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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결전- 67회(5화 2회)

사랑, 진주를 찾아서 - 2

등록|2007.09.04 08:30 수정|2007.09.04 08:32
“우리가 먹을 식량은 넉넉히 싣고 떠날 걸세. 비록 청국의 일로 인해 출병하나 조금이라도 그들의 신세를 지게 되면 터무니없는 부탁도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신세를 지는 것은 청국 사람들이네.”

출병 구성을 보면 포수 200명, 화병(火兵 : 취사병)과 3개월분의 식량을 실은 수레를 이끄는 마부 등을 합해 총병력 265명이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보급을 청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급할 수 있도록 부대를 꾸린 셈이었다. 모두들 낯선 땅에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에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김억만은 그런 와중에서도 연실 너스레를 떨며 사람들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명천땅 대호 벼락이를 아는둥? 내가 혼자서 그 벼락이를 잡지 않았습매?”

다른 지역에서 온 포수들은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포수가 혼자서 호랑이를 잡았다는 말에 피식거렸다.

“어디서 빌어먹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기어온 새끼 호랑이를 총자루로 후들겨 패 잡아놓고는 허풍떠는 게 아닌가?”

“아 다른 명천 포수들에게 물어 보시옷! 그 벼락이라는 놈이 한번 울면 산천초목이 부르르 떨고 지리던 오줌발도 뚝 끊기지. 게다가 눈에는 불꽃이 활활 일어나며 웬만한 멧돼지는 그냥 앞발로 때려잡는 놈이지비!”

다른 명천 포수들이 웃으며 김억만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자 포수들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어떤 연유로 호랑이를 잡았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 가면서 할 얘기는 아니니까 이따 재 너머에서 밥 지어 먹고 가자면 그때 얘기해 주겠슴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가운데 막 지은 저녁밥과 국을 먹으며 김억만의 호랑이 잡은 얘기는 계속되었다.

“벼락이라면 명천에서는 이름이 뜨르르르한 호랑이지 않소. 모르오?”
“몰라.”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김억만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처음에 십 여 명 정도였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해 하여 머무는 바람에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내래 칠보산에 올라 까투리를 쫓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까투리는 고사하고 발발거리는 들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게 한낮인데도 괴이한 기분이 들더이다.”

“원래 호랑이가 나타나면 그런 기라.”

포수 하나가 아는 척 나서자 김억만은 시익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맞소 맞아. 그때는 내가 뭐 그런 걸 알았겠습둥? 좀 이상하다고 여겼을 뿐이지. 오늘은 공쳤구나 하는 심정에 화승에 댕겨놓은 불은 비벼 끄고 나무에 기대어 잠이나 자볼까 했는데 눈을 감자 온몸이 으스스 떨리더이다.”

김억만이 ‘으스스’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등골도 덩달아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이거 그대로 잠들기에는 불안하다 싶어 눈을 슬며시 떠보니 대낮에 웬 불덩이 두개가 두둥실 떠 있는 게 아니겠소!”

“허이구야!”

이야기에 몰두한 포수 하나가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눈을 뻔쩍 뜨니 벼락이가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더이다! 손을 더듬어 총을 쥐었는데 화승에 불을 꺼놓은지라 이거 원 암담하더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늘이 보우하사 화승에 불씨가 살아 있는 게 아니겠소!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오! 이래저래 가만있다가는 죽을 판이니 총을 잡고 호랑이 대굴빡을 향해 총을 쏘았지 않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호랑이 머리 한가운데 구멍이 뚫렸고 그놈이 터얼썩 쓰러졌다오!”

“허이구! 거 용하이!”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자 김억만은 우쭐거리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는 이거 내가 대단한 짐승을 잡았다 싶었는데 아차 싶은 게 있었슴매. 벼락이가 칠보산 산신령의 짐승인데 이놈이 인가에 내려와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잡았으니 앙화가 닥칠 것이 두려웠던 게요. 그 놈 가죽을 벗겨 돌아가긴 했는데 그 날 밤 참 기막힌 꿈을 꾸었소.”
덧붙이는 글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b>5. 사랑, 진주를 찾아서</b>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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