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스포가 죄야?' 어리둥절한 당신에게

'마블 알못'이 어벤져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3가지

등록 2019.05.02 07:37수정 2019.05.0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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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 대한 스포일러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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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일 최다관객 기록 갈아치운 '어벤져스4'2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4')이 개봉일인 전날 총 133만8천781명을 불러모아 개봉일 최다관객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 모습. ⓒ 연합뉴스

 
지난 24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 영화의 흥행을 예측하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 있을까. 할리우드 영화들이 '빅 마켓'인 한국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가장 먼저 내놓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마블 프렌차이즈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충성도는 같은 회사의 <엑스맨>, <스타워즈> 등의 시리즈를 완전히 압도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개봉 열흘 전부터는 예매 전쟁이 일고, 개봉 후에는 상영관의 80%를 한 영화가 독점하는 상황이 됐다. 아이맥스관 티켓엔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SNS에서는 '어벤져스 스포일러 피하기 십계명'이 행동규약으로 공유되고 있다. 개봉 당일에 영화를 보기 위해 연차를 냈다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도 왕왕 들려오는 것이 개봉 일주일이 지난 오늘(2일)의 모습이다.

<어벤져스>(2012)가 700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가 1000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가 1120만 관객을 휩쓸었던 연대기를 훑어보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관객 수는 1000만은 물론이고, 외화 흥행 1위 기록을 보유한 <아바타>(2009)의 1330만 명을 넘을지만이 유일한 관전 포인트다.

그럼에도, '어벤져스 시리즈'의 폭주에 그저 어리둥절한 4천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들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를 둘러싼 일련의 폭발적인 현상들을 체감한다. 이른바 '어벤져스 알못'들은 이 현상을 두고 신기하다 반응하기도, 유난스러운 스크린 독점이 불쾌하다 반응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영화를 둘러싸고 국민적 흥분이 폭발하는 상황을 독해해보는 것은, 2010년대 한국의 문화지형도에서 최전방에 배치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해하는 시작 아닐까. 그래서 준비했다. '어벤져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3가지 키워드.

#1. 스포일러 

스포일러는 반전이 있는 작품일수록, 정석적인 플롯에서 벗어나 결말이 충격적인 작품일수록 그것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때로는 너무도 충격적인 결말 때문에 되려 그것이 십수 년 동안 회자되며 모두가 영화의 스포일러를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식스센스>(1999)가 그 대표적인 예.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를 잇는 다음 영화는 반전 스릴러 장르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탄생했다. 그 작품이 바로 작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다.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스포일러에 민감할 수 없는 장르다. 히어로는 언제나 승리하고, 세계는 언제나 평화를 되찾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은 장르적 클리셰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슈퍼히어로 영화 특유의 카타르시스이기도, 슈퍼히어로 영화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이러한 장르문법을 가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파괴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히어로의 절반이 '죽어버리는' 종말론적 결말을 택한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후속편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둘러싸고 스포일러 전쟁이 벌어진 이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은 줄곧 슈퍼히어로 장르의 영역에서 독해돼 왔다. 즉, 각 영화에서 히어로들은 결국 악을 무찌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결말을 쉬이 예측할 수 있었기에 앞선 영화들의 개봉 때는 스포일러가 그다지 큰 화두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개봉을 앞두고는 영화와 관객 사이, 관객과 관객 사이의 논리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됐다. 이 영화는 전편에서 벌어진 히어로들의 죽음에 대한 고통스러운 진실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고, 그 황망함 속에서 이야기를 어떻게든 이어나가야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2. 결말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짊어진 짐은 전편의 충격적인 결말을 수습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아이언맨>(2008)에서부터 10년을 이어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 세계관의 첫 장을 '만족스럽게' 마무리 짓는 것은 관객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내린 명령이자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린 축제의 장이다.

