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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통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팡이를 짚은 장애인과 노인들을 생각해보자

등록|2007.09.06 09:01 수정|2007.09.06 09:06
건교부에서 신체특성, 교통안전, 국제관례에 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우측통행으로 변경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연구용역을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유인즉, 일제치하의 산물이고 인간의 90%가 오른손잡이여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편하고 보도 내에서 차와 마주보고 걸으면 긴급한 순간 차량을 피하기 쉬워 교통사고 예방효과가 크다는 주장이었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또 가위질도 오른손으로 하고 대부분의 일은 다 오른쪽에서 이루어지는데 왜 유독 보행만 왼쪽이냐는 것이다.

이 보도를 보면서 나는 여기에 해당하는 오른손잡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활동이 자유로운 사람에게만 국한된 사실이라는 것을 꼬집고 싶다. 보장구가 필요한 지체 장애인이나 연로하신 노인들을 생각해보자. 그들도 역시 오른손잡이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고, 일을 하는 것처럼 지팡이나 목발 역시 오른손으로 짚고 다닌다. 그래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왼손으로 계단 옆 지지대를 붙들고 훨씬 수월하게 오르내릴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등산객들도 지팡이를 짚고 산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 역시도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힘든 코스를 오를 때는 옆에 설치된 밧줄이나 지지대를 왼손으로 잡는다. 그런데 우측통행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안전하게 잡고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도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 장애자다. 그래서 여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산에서 만들어 오신 오동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걷게 되어 지금껏 하나의 지팡이에 의지해 보행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항상 왼쪽 벽 쪽에 붙어서 계단 옆 지지대를 붙들고서야 많은 사람들에게 떠밀려 넘어질 염려도 없고 안전하게 오르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좌측통행을 누가 만들었는지 나에겐 안성맞춤 보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다. 나는 움직이는 계단 에스컬레이터도  마찬가지로, 계단 옆 난간을 먼저 왼손으로 꼭 붙들고 계단 위로 올라서는데, 문제는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의 진로를 방해 한다는 것이다. 걸어 오르지 않을 사람은 오른쪽에 서고 걸어 올라갈 사람은 좌측통행의 질서에 따라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나도 오른쪽으로 비켜 서 주어야 하지만 나는 오른쪽으로 비켜 설 수가 없다. 그것은 당연히 오른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있고 나머지 왼손으로 계단 난간을 꼭 붙들어야 안전한데 오른쪽으로 비켜선다면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은 나로 인해서 뒷사람들이 너무 불편을 겪는다싶어 몸을 돌려 왼손으로 오른쪽 난간을 잡고 비켜서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내려설 때 하마터면 큰일을 당할 뻔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설 때도 올라설 때와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난간을 안전하게 잡고 오른손 지팡이와 오른발을 먼저 밖으로 내딛어야 하는데, 왼쪽으로 계속 올라오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지 못해 아무것도 잡지 않은 채 발을 내딛다가 몸이 휘청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다행히 뒤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넘어져 계단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언제인가 어느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목숨을 잃은 사고까지 나지 않았던가? 그 이후로 나는 절대 오른쪽으로 비켜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그 왼쪽 자리를 고수해야 하는 것 하나가 불편할 따름인 것이다.

그러나 우측통행으로 바뀐다면 나는 움직이는 계단이 아닌 곳에서도 통행의 흐름을 막을 수밖에 없다. 귀소본능에 의해 강을 거슬러 올라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서를 거슬러 오를 수밖에 없는 오른손잡이 장애인이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하철을 보아라. 나 같은 장애인이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 분들은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떠밀려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왼쪽에 설치된 계단 옆 지지대를 꼭 붙들어야만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좌측통행이나 우측통행이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통행방향이 바뀜에 따라 큰 사고로까지 이어질 수가 있다. 미처 이런 것까지 생각지 못한 건교부에게 건의한다. 좌측통행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덧붙이는 글 라디오 방송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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