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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 필요 없는 사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기성찰 시기 맞고 있는 우리 사회

등록|2007.09.01 12:25 수정|2007.09.01 12:41
 최근 사회적 논란을 부르고 있는 거짓학력 혹은 거짓학위 문제와 관련해 이 사안을 바라보는 국민의 견해도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첫 갈래는 그런 거짓학위 혹은 거짓학력 수요를 자극한 우리사회의 문화적 풍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이고, 다른 또 하나는 거짓학벌 혹은 거짓학위와 함께 그것에 수반된 개인의 거짓행동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소위 발단이 된 신정아 교수의 거짓 학위 파문의 경우 그녀가 비록 거짓학위를 내새워 한 때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그녀의 현재적 행동에 그 거짓학위가 과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 볼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해서 거짓학위가 오늘날의 그녀를 탄생시켰는가, 아니면 그 후 비록 물거품으로 끝났지만 그녀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것이 터지기 직전의 입지전적인 단계에까지 이르렀는가 여부다.

우리는 그 경계선을 구획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 경계가 곧 그녀의 행동이 실정법상의 사기행위인가 아니면 그녀 자신의 양심의 문제로 남는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정아의 경우 이미 신정아의 행적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만큼 곧 그 여부가 이내 밝혀질 것이다.

 하여튼 신정아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후, 연이어 사회내부 주요 인사들의 거짓학벌과 학위에 대한 고백과 함께 자신의 거짓행동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난다. 이는 곧 우리 사회가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그 ‘자기성찰의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아놀드 토인비는 한 사회가 새로운 발전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기성찰의 시기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제 한국은 개발연대의 시기를 완전히 종식하고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하겠다. 지난 4년 6개월 동안 참여정부의 제 정책이 여기에 크게 기여했다.

 사실 위에서 제기한 문제를 보다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사회적 수요나 기타 사회 문화적 풍토가 개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사회적 경향에 편승하도록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비윤리적인 문화 역시 지난 사회 역사의 누적적 산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사회적 경향 즉 사회 역사의 누적적 산물을 초래했는가? 그 근원적 토대는 개인의 욕망이지만 그것을 떠받히고 있는 것이 사회이며, 사회적 경쟁이다.

 다시 말해서 과도한 사회적 경쟁이 개인으로 하여금 앞에서 지적한 허위의 행동을 강요한 일면이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풍토 하에서 개인의 욕망은 종래 스스로 자기체면을 부른다. 물론 이 점의 다른 측면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순수 개인 측면에서의 이 같은 개인의 욕망이 사회발달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에서 이것조차 반사회적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러한 행동이 도덕적 정당성과 함께 법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한 행동이 사회발전의 초석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비록 도덕적이지 못하지만 그런 행동조차 사실 일견 고무적인 측면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개인의 거짓행동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현재 우리사회 내에서 학벌 혹은 학위의 기능은 사회적 경쟁의 한 조건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거짓학벌 혹은 허위학위가 사회적으로 결코 용납되어서도 묵인해서도 안 될 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이 같은 허위학력 혹은 허위학벌은 경쟁의 공정성을 해쳐, 자칫 사회적 비용을 확대시키는 등 커다란 부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거듭 설명하게 되지만 정상적인 학벌과 학위를 가진 자가 그 역할을 했을 때 비로소 더 큰 사회경제적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허위학벌 혹은 거짓 학력으로 인해 능력조차 없는 자가 사회 내부의 특정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오히려 그 사회적 성과를 잠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사회에 번져나고 있는 거짓 학위 혹은 거짓 학벌에 대해 우리 모두 보다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은 교육제도와 사회의 부조화가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그 만큼 교육의 기회가 복합적 요인에 의해 제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예에서와 같이 국가가 교육전반에 대해서 책임질 경우 교육의 기회가 크게 확대되어 모든 이가 교육의 모든 혜택을 입게 된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 사태를 기화로 향후 거짓행동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거짓 행동이 필요 없는 사회, 모두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사회는 새로운 발전을 위해 자기성찰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 성찰의 시기를 지나 우리사회는 비로소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본격 진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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