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참가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환경 시위... '기후 정의'는 왜 중요한가

등록 2019.05.31 11:17수정 2019.05.3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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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for Future in Berlin 브라덴부르크문 앞에서 열린 환경 시위에서 참가자가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해리포터 또한 세계가 다시 건강하도록 마법을 부릴 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 ⓒ 주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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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시위 참여자들 참가자들이 자신들은 기후정의를 지금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주하은

"우리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외친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훔치고 있기 때문이다." ("Wir sind hier, wir sind laut, weil ihr uns die Zukunft klaut.")

지난 24일 금요일 정오, 독일 베를린의 대표적 구조물인 브라덴부르크 문 앞에 경찰측 추산 1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위의 구호를 외쳤다. 당신들이 내 것을 훔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곳에 모일 수밖에 없다는 외침이었다.

툰베리의 시위가 만든 나비 효과

이 시위는 한국에도 잘 알려졌다시피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로부터 시작되었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 폭염을 견디다 못해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이는 #Friday for Future라는 해쉬태그로 번져 결국 세계 각국의 시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23일부터 26일까지 실시된 유럽 의회 선거를 앞두고, 23일과 24일 양일간 각국에서 열린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유럽 의회 선거가 더 나은 환경과 기후를 위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위 구호는 베를린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툰베리는 2018년 12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 연설에서 "당신들은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당신들은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시위는 다양한 미래 세대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들은 기성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것을 빼앗지 말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환경과 기후는 선의 또는 호의가 아닌 정의의 문제였다.

이는 그들의 또 다른 구호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시위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위 구호와 더불어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선창자의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참여자들은 "기후 정의"를 답했고, "언제 그것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지금"이라고 답했다. 기후 정의라는 말은 한국인인 나에겐 낯선 말이었다. 이제껏 보아온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주로 작아지는 빙산 위 북극곰의 이미지로 대표되었고,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겐 비판보다는 설득이 앞섰다.
  '기후 정의'라는 표어는 무려 2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다. 2000년 11월 13일부터 25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6차 당사국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채택되었다.


"우리는 기후 변화가 정의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 건강, 아이들 그리고 천연 자원에 영향을 미친다."

그 이후 기후정의라는 말은 다양한 국제 회의와 환경 기구들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2018년 툰베리가 촉발시킨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기후 정의'는 왜 중요한가

'정의의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왜 중요할까? 정의의 문제로 프레임을 바꾼다는 것은 환경과 기후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며, 권리가 인정된다면 이를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줄이거나 제거할 수 있는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권리는 단수가 아니며, 권리들이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상반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권리가 아닌 이유로 이를 폐기하게 할 수는 없다.

기후 변화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탈원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의 주요 논지 중 하나는 전기비 인상과 원자력 산업 침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다. 만약 원자력 발전으로 인한 위험에서 벗어날 권리가 인정된다면 이러한 비판은 가당치 않다. 그 권리를 사회가 공적으로 인정한다면, 그 목표로 가기 위한 수단은 활발히 논의될 수 있으나 목표 자체는 경제적 이유로 흔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환경 문제를 정의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더 좋은 방법을 찾는데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 권리는 누구의 권리인가? 기후정의에 입각한 권리인 만큼, 그 권리는 기후의 특성에 맞게 고려되어야 한다.

먼저 기후에는 국가의 경계가 없기에 소외된 지역으로, 권리가 공간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의 원인과 결과는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아일랜드의 전 대통령인 매리 로빈슨이 TED에서 한 연설 "why climate change is a threat to human right"에서 그는 말라위의 탄소 배출량은 미국의 0.4프로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2015년 1월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로 국가의 1/3이 잠겼고,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말한다. 즉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국가의 국민들이 선진국들의 행태에 대한 책임을 물게 되는 부정의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피해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과 시스템까지 고려해본다면 피해는 더욱 불균등하게 배분될 것이다.

또한 기후는 장기 지속성을 가져 그 영향이 당대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미래 세대에 이르기까지, 권리가 시간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의 특성상 특정 시기의 개별 행동이 미칠 인과관계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의 환경 오염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우리는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추세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면 21세기 중반에는 뚜렷한 기온 변화가 나타날 것이고, 그로 인해 해수면 상승, 기후대 변화, 사막 확장 등 다양한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환경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변화를 함께 겪을 사람들을 생각해야한다. 그 변화가 누군가의 환경을, 건강한 삶을,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주지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타인의 생활 터전과 미래를 훔치지 않았는가?"
#FRIDAYFORFUTURE #환경 #기후 #툰베리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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