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 10월 26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에서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형법을 적용받는 최저 연령 기준을 만 14세에서 13세로 한 살 낮추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법률 개정안이 입법예고를 거쳐 지난 13일 법제처 심사 단계에 들어섰다. 약 한 달간의 심사가 끝나면 개정안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심의 및 대통령 재가를 거쳐 국회에 회부된다.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10~14세 미만 미성년자를 말한다. 미성년자의 범죄(소년범)는 크게 형법과 소년법이 나눠서 규율하는데, 형법은 법을 적용하는 나이를 14세 이상으로 제한한다.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분류해 형법상 책임을 질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소년법은 만 10세 이상부터 18세까지 적용되는데 가정 위탁 감호부터 소년원까지 1~10호의 '보호처분'을 두고 있다. 즉 10세 미만은 범죄 행위를 해도 어떤 법도 적용되지 않고, 10세 이상부터 14세 미만까지는 소년법만 적용돼 보호처분 대상이 된다. 바로 이들이 촉법소년이다. 14세 이상 소년범에겐 소년법과 형법 둘 다 적용된다. 법무부는 이 14세 기준을 13세로 낮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소년범 범위를 넓히려는 것이다.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필요한 이유로 촉법소년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이들이 저지른 범죄 중 강력범죄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또 북미나 유럽 국가들의 경우 한국보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이 낮다는 점도 언급했다. <오마이뉴스>는 법무부가 제시한 근거들이 사실인지, 촉법소년의 연령 기준을 낮추는 게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 등 쟁점들을 따져봤다. [쟁점 1] 촉법소년 범죄 심각하게 늘었나 법무부는 전체 소년인구는 감소하는데도 촉법소년 범죄는 증가했다고 밝혔다. 법원에 송치된 촉법소년 사건이 2017년 7897건에서 2021년 1만2502건으로 꾸준히 늘었고, 강력범죄인 살인은 매년 0~3건, 성범죄는 매년 300~400여건 수준으로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촉법소년의 범죄율 증가는 통계적으로 뚜렷이 확인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박소현 국회입법조사관은 지난 11월 30일 발간된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의 쟁점' 보고서에서 "경찰서의 촉법소년 사건 법원 송치 건수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감소 추세였다가 그 이후 다시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2012년 보다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박 조사관은 특히 "2020년부터는 팬데믹이라는 특수상황이 발생하면서 등교제한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범죄 증가 여부, 근본 원인과 대응방안을 종합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선영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21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통계상 범죄 건수가 늘어난 것은 그물망의 확대(net widening) 효과"라며 "예전에는 처벌하지 않았던 성추행, 학교폭력 등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고 과거엔 없던 범죄 유형인 불법 촬영,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중고나라 사기, 무인점포 절도 등 새로운 범죄 기회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무부가 제시한 '사건 법원 송치' 건수가 아니라, 이후 법원이 내린 보호처분 결과를 기준으로 보면 증가세는 더 불명확하다. 대법원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보호처분을 받은 14세 미만 소년범의 수는 2012년 5071명에서 증감을 반복하면서 2016년엔 2858명까지 감소했고 2017년엔 다시 3365명으로 늘었다. 이후 2018년 3483명, 2019년 3827명, 2020년 3465명, 2021년 4142명을 기록해 증가세가 뚜렷하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 넷플릭스 <소년심판> 스틸컷 ⓒ 넷플릭스 [쟁점 2] 촉법소년의 범죄 더 흉악해졌나 촉법소년(10~14세)이 저지른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 등 성폭력・방화)가 증가했다고 볼 근거도 부족하다. 법무부는 "소년 강력범죄 비율이 최근 15년 간 지속 증가 추세"라며 소년범죄 중 강력범죄 비율이 2005년 2.3%에서 2010년 4.08%, 2015년 3.82%를 보이다 2020년 4.86%로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또 4대 강력범죄 중 성범죄 비율은 2005년 48.55%, 2010년 69.99%, 2015년 81.35% 2020년 86.22%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통계는 촉법소년만을 대상으로 집계한 것이 아니라 18세 이하 소년 사건을 모두 합한 통계다. 박소현 국회입법조사관이 경찰청의 2012~2021년 촉법소년 범죄별 법원 송치 현황을 분석한 결과, 4대 강력범죄 건수는 10년 사이 매년 증감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조사관은 "언론에 공개된 특정사건들만으로 촉법소년의 행위가 흉포화됐다고 해석할 만한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촉법소년의 강도 범죄 건수는 2012년엔 28건이었지만 2015년 5건, 2017년 8건, 2019년 7건을 기록하다 2020년 14건, 2021년 11건으로 나타났다. 강간·추행 등 성범죄도 적게는 308건에서 많게는 410건까지 10년 간 매해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경찰이 법원에 송치한 전체 소년사건 중 강력범죄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에서도 뚜렷한 증가세는 발견되지 않는다. 2012년 전체 소년사건 1만3059건 중 4대 강력범죄는 432건으로 3.31%를 차지했는데 2016년엔 6576건 중 434건으로 강력범죄율이 6.6%로 뛰어오르긴 했다. 하지만 2019년엔 4.61%, 2020년엔 4.58%, 2021년엔 4.1%로 다시 떨어졌다. 소년범죄의 유형은 강력범죄가 아닌 절도(42.6~57.4%)와 폭력(17.3~24.9%)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법무부는 또 소년사건의 성범죄 증가세가 심각하다고 강조한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소년 강력범죄 중 성범죄 비율은 2000년 36.3%에서 2020년 86.2%로 대폭 상승했다. 