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낭비를 감시해야 할 국회가 스스로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죠." 함께하는시민행동의 신태중 간사는 이번 달에 수여하는 '밑빠진 독'상으로 국회를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간단히 설명했다. 2000년 8월부터 시작한 이 상은 그 동안 '억만금을 쏟아붓는 새만금 개발'과 '비상하지 않는 전주신공항사업'등에 수여되었고 이 번에 14번째를 맞아 수상대상으로 '무용지물이 된 국회전자투표장치'를 뽑았다. 10월 31일 서울 여의도역에선 시민단체가 선정하고 네티즌이 뽑아 그 달 최악의 예산낭비를 한 정부기관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밑빠진 독'상의 캠페인 행사가 벌어졌다. 행사장엔 지금까지 수여됐던 '밑빠진 독'상이 차례대로 놓여져 있어 여의도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던 몇몇 시민은 그 중 하나의 독에다 동전을 넣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역대 최악의 예산낭비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 번에 상을 수여하게 된 국회전자투표장치는 97년 5월에 9억1천만 원을 들여 설치한 이후 무기명투표를 포함 총92회의 표결에서 12회(13.0%) 사용됐다. 현행국회법에 따라 무기명투표로 하기로 한 표결을 제외하더라도 표결방법 선택의 모호한 법률 규정에 때문에 현실적으로 전자투표장치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신태중 간사는 "전자투표를 국회의 일반적인 표결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음에도 국회의원들의 의지부족과 민감한 사안에 대한 기명투표 기피현상으로 인해 전자투표의 이용이 매우 낮은 실정"이라면서 "법률안 실명제를 통해 의정활동의 공개성, 투명성, 책임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를 실리지 못하고 설치비와 보수비용을 합해 11억3천 만 원을 낭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캠페인을 지켜보던 장명길(남 34. 직장인) 씨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면 자신도 몰랐을 거라면서 "이러한 '밑빠진 독'상과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도 정부예산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캠페인을 마친 함께하는시민행동의 관계자들은 시상식을 하기 위해 한나라당사에서 국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피켓을, 다른 한 명은 '밑빠진 독'을 들고 국회입구에 도착한 이들은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전경들의 제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어제 국회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밑빠진 독 수상기관은 국회로 선정되었고, 전달식을 하기 위해 오늘 간다고 했었죠. 그런데 우편으로는 받을 수 있지만 직접 방문을 할 경우, 거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정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수상자가 없는 가운데 수상내역을 읽고 시상식을 마쳤다. 시상식이 끝난 후 정문 앞에 놓아 둔 상장과 상품인 '밑빠진 독'은 실랑이를 벌이던 국회 경비 관계자가 들고 갔고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는 알 길이 없어 보였다. 국회에서 시상 거부를 한 이유에 대해 "대부분의 수상기관과 마찬가지로 이 상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예산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함께하는시민행동의 관계자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동안의 기관과는 달리 국회의원은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만큼 국민들의 요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러한 요구에 대한 논의 자리를 마련해 의견 개진을 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했다. 97년 정부가 행정정보화를 본격 추진하던 과정에서 국회가 설치한 전자투표장치의 실제 활용도가 낮은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예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회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무관심한 얼굴은 국민의 혈세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 밑빠진독상(賞)은 '함께하는시민행동'이 최악의 선심성 예산배정과 어처구니없는 예산낭비 사례를 선정하여 매달 주는 상(賞)입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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