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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날의 동화는 어디쯤 떠내려가고 있을까

[시 더듬더듬읽기] 이창규 동시 '고무신을 신고'와 오봉옥 시 '강물에 띄운 검정 고무신'

등록|2007.09.01 19:14 수정|2007.09.02 11:40

▲ 이젠 사찰에서 스님들의 신발로나 쓰이는 퇴물이 돼버린 고무신. ⓒ 안병기


어린 날 고무신에 얽힌 이야기

늦장마인가. 벌써 일주일 째 비가 내린다. 토요일 오후를 적시는 비는 먼 시간 속으로 덧없이 흘러가서 케케묵은 기억을 일깨운다. 난 지금 한대수가 부르는 '고무신'이란 CD를 컴퓨터에 집어넣고 듣는 중이다.

기억이란 시간의 저장창고이다. 어쩌다 곰팡내 풀풀 나는 시간 창고의 문을 열면 온갖 잡동사니들이 마중나온다. 내 기억 창고에서는 그만큼 수많은 일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다가 스러지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완고한 기억들이 있다. 유년의 추억들이 바로 그것이다. 닷짝걸이(공기놀이)나 사방치기, 땅뺏기, 닭싸움 등 놀이에 얽힌 추억도 있고 필통이나 가방 등 물건에 얽힌 추억도 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고무신은 내 유년의 기억창고 맨 첫 번째 시렁에 얹혀져 있는 사물이다. 그 시절 고무신은 내게 얼마나 쓸모가 많았던가. 배 대신 시냇물에 띄워놓고 누구 신발이 멀리 가나 시합하는데도 쓰였고, 물고기를 잡을 때는 구럭 대신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고무신과 작별을 고한 것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였다. 서너 살 적부터 고무신을 신었으니 거의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고무신과 벗하며 산 셈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쭉 운동화를 신었다. 운동화를 처음 신었을 때를 생각하면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1975년에 나온 한대수 2집 앨범에 실린 '고무신'이란 노래 역시 고무신을 신은 날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명태를 팔아서 고무신을 사서 신고 / 저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촌 색시 만나러" 가는 흥겨운 마음은 노래의 끝 자락에 이르게 되면 "그건 그렇다 하고 /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 만수무강 하옵소서 만수무강이 좋아 / 시인 여인 미인 노인도 / 만수무강하고 그리고 또 나도 만수무강하고"라고 그 누구의 만수무강이라도 빌어줄 만큼 흥의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고무신에 비해 너무 가벼워 신으면 날아갈 것만 같았던 운동화라는 물건 속에는 추억이 없다. 그러고 보면 추억이란 본디 척박한 땅에서만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식물인지도 모른다. 손쉽게 살아버린 삶은 오래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생의 섭리가 거기에도 있는 것인가.

내가 신어본 고무신은 태화고무의 말표 신발이라든가, 경성고무의 만월표 신발, 동양고무의 다이야표 등이었다. 그 중에서 다이야표 통고무신은 정말 '웬수'같이 질겼다. 몇 달을 신어도 신발 바닥이 전혀 닳지 않았다. 마음은 이제 그만 새 신을 신고 싶은데 전혀 협조하지 않는 신발 앞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절망하곤 했다. 때로는 새 신이 신고 싶어서 시멘트 바닥에다 구멍이 날 때까지 고무신을 박박 문지르곤 했다. 그런 다음  할머니에게 가서 밑창에 구멍이 난 신발을 들이미는 거다.


"할머니, 이것 좀 봐. 그새 신발이 이렇게 다 떨어졌어."
"내가 보니 아직 신을 만하구나."
"이렇게 구멍이 뻥뻥 뚫렸는데 신을 만하긴 뭐가 신을 만 해!"

그렇게 갖은 쇼를 다 했지만 할머니는 선뜻 새 신을 사주시는 법이 없었다. 돗바늘이라는 아주 큰 바늘로 꿰매 주던가 아니면 장날 신기료 장수한테 가져가서 때워 오기 일쑤였다.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 헤지면 그때야 마지못해 사주셨다.


할머니께서 새 신발을 사오기로 약속하신 장날은 하루해가 너무 길었다.  해 저물 녘 광주 서방장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올 무렵엔 장꾼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보일 수 있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서 할머니를 기다린다.

우리 할머니는 천부적으로 '기다림의 미학'을 아시는 분이었을까. 다른 장꾼들을 모두 앞세우고 나서 맨 뒤에 처져 오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지고 간 곡물에 대한 흥정이 남보다 재빠르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오지 않는 할머니를 기다리는 난 지나가는 장꾼마다 붙들고 묻는다.

"아주머니,  우리 할머니 못 보셨어요? 우리 할머니는 언제 와요?"