소년보호사건(법원에 송치된 벌금형·보호처분 대상 소년사건) 중 성범죄 건수도 2020년 1386건에서 2021년 1807건으로 31.3% 늘었다는 점도 법무부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통계의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년범죄는 단순 수치만 볼 것이 아니라 범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나온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분기별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3·4분기 기준 전체 성범죄 건수는 2019년 9375건, 2020년 8487건에서 2021년엔 9487건으로 11.8%가 증가했다. 강력범죄 중 성범죄 비율도 94.2%(2021년)에 달했다. 소년사건에서만 유독 성범죄 비율이 올라간 건 아니라는 것이다. 박선영 교수는 "청소년 유해매체와 유해업소의 증가, 청소년 성착취자의 증가, 부모의 학대와 방임의 증가, 스마트폰·게임·마약·음란물 중독이 증가하면서 보호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졌고 또 많아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쟁점 3] 주요 선진국들 보다 우리나라 촉법소년 연령이 높다? 법무부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한 해외 주요국들의 형사·사법 처분이 적용되지 않는 연령 기준을 보면 프랑스 13세 미만, 캐나다 12세 미만, 영국 10세 미만, 호주 10세 미만이다. 미국의 경우 뉴욕주 13세 미만 등 다수의 주에서 10~13세 미만을 적용하고 있다. 해외 사례들을 봐도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만 13세로 한 살 낮추는 게 무리는 아니라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법무부가 예로 든 해외 주요국의 경우 기준 연령 이하의 촉법소년에겐 어떤 형사적 처분도 내리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소년원 구금이 10세부터 가능하고 촉법소년에게 소년법에 따라 내려지는 보호처분이 사실상 형벌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선영 교수는 "10~14세 촉법소년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표현은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전과기록이 남지 않을 뿐 촉법소년도 수사와 재판을 똑같이 받고 그 기록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범죄 경력으로 반영돼 취업 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의 형사 미성년 연령 하한은 14세가 아니라 사실상 10세라고 봐야 더 실질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또 호주에선 연령 상향 논의가 적극 이뤄지고 있다. 호주 법무부는 지난 달 "정부는 2023년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2세로 높이고 그 후 2년 이내에 14세로 높이는 단일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성인과 같은 재판을 받는 최저 연령으로 14개 주가 14세, 3개 주가 15세, 1개 주가 16세로 정한다. 살인 등 중범죄 경우만 예외다. 현소혜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국가별 소년사법시스템을 단순 비교하는 것 보다 각 사회가 근본적으로 소년범죄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소년보호사건에서도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으니 어떻게 대처(처분)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본질적으로 형사사건과 유사하게 접근한다"면서 "(일부 선진국은) 어떻게 법적 책임을 지울까가 아니라 그 아이를 어떻게 보호해줄 것이냐로 먼저 접근해 수사·재판이 아닌 사회복지적 지원 체계에 소년을 편입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촉법소년 문제를 경찰이 아니라 사회복지국이 대응을 주도한다. 독일 경우 양육자가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는 등 촉법소년이 위험상황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사건을 청소년청으로 이관해 그를 관리토록 한다. 영국 소년범죄대응팀은 촉법소년의 부모와의 양육계약을 통해 부모에게 자녀관리 책임을 지운다. 이를 거부하면 법원은 관련 규율을 명시한 양육명령을 부모, 촉법소년 모두에게 내릴 수 있다. [쟁점 4] 촉법소년 연령 하향, 소년범죄 예방에 효과적일까 ▲ 지방의 한 소년원 모습. ⓒ 최원훈 전문가들은 형사처벌 대상을 13세로 확대한다고 범죄 예방 효과가 높아진다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계에선 엄벌주의나 형사 처분 확대가 범죄 억제에 실효성이 없다는 연구결과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을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보다는 교정인프라 개선과 보호 지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호관찰관 1명 당 125명(2022년 기준)의 소년범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는 OECD 평균 27.3명의 4배를 넘는다. 정식 처분 전 소년들을 조사·관찰해 그 결과를 법원에 제출하는 소년분류심사원은 전국에서 서울 한 곳 밖에 없다. 교정 인프라도 열악하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소년원은 수용 정원 대비 120% 이상이 수용될 정도로 과밀화됐고 전국 10개 소년원 가운데 3개만 정규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소년원 1인당 수용 면적 기준은 0.78평에 그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년범들의 재범율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1년 초범이 아닌 소년범(14~18세)의 비율은 전체 소년범 5만4074명 중 30.2%(1만6350명)에 달했다. 재범자 비율은 2015년 36.1%, 2016년 34.4%, 2020년 32.9% 등으로 2015년부터 30%대를 유지해 오고 있다. 현소혜 교수는 "학계 연구들에 따르면 아동·청소년들은 생애주기 특성상 성인처럼 처벌에 두려움을 가져 범죄를 억제하는 '일반 예방효과'가 적다"며 "(처벌을 받아도) 처벌받은 또래가 멋지다고 여기거나 그를 모방하려는 역효과가 나타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형기를 마치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특별 예방효과'는 아동·청소년이 신체·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에 성인보다 큰데, (이는) 한창 자존감을 기르는 시기에 (처벌을) 응보의 수단으로 경험하는 이들에겐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연령 하향을 신속히 도입할 게 아니라 교정교화 인프라와 통합적인 보호 지원 체계를 충분히 안착시키는 게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촉법소년 #법무부 10만인클럽 프로필사진 글 손가영 (gayoung) 내방 구독하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공유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사 요약 보기 추천22 댓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