마블 코믹스에 기반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은 그 자체로도 방대하고 복잡다단하지만, 배우들의 캐스팅, 계약 문제, 인터뷰에서의 발언 등 작품 외적인 이슈들과도 강하게 결합하며 폭발적인 확장성을 가진다. 마블 영화와 관객들이 맺는 관계는 여느 영화들처럼 '작품 vs. 관객'이 될 뿐만 아니라, '스타 vs. 팬덤'이 되기도 '상품 vs. 소비자'가 되기도, '이야기 vs. 독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마블 서사 특유의 전방위적 확장성은 관객들에게 강력한 능동성을 부여하며, 영화와 관객 사이의 위계를 180도 전복시키기도 한다. 캐릭터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모하기도, 제시된 서사를 늘였다 줄였다 해석하고 토론하며 영화에 신축성을 부여하기도, 나아가 영화 제작 자체에 간섭하기도 하는 마블의 관객들은 영화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자리에 오른 관객이 됐다.

이렇게 충성도 높은 관객들의 능동성에 부응하며 몸집을 키워온 마블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내놓은 캐릭터이자 세계관의 우두머리를 맡겼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어벤져' 시리즈를 통해 모든 히어로들을 한 데 모아 득의만만한 흥행을 약속받은 후, 흑인-여성 히어로인 '블랙팬서'와 '캡틴마블'을 선보이며 정치적인 의제-소수자 담론에까지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마블이 21세기에 세운 문화적인 공은 크고 명백하다. 히어로 무비를 더 이상 누군가의 유년 시절에 묶어 놓지 않고 전 세대 전 연령의 향유 대상으로 해방시켰다는 점, 막대한 자본의 힘을 빌려 소수자 담론을 알리고 지지한다는 점, 21세기 시대정신을 기록하고 후세대에 전하는 문화적 진원지가 됐다는 점.

#3. 스크린 독과점

이 놀라운 프렌차이즈의 이 모든 성취에도 불구하고, 마블의 폭주에 극단적인 부조리를 느끼기도 하는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한국은 제도적인 노력과 관객들의 지지가 합쳐져 자국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에 의해 초토화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엔드게임>이 개봉한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총 3058개의 스크린 중에 2800개를 영화 한 편이 잠식했다. 이번 주에는 신작들이 아예 개봉조차 하지 못했을뿐더러, 앞서 개봉했던 영화들이 다급하게 쫓겨났다. <생일>, <미성년> 등의 영화가 물러났고, 극장은 <노팅 힐>, <판의 미로> 등의 영화를 재개봉하며 '안전빵'을 배치해두고, 앞으로 한 달간은 <기생충>, <악인전>, <배심원들> 정도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감히' 개봉할 수 있는 신작이 없다.

마블이 아무리 새로운 시대정신이고, 문화적 기호라 하더라도 그것을 즐기지 않기로 '선택한' 관객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공해이자 창백한 혹한기일 뿐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독점현상에 관객들이 심한 멀미를 호소하는 것은, 작은 영화들에 대한 차별이 관객의 선택권에 간섭하는 한국 영화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의 연장이다. 대형 프렌차이즈 영화 등의 매체가 교묘하게 문화를 조종하고 스며들어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주입한다는 지점은 마블 영화가 비평적으로 지적되고 견제받아야 하는 지점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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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팬들 만난 어벤져스안소니 루소 , 조 루소 감독 형제(왼쪽부터),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대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브리 라슨, 제레미 레너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시아 팬 이벤트에서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 4월 24일. MCU 10년을 마무리하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개봉은 이렇게 다방면으로 한국 사회를 충격했다. 마블을 둘러싼 짜릿한 환호와 일련의 볼멘소리는 모두 우리의 2010년대를 설명하는 강력한 문화적 징후이자 연쇄반응이다. 콘텐츠에 대한 호오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그 호오의 반응들이 사회적 맥락에서 일으키는 융합작용에 관심을 갖는 일은 마블의 열렬한 지지자와 시니컬한 반대자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가장 강력한 악당 '타노스'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I'm inevitable(나는 필연적인 존재다)." 불가피하며 당연한 존재. 이것은 영화의 역사에서, 그리고 영화의 산업에서 '필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마블 스튜디오의 위치성과 무척이나 닮아 보이는 대사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영화사의 굳건한 히어로로 계속 남는지, 필요악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안티-히어로가 되는지는 앞으로도 두고 볼 일이다. 우리의 눈이 마블의 발뒤꿈치를 계속 쫓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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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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