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빛을 띠는 것은 산부추고 검보랏빛을 띠는 것은 참산부추라고 한다. 한 뼘 올라온 순을 흙만 털어내 맛 봤다. 참산부추는 아린 맛이 강했고, 산부추는 단맛이 먼저 난 뒤 아린 맛이 났다. 사진은 자생 산부추. ⓒ 김진영
1957년, 일본의 한 종자 업체가 '그린벨트'라는 부추를 육종(育種)했다. 그린벨트는 춥고 따듯함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녔다. 게다가 내병성(병에 강한) 품종이었다. 농사 짓는 이들이 종자를 선택할 때 온도 민감성과 강한 내병성은 매우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작물 생장 온도가 맞지 않으면 자라지 않거니와 자라도 상품성이 떨어진다. 병이라도 온다면 농약 치는 횟수가 그만큼 늘어난다. 온도에 민감하지 않고 병이 와도 잘 버티는 그린벨트는 농가에서 선호하는 품종일 수밖에 없다. 그린벨트 도입 이후 슈퍼 그린벨트, 뉴벨트, 킹 벨트, 광폭부추 등 다양한 일본 품종을 도입해 지금까지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부추는 백합과의 작물로 양파, 파, 마늘 등과 같은 집안이다. 부추도 양파나 파처럼 황화합물인 알리신 성분을 갖고 있어 아린 맛과 특유의 향이 있다. 양파나 파와 같은 집안이라고 하더라도 부추는 수확하는 방법이 다르다.
양파나 대파처럼 뿌리째 뽑아 수확하는 것과 달리 부추는 땅 위에 솟아난 부분만 칼이나 낫으로 베어 수확한다. 뿌리가 온전히 남아 있어 한 해에 두세 차례 더 수확할 수 있다. 일 년에 몇 차례 수확할 수는 있지만 그 가운데 처음에 순이 올라온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부추는 첫물로 나온 게 맛있다
▲ 부추는 여러 번 수확할 수 있지만 품종에 따라 수확할 수 있는 횟수가 차이가 난다. 부추의 원산지는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인데, 자생 부추에서 품종이 시작됐다. 사진은 밭산부추. ⓒ 김진영
본디 첫물로 나오는 작물치고 맛이 제대로 든 것이 별로 없는데 부추는 처음 게 맛있다. 부추의 첫 순은 남도에서 먼저 나온다. 포항은 시금치도 유명하지만, 부추 또한 대표 작물 가운데 하나다. 기온이 올라가면 부추 나오는 산지도 북쪽으로 올라간다. 경기도 양평, 양주가 대표 산지다. 봄철에는 재배지가 남쪽, 여름에는 경기도에서 생산한 부추를 선택하면 맛있는 것을 고를 수 있다.
부추는 여러 번 수확할 수 있지만, 품종에 따라 수확할 수 있는 횟수가 차이가 난다. 부추의 원산지는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인데, 자생 부추에서 품종이 시작됐다. 그린벨트 또한 일본 자생 부추 품종을 개량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생하는 부추가 있지만, 그나마 알려진 것이 경기도 양주의 솔부추다. 개량한 부추보다 향이나 영양이 뛰어나 영양 부추로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솔부추다.
솔부추 외에 두메부추, 노랑부추, 한라부추, 참산부추, 산부추 등이 있다. 대부분은 알음알음 텃밭 수준으로 심고, 자가 소비하는 수준의 재배이지만, 그나마 솔부추와 두메부추는 다른 재래 부추보다 재배 면적이 넓다.
재래 부추는 수확성이 낮아 그동안 외면받았다. 같은 면적에서 한 번이라도 더 수확할 수 있는 품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게 농가의 입장이다. 재래부추를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심는 이유는 개량 부추보다 아린 맛이나 향이 좋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여름에 SBS <폼나게 먹자> 촬영차 경기도 양평 청운면에 있는 야산에 올랐다. 산에 자생하는 산부추를 밭 재배에 성공한 최병갑 농부와 산부추 맛을 보러 갔다. 산부추 밭 재배로 받은 특허를 공개할 정도로 산부추의 확산을 꾀했다.
부추는 요리에 있어 주재료이기보다는 곁들인 부재료로 주로 쓴다. 산부추가 뛰어난 맛에도 불구하고 요리의 조연 역할인 탓에 확장의 한계가 있었고 점차 재배 면적이 줄어들고 있었다.
지난해 방송 촬영하면서 맛본 산부추의 맛은 개량 부추가 갖지 못한 향과 맛이 있었다. 수확 시기가 지난 부추는 조금 억셌지만, 서교동 <진진> 왕육성 셰프의 손길을 거쳐 '작춘권'으로 맛있게 태어났다. 달걀옷을 얇게 부치고는 다진 고기, 부추를 감싸 튀긴 요리다. 고기 향과 부추 향이 잘 어울렸다.
촬영하면서 최병갑 농부에게 내년에 새순이 날 때 즈음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했다. 식품 MD로서, 재래종이라도 맛이 없으면 사라지거나 개량하는 것이 맞지만, 산부추만은 사라져서는 안될 식재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한 향과 아린 맛이 다른 '산부추'
▲ 지난해 SBS <폼나게 먹자> 방송 촬영하면서 맛본 산부추는 개량 부추가 갖지 못한 향과 맛이 있었다. 수확 시기가 지난 부추는 조금 억셌지만, 서교동 <진진> 왕육성 셰프의 손길을 거쳐 '작춘권'으로 맛있게 태어났다. 달걀옷을 얇게 부치고는 다진 고기, 부추를 감싸 튀긴 요리다. 고기 향과 부추 향이 잘 어울렸다. ⓒ 김진영
지난주에 양평시내에서 홍천으로 가는 6번 국도를 거쳐 44번 국도 옆에 있는 산부추 밭을 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양평시내와 달리 청운면은 그 흔한 개나리조차 피지 않았다. 같은 양평이라도 조금 북쪽에 있는 탓에 청운면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해 수확한 다음 말라버린 검불 사이에 파랗고, 또는 검보라색 부추 순이 한 뼘 정도 올라왔다. 개량 부추는 몇 년 수확하면 뽑아버리고 다시 심지만, 재래 부추는 그대로 둔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듯한 햇볕이 들자 열흘 전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초록빛을 띠는 것은 산부추고 검보랏빛을 띠는 것은 참산부추라고 한다. 한 뼘 올라온 순을 흙만 털어내 맛 봤다. 참산부추는 아린 맛이 강했고, 산부추는 단맛이 먼저 난 뒤 아린 맛이 났다. 같은 조건이라도 품종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산부추는 슈퍼에서 사던 부추와는 확연히 다른 진한 향과 맛을 갖고 있다. 양평에서 돌아온 뒤, 아는 식당과 업체에 두루두루 전화를 돌려 산부추를 소개하고 테스트를 해볼 참이다. 애써 키운 산부추가 많은 이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조금 더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춘곤증이 찾아온다. 피곤한 몸에 제철 음식만큼 좋은 것은 없다. 더욱이 '봄 부추는 인삼보다 낫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로 봄의 나른함을 깨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봄이다 싶으면 곧 여름이 온다. 봄이 가기 전, 향긋하고 달큰한 부추로 봄맛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부추가 산부추라면 더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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