가내미재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에야 할머니는 바람만 바람만 재를 넘어 오신다. 난 쏜살같이 달려가서 할머니가 들고 계신 장 보따리를 뒤진다. 새 고무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면 내 마음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커다란 환희에 젖는 것이다.


▲ 동시집 표지. ⓒ 불휘출판사


예전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글이나 아동문학가들이 쓴 동시에도 고무신에 대한 추억을 노래한 동시가 많았다, 아동문학가 이창규 선생이 쓰신 동시 '고무신을 신고'도 그 중에 하나다.


고무신을 신고
달리기를 하였더니
고무신이 헐떡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고무신을 신고
비 오는 날 걸었더니
쫄쫄내린 비가
고무신에 괴어
찔국찔국 넘어 나왔다.


고무신을 신고
웅덩이를 지나다가
물방개를 보고
얼른 떠 담았더니
작아진 웅덩이에서
한 바퀴 두 바퀴
맴만 돈다.

- 이창규 동시 '고무신을 신고' 전문 

이 시를 쓰신 이창규 선생은 1940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신 뒤 43년간이나 교직에 몸 담고 학생들을 가르치시다가  2002년 정년퇴직하신 분이다. 1978년 월간 <아동문예>로 등단하신 이래 동시집 <해처럼 나무처럼>, <열두달 크는 나무> 등  많은 동화와 동시집을 남긴 아동문학가이시다.

이 시는 동시집 <꽃다지 목걸이>(불휘출판사, 1997)에 실려 있는 동시 가운데 하나다. 시를 읽으면 고무신을 신은 아이의 여러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특히 2연의 "쫄쫄내린 비가 / 고무신에 괴어 / 찔국찔국 넘어 나왔다"라는 부분은 사실적 표현의 백미라 아니 할 수 없다.

노래가 된 시와 잃어버린 동화

이외에도 고무신에 대한 시는 많다. 그중에서도 80년대 국악에 심취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민용태의 시에 이병욱이 곡을 붙인 '검정 고무신'이란 노래와 반제·민족해방투쟁을 서사적으로 형상화한 <붉은 산 검은 피>의 시인 오봉옥의 시에다 유종화가 곡을 붙인 '강물에 띄운 검정 고무신'이란 노래도 있다.

원래 무용곡에 삽입된 곡이었던 '검정고무신'은 '국악가요'라는 장르가 태동하기 시작한  초창기에 나온 국악가요이다. "천년을 벼루어 이룬 첫날밤 / 나갔다 오리라 그 한 말씀 / 창문 밖에는 바람소리와 / 시베리아 모진 바람 소리 오직 이 밤을 지키는 것은 / 그대 오도록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라는 구절이 암시하듯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시베리아로 징용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애달픈 노래이다.

그런가 하면 오봉옥의 시 '강물에 띄운 검정 고무신'은 어릴 적 물 배 대신 물 위에 띄우며 놀았던 고무신에 대한 추억을 담담하게 형상화한 시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강물에 띄운 내 작은 배 검정 고무신

멈칫멈칫 떠난 아비 찾아 갔을까
질레질레 떠난 누이 따라 갔을까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울 엄니처럼 홀로 남은 고무신 한 짝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비 찾아갈거나
노 저어라 둥둥 누이 찾아갈거나
누이 찾아 갈거나


-
오봉옥 시 ' 강물에 띄운 검정 고무신' 전문

어렵사리 얻어 신은 고무신이었지만 가끔 잃어버리는 사고도 일어났다. 여름날 소나기로 갑자기 불어버린 시냇물을 건너다 신발 한 짝을 떠내려 보내기도 하고, 다른 동네에 놀러갔다가 상여집 앞을 지나올 때 겁에 질려 "걸음아, 날 살려라!"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뛰었다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도 있었다.

또 오봉옥 시의 내용처럼 배 대신 고무신을 물에 띄우고 놀다 한 짝을 잃어버릴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노래하는 것은 잃어버린 신발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리라.


어린 시절, 할머니는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가장 굳센 고리였다. 그 고리가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동안 내 유년은 얼마나 안전하고 아늑했던가. 내 어린 날 고무신에 대한 추억은 삶의 지향점을 잃어버린 지금  내게 남은 유일한 동화다.

내가 어린 날 시냇가에서 빠뜨린 고무신 한 짝은 지금 어떤 물살에 소용돌이치며 떠돌고 있을까. 내가 잃어버린 가장 순수한 마음 한 자락을 아직도 쓸어담고 있을까. 피를 속이는 위선적 삶에 익숙해져 버린 내 삶 속으로 환상처럼 떠내려오는 검정 고무신 한 켤레.

정 줄 곳이 마땅치 않은 삶은 언제나 나를 낯설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웃고 울고 떠들고 약간은 과장된 분노의 몸짓으로 살고 있는 것도 실상은 그 낯선 삶을 견뎌내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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