여정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공중파로의 진입, 그 양반 여전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그 영역을 확대해서 KBS의 음악 프로그램의 MC로 전격 발탁됐다. 사실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이하나의 <페퍼민트>의 MC교체 과정에서 그다지 탐탁지 않은 잡음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그를 지켜보는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지만, 그는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공중파에서도 그야말로 '여전했다'.

그를 모르던 시청자들은 이 화려한 언변의 뮤지션이 누구인지 포털 검색창에 그의 이름 석 자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의 팬들은 공연이나 라디오 외에는 자주 볼 수 없었던 그의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공중파 음악프로그램 방영에 감동하기 시작했다.

첫 회인 만큼 게스트들은 대체로 유희열과의 음악 인연이 깊은 뮤지션들이 등장했다. 한국대중음악사에 있어 꽤나 기념비적인 작품인 이승환의 4집 <Human>에서 강력한 인상을 보이게 기회를 주었던 그의 음악적 '은인'인 이승환은, 그 좁은 무대에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보일만큼 화려하고도 멋진 첫 무대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뒤이어 등장한 유희열의 <FM 음악도시>의 후임 DJ였으며, 이제는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의 선배인 이소라의 무대가 개그우먼 박지선의 관객 참여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 되었고, TV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에 빛나는 '언니네 이발관'의 귀한 무대가 이어졌다. 그들에게 있어 유희열은, TV프로그램 은퇴선언을 번복할 만큼 깊은 우정과 신뢰의 존재였던 것이다. 또한 시청자들과 관객들은 이로인해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수상자와 '올해의 음악인상' 수상자가 동시에 한 무대에 서있는 진풍경을 보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끝으로 십 수 년 전, '한국사람'이라는 밴드의 관계를 지금까지도 악연과 인연의 미묘한 줄다리기의 위치에서 유지하고 있는 '공연장이' 김장훈의 피날레가 펼쳐지면서, 도저히 첫 방송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능숙한 진행의 유희열의 <스케치북> 제 1장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깔끔한 출발이었고, 아울러 그의 지난 음악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었던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즐거움'과 '가벼움'의 오묘한 균형

그러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첫 방송에 그저 모든 것에 합격점을 주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다. 특히 태생적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유희열 진행의 특성상, 등장하는 뮤지션들과의 농을 통해 게스트들의 음악과 공연이 너무 가볍게 퇴색해져 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알다시피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여러 뮤지션들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음악을 바라보는 인식의 범위는 각자 상당히 넓고 다양하다. 그런 그들에게 소위 말하는 '코드'를 맞춰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프로그램의 주인인 MC임을 인지하면, 유희열은 게스트들의 음악을 통한 '즐거움'이 시청자들에게 '가벼움'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방송에서 이소라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제대로 감정을 잡지 못했던 모습은, 첫 회의 음악프로그램이라는 특수성과 MC와 게스트간의 친분을 고려해도 분명 옳은 모습만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음악프로그램의 MC는, 등장하는 뮤지션들이 가장 좋은 컨디션에서 최상의 음악을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임을 잊어선 곤란하다.

그가 만들어낼, 새로운 '천국'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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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천국'을 연주하는 유희열그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첫 회, 첫 음악으로 '라디오 천국'을 연주했다 ⓒ kbs


하지만 이 같은 지적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과 관객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특히 서두에 언급했듯이, '무겁지 않은 재미'에 측면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행과 언변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이번에 새롭게 김창완으로 MC를 바꾼 MBC <음악여행 라라라>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스케치북>만의 특징이다. <음악여행 라라라>는 '즐거움'과 '진지함'의 공유에 표면적으로 실패하고 결국 정통 음악프로그램의 회귀에 가까운 선택을 했지만, <스케치북>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잡아줄 MC로서 유희열을 선택함으로써, 그 어려운 도전에 성공할 여지와 기틀을 굉장히 단시간에 확보했다. 역시 유희열이라는 뮤지션과 DJ의 오래된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과연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여타의 음악프로그램, 심지어 그 이전에 음악프로그램과도 구분되는 새로운 균형 잡힌 음악프로그램의 성공사례로 남을 것인가. 그 점에 대해서 이제 첫 회를 마친 시점에서 섣불리 예견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희열이라는 MC의 '즐거움'과 '가벼움'의 균형을 잡는 역량이 그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점은 꽤나 자명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kell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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